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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진미 Sep 23. 2022

채만식의 태평천하 vs 엑소의 아이돌 천하

[현대문학-with 케이팝] 태평천하에서 흘러나오는 엑소의 으르렁

현대문학과 케이팝!

현대문학은 역시 케이팝이 있어 풍요롭고 또 풍성합니다. 문학수업할 맛이 그래서 있고요. 이번에는 현대소설 태평천하와 아이돌 그룹 엑소 천하를 엮어 보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어쩜...     

"……멋 하러 오냐? 돈 달라러 오지?"

"동경서 전보가 왔는데요……."     

지체를 바꾸어 윤주사를 점잖고 너그러운 아버지로, 윤직원 영감을 속 사납고 경망스런 어린 아들로 둘러 

놓았으면 꼬옥 맞겠습니다.     

"동경서? 전보?"

"종학이놈이 경시청에 붙잽혔다구요?"

"으엉?"

외치는 소리도 컸거니와 엉덩이를 꿍― 찧는 바람에, 하마 방구들이 내려앉을 뻔했습니다. 모여 선 온 식구가 제가끔 정도에 따라 제각기 놀란 것은 물론이구요.      

윤직원 영감은 마치 몽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양, 정신이 멍-해서 입을 벌리고 눈만 휘둥그랬지, 한동안 말을 못 하고 꼼짝도 않습니다. 그러다가 이윽고 으르렁거리면서 잔뜩 쪼글트리고 앉습니다. 

- 채만식, ‘태평천하’에서     


이 장면에서 놓칠 수 없는 k-pop 노래 하나!     

박자, 음정은 무시하지만 특유의 짐승돌 냄새나는 안무만은 고집하면서 불러 젖히는 엑소의 ‘으르렁’에 아이들도 신난다. 이 태평천하를 아이돌 천하로 장악한 대세돌 엑소가 아닌가? 감히 엑소의 으르렁을 윤직원의 으르렁과 비교하다니, 엑소 팬들의 으르렁대는 소리가 들리는 건 아니지?  

   

환호성이 울리며 떼창을 한다. 수업이 난장판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기도 하는 게 또 문학수업의 맛이요 멋이 아닐는지. 아, 이 태평천하에 교장실에 불려 가기야 하리오.     


나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 대

나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 대

나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 대

너 물러서지 않으면 다쳐도 몰라 

    

나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 대

나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 대

나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 대

너 물러서지 않으면 다쳐도 몰라         

- 엑소, ‘으르렁’에서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착착 깎어 죽일 놈……! 그놈을 내가 핀지히여서, 백 년 지녁을 살리라구 헐걸! 백 년 지녁 살리라구 헐 테여…… 오냐, 그놈을 삼천 석거리는 직분〔分財〕하여 줄라구 히였더니, 오―냐, 그놈 삼천 석거리를 톡톡 팔어서, 경찰서으다가 사회주의허는 놈 잡어 가두는 경찰서으다가 주어 버릴걸! 으응, 죽일 놈!“     

마지막의 으응 죽일 놈 소리는 차라리 울음 소리에 가깝습니다.     

"……이 태평천하에! 이 태평천하에……."

쿵쿵 발을 구르면서 마루로 나가고, 꿇어앉았던 윤주사와 종수도 따라 일어섭니다.     

"……그놈이, 만석꾼의 집 자식이, 세상 망쳐 놀 사회주의 부랑당패에, 참섭을 히여. 으응, 죽일 놈! 죽일 놈!"     

연해 부르짖는 죽일 놈 소리가 차차로 사랑께로 멀리 사라집니다. 그러나 몹시 사나운 그 포효가 뒤에 처져 있는 가권들의 귀에 어쩐지 암담한 여운이 스며들어, 가득히 어둔 얼굴들을 면면상고, 말할 바를 잊고 몸둘 곳을 둘러보게 합니다. 마치 장수의 죽음을 만난 군졸처럼…….

- 채만식, ‘태평천하’에서     


얘들아,

‘마치 ~ 처럼’에는 비유적 표현이 쓰였는데, 혹시 마치가 어떻게 생긴 물건인지 아니? 

그러면서 칠판에 그림을 몇 개 그린다. 

요건 마치, 요건 망치, 또 요거는 장도리, 요렇게 생긴 건 또 몽치,      

이렇게 그림을 설명하다가 넌지시 질문을 또 하나 던진다. 얘들아, 그럼 ‘투머치’는 어떻게 생긴 걸까? 

쯧쯧, 잠 오는 5교시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노래하는 문학수업을 위해 또 애쓴다.


투머치 토커는 박찬호이고, 뭐지? 뭐지? 웅성웅성.

이때 엑소의 ‘중독(overdose)’ 한 소절 불러 젖히면 아이들은 또 중독이나 된 듯, 떼창을 한다.    

  

Too Much 너야 Your love

이건 Overdose

Too Much 너야 Your love

이건 Overdose                         

- 엑소, ‘중독’에서     


그런데, 이 노래를 부를 땐 반드시 양볼에 집게손가락으로 톡톡 터치하는 그 디테일한 안무가 함께 나와야 제맛 아닌감? 그러거나 말거나 교실은 환호작약 난장판이다. 이거 어찌할거나? 그야말로 감당(堪當)이 불감당(不堪當)이다. 


삽화 출처=좋은책 신사고 고등학교 문학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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