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ritrottoir (공중화장실) : Urine(소변, 오줌) + Trottoir(보도, 步道). 프랑스 센 강변에 있는 소변기
올해 가장 인기 있었던 작품 중 하나였던 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외국인들이 프랑스 또는 프랑스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환상과 클리셰 등을 다루면서 약간의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여러 유튜버들이 실제로 파리에서 거주했던 프랑스인과 협업하여 영화에서 나온 장면들의 진위 여부에 대해 다루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존재하기에, 부정하려야 할 수 없는 충격적인 존재가 하나 있었다. 바로 프랑스 센 강변에 있는 소변기다. (드라마에선 에밀리가 조깅 후 미국 본사에 있는 상사와 영상 통화하고 있는데, 갑자기 에밀리 뒤로 어떤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것을 꺼내어 소변기에서 볼일 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센 강의 산책로에서!!)
안타깝게도(?!) 나는 파리에 여행 갔을 때 이를 보지 못했었지만, 센 강변뿐 아니라 도심 몇 군데에 이 ‘공중화장실(Uritrottoir, 위리트로투아)’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길거리에 소변기를 설치해 둔 것일까? 이는 길거리 가다가 마려우면 바로 바지 지퍼를 내리고 볼일을 해결하는 노상방뇨족들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파리에 가보면 노상 방뇨하는 이들의 심정을 (굳이 이해해보고자 노력한다면)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화장실이 있는 지하철역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며, 길거리의 몇 안 되는 공중 화장실은 별도의 이용료가 부과된다. 터질 것 같이 급하다면 근처 식당이나 카페에 가서 소정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양해를 구한 뒤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기에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맥도날드나 스타벅스 같은 곳들이 정말 반갑다! 웬만하면 눈치 안 보고 무료로 화장실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비밀번호가 걸려있는 곳들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다른 이들이 드나들 때 슥~ 따라 들어가면 된다)
위리트로투아에서 볼일 보며 관광객들에게 인사하는 어느 남자 (출처 : The Times)
‘위리트로투아’는 외관상으로는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화분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기에 나름의 인테리어 효과가 있다고 한다. 게다가 소변을 퇴비로 사용한다고 하니 나름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조준에 실패하여 길가에 줄줄 흘러내리는 오줌 줄기들이 찌릉내를 유발하는 것이다.
사실 남자들의 (오줌) 조준 실패로 인한 악취 유발 문제는 오랫동안 논란거리가 되어왔다. 이것 때문에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그 유명한 소변기의 파리 한 마리다.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의미하는 용어인 Nudge(넛지)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옆구리를 쿡쿡 찌르다’는 뜻이 된다. 대놓고 말하는 대신 슬쩍 주의를 줌으로써 특정한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다. 왜 그런 상황 있지 않은가. 같이 빙 둘러앉아서 밥 먹고 있는데, 개념이라고는 1도 없는 사람이 눈치 없이 헛소리를 해대며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것 말이다. 이때 우리는 주의를 주기 위해서 옆구리를 쿡쿡 찌르곤 한다. 이것이 바로 ‘넛지’다. ‘하지 말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단 자연스럽게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다.
‘소변기의 한 마리 파리’는 이러한 넛지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남자 화장실에는 서서 볼일을 보는 남자들을 위해 소변기가 마련되어 있는데, 그런 편의를 제공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조준을 잘못해 옆으로 튀기거나 주변에 찔끔찔끔 흘리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고 한다. 이렇게 빗나간 오줌 줄기들이 쌓인 채 방치되며 냄새, 아니 찌릉내가 진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밑져야 본전이다'는 생각으로 파리 한 마리를 소변기에 그려놨는데, 신기하게도 이 작은 것 하나가 오줌보가 튀는 것을 방지하는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소변볼 때 조준점이 눈에 보이면 조금 더 집중하게 되는 남자들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한 것이다. ‘저 파리를 꼭 떼어내 버리겠다’는 다짐으로 자신의 물줄기를 쏟아내다 보면 어느새 볼일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이런 것을 보면 남자들은 참 단순하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것들이 도입되어 있다. 특히 어느 휴게소 화장실에는 오줌보의 세기로 대결하는 게임도 있다고 한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바깥에서 새던 오줌줄기는 사실 집 안에서 새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집안싸움을 야기시키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반 가정집엔 소변기가 없다. 그렇기에 변기에 작은 것과 큰 것 모두 해결해야 한다. 큰 것을 해결할 땐 남자든 여자든 다 앉아서 볼일을 보기에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작은 볼일을 변기에 해결할 때엔 문제가 생긴다. 변기커버를 들고 볼일을 보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도 밖으로 튀기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이를 예방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은 단 한 가지다. 바로 ‘앉아 쏴’. 하지만 귀찮다는 이유로 이것이 잘 지켜지지 않고, 그러면 다음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앉아서 볼일 보는 게 그렇게 힘들어? 어??!”
“갑자기 또 왜 그래. 별로 튀지도 않았구먼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뭐? 예민?? 변기커버만 올려놓고 볼일 보면 끝이야? 변기 가장자리에 튄 니 이물질들은? 그거 물로 한 번이라도 정리한 적 있어? 그리고 고요하고 잔잔하게 있던 변기 물에 네 놈의 낙하물이 마찰을 일으켜 튀어 오르면서 칫솔이나 비누에 묻은 것들은 또 어쩔 거야? 어?? 변기 가에 누런 것들 얼룩진 것 볼 때마다 얼마나 찝찝한 줄 알아?”
“그래서 내가 뭐 어떻게 할까? 나도 한 번씩은 앉아서 볼일 봐. 그리고 샤워할 때 물로 변기 한 번씩 청소한다고. 그 정도면 된 거 아니야? 아침부터 잔소리 좀 하지 마 제발. 왜 굳이 피곤하게 싸움을 거는 거야?”
남자의 오줌 줄기 하나가 이처럼 많은 이야깃거리가 된다. 집에서 싸움을 일으키기도 하고, '넛지'라는 사회학적 개념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되기도 하며, 심지어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한다. (나는 그 드라마를 소재로 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이 외에도 이야기 소재거리가 무궁무진하다. 개똥부터 시작해서 식당 테라스에서 흡연, 싸가지없고 불친절한 프랑스인들, 물이 끊겨 비데에서 머리 감기, 작은 죽음(Petite mort) 등 글로 엮으면 최소한 몇 페이지는 쓸 수 있는 것들이 한가득이다. 10회까지 빠르게 정주행 하며 흥미로운 내용들을 찾아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