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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얀 Jun 05. 2021

땅파서 뉴스레터 씁니다

언뜻 무용해보인 일을 일년 반동안 지속하는 마음

1년 반 가까이 뉴스레터를 쓰고 있다. 문장을 주제에 맞게 모아주거나, 사연에 맞는 문장을 추천해주는 뉴스레터다. 이걸 하면서 떼돈을 벌기는 커녕, 인생이 바뀌긴 커녕.... 돈을 열심히 쓰고 있다. 연말엔 구독자 이벤트 한다고 10만원 가량의 책도 샀다. 처음 시작할 땐 이메일 전용 도메인도 샀고, 뉴스레터 보낸다고 솔루션(스티비)도 돈주고 쓰고 있다.  대충 머릿속으로 계산해보니 지금 뉴스레터 만든다고 1년에 60만원 정도는 쓰는듯하다.


시간의 관점에서도 그렇다. 주말 반나절은 비워둔다. 마감을 지키고 싶어 면접 전날에도 꼬박꼬박 마감했다. 이걸 쓴다고 누구도 나에게 돈을 주지 않는다. 현재 이 뉴스레터는 유료가 아니고, 저작권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사실 뉴스레터는 생각보다 비싼 취미


글쓰면 보통 돈 안드는 취미라 할 수 있지만, 사실 어쩌면 생각보다 비싼 취미생활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남편은 우리는 각자 돈 쓴 내역을 무슨 카테고리를 넣을지 토론을 벌이는데, 자기계발과 취미의 영역을 최근 엄격히 정의한 적이 있다. 그가 게임패드를 사고 시계줄을 모으는 것처럼 말이다. 왠지 시곗줄하고 동일선상에 평가받기 억울해서 남편하고 치열하게 토론했지만,  뉴스레터 쓴다고 쓰는 돈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우리 둘이 같이 뭔가 하는 일도 아니면 나의 퍼스널 브랜딩도 안 되고(나는 반쯤 필명을 쓰고 있다) 업무에 도움이 안 되니 자기계발의 영역은 아니라고. 그러니까, 그 즐거움이 어떤 영역이든 "개인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 아니냐고.


나는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는가? 마감하는 시간도 시급과 기회비용의 논리로 환산해 본다면, 그 비용은 갑절로 늘어날거다. 사이드 프로젝트의 목적이 자기브랜딩, 나아가 수입을 늘려주는 효과에 방점을 둔다고 생각하면, 이 뉴스레터를 쓰는 일이 나에게 딱히 도움이 되는 건 없다.


사실 처음엔 그저 가벼운 마음이었다. 열명쯤 있으면 시작할 뉴스레터였다. 근데 구독자가 늘수록, 가끔 좋은 후기를 볼수록, 스티비에서 감사하게 실어준 내 이름을 볼수록(이메일 마케팅 2021 보러가기) 이름이 실릴수록 조금씩 욕심이 난다.  그런데 하다보니 욕심이 난다. 이걸 엮어서 책을 만든다면? 아니 적어도, 너무너무 지칠때 누가 나한테 잘했다고 격려로 돈이라도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 그럴때마다 이 뉴스레터를 잘못 썼나?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너무 감사하게도 나는 스티비 이메일 마케팅 2021 리포트의 케이스로 실렸지만(스티비가 나를 좋아해주신다)
사실 나는 여기서 나머지 절반이다...이건 내 뉴스레터 컨셉이 그 이유겠지...

일단, 커리어적으로 별로 도움 안 된다. 내 본업은 마케터나 콘텐츠 에디터가 아니다. 본업인 IT 기획자와 연계할거면 차라리 기획이나 IT, 시사/정보 뉴스레터를 쓰는게 훨씬 괜찮았을 것이다. 나도 그런 뉴스레터를 잘 보는 독자니까. 뉴스레터가 아니라면 페이스북/커리어리의 네임드 공유러가 되어도 좋겠다. 애시당초 브런치에도 일 관련 아티클을 쓰는게 훨씬 좋았을거다. 시의적절하게 좋은 글을 쓰면 몇백건 공유가 될 수 있었을 거고 혹은 출간 제안을 받을 수 있다는 곳이니까. 그러다가, 퍼블리 저자라도 되었으면 어땠을까. 고료라도 받았겠지. 혹은 기획자 뭐시기 강의를 해도 좋겠다, 싶지만 이 바닥의 일은 하면 할수록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아니면 가슴속 3천원 앱처럼 통통 튀는 아이디어의 사이드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리는게 적합했을지도 모른다. 구직하면서 포폴에 적어봐도, 질문 받은 적은 딱 두 번이었다. 내가 지원하는 분야는 콘텐츠 기획자가 아니니까.


돈이 목적이라면 아예 부업으로 눈을 돌리는게 좋았을거다. 스마트스토어를 해서 돈이 “굴러들어오게” 하는 파이프라인을 만든다면 어떨까. 혹은 앞서 말한것처럼 노하우를 팔기 위해 전자책을 만들거나 강의를 하는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주식이나 코인은 말할 것도 없고. 나도 현실 세계에선 먹고 살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리고 최근 1년 동안 돈에 대해 평생 할 고민은 다 한것 같다. 그 동안의 무지와 두려움을 반성하면서.


내가 만드는 콘텐츠가 사업의 영역이 아닌 건 인정한다. 보통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비타민이 아닌 진통제를 만들라는 말이다. 그저 쓱 훑어보고 괜찮네, 라고 하는 게 아니라 꼭 필요한 문제점을 해결해달라고. 이런 걸 너무 잘하는 뉴스레터도 많다. 하지만 내가 쓰는 글에는 해당 안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아니, 어딘가 비타민도 필요한 사람이 있진 않을까. 사서 먹을지 누가 줘야 얻어먹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고민은 회사 다니면서 머리 터지게 하고 있는데. 효율이 안 나는 일을 하면 안 되나, 일주일에 5일동안 효율을 위해 사는데. 회의에서 동료와 함께 업무를 진행할 방식의 효율을 논하는게 내 일인데(일을 할때 내가 "효율"에 대해 굉장히 많이 말한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적어도 주말에 반나절이라도, 효율없고 무용한 일을 해보면 안되나. 사실 지금은 회사에서 매일매일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다섯개나 하고 있고, 부업에 쓸 마음 에너지가 전혀 부족하다. 이미 아침에 기력이 없어서 홍삼포 하나씩 챙겨먹고 병원도 다니고 있는데 어떻게 더 에너지를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뉴스레터는 어떤 취미일까


그래, 어쨌든 그냥 "취미"인 영역이라 친다면, 그럼 뉴스레터는 내게 어떤 의미일까.


먼저 “잘 읽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좋은 독자로 남아있고 싶었다. 모두가 글쓰기와 책내기에 대해 말한다. 그런데 다들 읽기는 하는걸까. 작가들은 늘어나는데 고료로 돈을 벌 수 있긴 할까. 물가는 오르지만 고료는 그대로거나 지면은 점차 없어지는 것 같은데.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어떻게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걸까. 독자로 머물러주려는 사람은 있는 걸까. 나는 백명의 사람에겐 백 가지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환영할 일이지만, “작가”만을 꿈꾸는 건 의아하게 느껴진다. 모두가 "작가"가 되고싶어하지만, 나처럼 이런 사람이 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직장을 다니지만 틈틈히 읽고 쓰는 사람. 직장에서 일하는 마음도, 글쓰고 읽는 마음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 “읽은” 문장에 대해 말하고, 사람들에게 영업하는 사람. 6개월에 한 번씩 책을 선물로 주는 사람. 이런 "평범한 독자"가 있어야 내가 읽고 있는 에세이 작가들이 힘을 내서 반 년동안 글을 쓸 수 있도록 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고객이 있어야 회사도 굴러가는것처럼 에세이 생산자들도 좋은 소비자가 있어야 굴러가지 않을까.


언젠가 10조를 참신하게 쓰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건 "김상천 페스티벌"에서 최고급 샴페인(돔페리뇽일까?)와 최고급 라인업이 있는데,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전부 무료. (지인 대기표를 끊어야 하지 않겠는가) "제한이 없이 돈을 쓸 수 있다면"이라는 가능성을 상상했을때, 그 대화를 보면서, 나라면 그 돈을 내가 좋아하는 에세이스트 100명을 선택해 100만원씩 10년간 기본 소득으로 지급하고싶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간 쓰고 있는 돈과 시간의 비중이 그 사람의 욕망을 드러낸다면, 나는 읽고 쓰는데 보내는 사람이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니까. 물론, 현재 외벌이란 특성때문에 사고싶은 책의 10분의 1도 못 사는 편이지만.


사실 나는 책에 대한 부채감이 있다.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처럼 나는 남들보다 책을 많이 읽는 편은 맞지만, 생각보다는 많이 책을 사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종종 내가 "콘텐츠를 도둑질하는걸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종종 주변에 책선물을 하기도 한다. 내가 사서 쟁여둘 수 없다면, 남에게 주기라도 하고 싶다.이도 모자라, 구독자 이벤트도 했다. 이번에도 유월 즈음 상반기에 읽은 책 중 기억에 남는 책들을 나눠주거나, 사서 줄 듯 하다.


뉴스레터를 하면서 얻은 무형의 능력도 있다. “큐레이션”하는 것이다. 나는 내 뉴스레터가 딱히 큐레이션 쪽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그냥 문장만 스크랩하다보니 지루해서 각 회차별로 주제를 두기 시작했다. 가끔 이전 주제가 가물가물해서 겹칠 때도 있지만, 최대한 겹치지 않는 문장들을 뽑아두려고 한다. 어디서 많이 회자된 문장도 다르게 느껴지도록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재미가 있다. 큐레이션이 뭔지 설명할 수 없지만, 아직 점수를 후하게 주진 못하겠지만, 감을 잡기 위해 노력하곤 있다.


또 내가 어떤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 내가 1년 반 가까이 무언가를 이렇게 한 주에 한 번씩 꾸준하게 했던 적이 있는가. 나는 항상 의욕은 넘쳤지만 끝을 보지 못하는 용두사미였다. 외국어는 항상 초급 레벨을 벗어나지 못했고, 코딩은 while문에서 컴퓨터가 뻗어버렸다. (각종 코드들을 아주 대~충 읽을 줄만 한다. 아키텍처가 복잡해지면.. 그땐 포기.) 운동을 시작하면 몇 달을 가지 못했다. 최근까지는 직장마저 자주 옮겨다녔다. 그래서 나 끈기가 있는 사람인가?라고 스스로를 자주 의심했다. 이젠 60편이 넘는 뉴스레터를 마감하면서 힘든 마감도 어떻게든 해내는 나를 믿게 되었다. 그동안은 백 프로의 마음이 아니면 하고싶지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하기 싫을지언정 "아 씨바 그냥 하지 뭐",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숙취가 심했던 어느날, 한 문단을 쓸때마다 토하면서 마감한 회차도 있었으니까(몇 호였더라. 글에서 술냄새 안 나서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뉴스레터 쓰는 나, 는 또다른 정체성이  되어주었다. 출근해서 커피 세 잔과 탄산수 열 캔을 달고 일하는 얀과, 퇴근한 뒤에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는 권소연으로만 살기엔 문득 허무해질 때가 있었다. 읽고 쓰는 뉴스레터 발행인 소얀으로서, 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독자들의 사연에서 고3의 연애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고, 팀장님의 마음에도 빙의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뉴스레터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니까 꽤 좋은 일이 아닌가.


물론 매주 마감하기 싫어질 때도 있다. 자신만만하게 "저는 뉴스레터 쓰는게 이렇게 감사해요" 라는 글귀를 써서 발송하고는 다음날 아침 뚜껑을 열어보니 반응이 시원찮으면 이제 때려칠까.. 라고 생각한다. 다행인지 아직까지는 주말이 오면 관성적으로 뉴스레터 에디터부터 켜고 있지만 말이다.


시간이 더 있다면 퀄리티를 높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주말 반나절이 아니라 더 많은 시간이 있다면 하고 싶은 것들도 있다. 인스타 계정에다가 읽은 책 후기도 자주 올려두고, 미리 페이지 하나 만들어서 문장술사 사연처럼 문장을 킵해두고싶기도 하다. 뜻맞는 사람이 있으면 아예 사이드 프로젝트처럼 팀이 되어 해도 좋겠다, 만은 평소에 회사 메신저 말고 카톡도 답장하기 싫은 인간인데 이건 요원해보인다.


혹은, 아예 뉴스레터를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을까. 마감을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아질 때가 있을까. 언젠가 아무 글도 전하고 싶지 않고, 글을 읽는 것 자체가 힘들어질 순간이 있을까. 한 주를 너무나 충실하게 보내서 땅파서 하는 이 마음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을까. 그런 순간이 오지 않도록, 땅파서 하는 이 마음이 지치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당근을 줘야겠다.


원래 이 글은 일주일 전에 써두었는데, 이 글을 쓰고도 너무 지쳐서 반려인에게 맥주 한 캔 마시다가 술주정을 한 적이 있었다. 아마 브런치에서 "작가될거면" 메인에 올라갈 일반적인 글을 쓰지 말고 날카로운 글을 쓰라고 한 글을 읽고나서인가보다. 출간작가를 꿈꾼다는 전제하에서는 맞는 말인데 왠지 그 말이 조금 우울했다. "나는 땅파서 글쓰는데, 이런 사람은 필요가 없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데 이번주에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소결을 내린게 있다. 우리는 복합적인 페르소나로 구성되어있고, 그들의 욕망을 존중하라고. 그렇다면 일 열심히하는 얀 말고, 돈독 올라서 둥지 만들고 싶은 권소연 말고 언뜻 보긴 무용한 소얀을 조금 더 좋아해줘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직장 열심히 다니며 딱히 도움 안 되는데 글 쓰는 소얀을, 딱 주말 반나절만큼.


*이번주에 읽었던 책은 코인열차 탑승기, 장류진 작가의 달까지 가자(진짜진짜 재밌었습니다), 사내 독서모임에서 읽은 제현주 작가의 일하는 마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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