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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환 Apr 10. 2020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에 담긴 이야기

'여행'과 '동행'의 뜻 - 결혼을 약속한 커플이 떠난 여행의 결말

앞에서 여행의 종류와 동행의 뜻 등에 대해서 다뤘는데, 여기서는 영화 <Letters To Juliet(레터스 투 줄리엣)>에 이러한 내용들이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영화는 작가 지망생이자 자료조사원인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가 결혼을 약속한 약혼남 빅터(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와 같이 일종의 신혼여행(Pre-honeymoon 또는 Earlymoon이라고도 함)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베로나에 도착한 두 사람은 우선 빅터의 의지대로 와이너리와 치즈공장 등을 포함하여 이곳저곳 둘러 다닌다. 하지만 원래 베로나 도심 구경을 하고 싶었던 소피는 점차 지쳐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빅터가 120km 떨어진 곳의 트러플 버섯 농장에 가고 싶다고 하자 더 이상은 참지 않고 자신은 베로나에 남아 구경하겠다고 한다. 이때부터 여행이 마무리될 때까지 둘은 따로 각자의 방식대로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이후 소피가 우연히 '줄리엣의 발코니'를 방문하게 되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아름다운 소도시 베로나와 시에나의 모습들이 영화 러닝타임 내내 펼쳐지며 눈을 즐겁게 한다.   

시에나 대성당(Duomo di Siena)의 모습

사실 소피와 빅터는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그 목적이 너무나도 달랐다. 관광과 휴가를 생각하고 있던 소피와는 달리, 식당 개업을 앞두고 있던 빅터는 단순히 공급자들을 찾아다니는 일종의 출장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소피는 여러 관광지들을 둘러 다니는 sightseeing이나 여유로운 일정을 즐기는 vacation이 목적이었지만, 빅터에게는 이번 여행이 travel('일, 노동'을 뜻하는 프랑스어 travail에서 유래), 아니 business trip에 가까웠던 것이다. 실제로 영화에서 소피는 직장 상사에게 여행 이야기를 할 때에는 vac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빅터에게 트러플 농장에 가라고 이야기할 때 자신은 sightseeing을 하겠다며 이야기했지만, 빅터는 단 한번도 이러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여행을 다녀온 뒤 소피와 빅터는 결국 헤어지게 된다. 소피는 원래 빅터가 자신의 식당을 오픈하는데 거의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있음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했기에 결혼까지 약속했던 것이다. 하지만 소피는 같이 여행을 떠나서도 일에만 몰두하며 자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에 서운함을 느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우연히 만난 다른 동행들과 뜻하지 않았던 여행을 떠나며 자신이 의도적으로 숨겨왔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작가를 꿈꿨지만 자신의 글에 자신이 없었던 그녀가 여행지에서 만난 동행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아름다운 글을 써 내려갔던 것이다. 그 후 모든 여행이 끝난 뒤 '파혼'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전의 글에서 여행은 그 목적에 따라서 사용하는 단어는 다르며, 평생 같이 빵을 먹고 살아가야 할 '동반자'와 결혼하기 전에 힘든 여행을 떠나봐야 한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소피와 빅터의 관계가 이별로 마무리되었던 것은 둘의 여행 목적이 달랐을 뿐 아니라, 여행을 떠나며 소피가 자신이 숨겨왔던 모습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원래 요지였던 '같이 힘든 일을 겪으며 서로 감춰왔던 본성을 알게 된다'는 개념과는 다르지만, 같이 여행을 떠나는 과정을 통해 분명히 소피의 삶은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분명 빅터의 삶에 대한 가치관도 변했을 것이다. '식당 개업'이라는 목표만을 보며 달려가다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것은 분명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런 과정을 겪으며 그도 다음에 만날 소중한 사람에게 더 신경 쓰고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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