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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중진미 Aug 08. 2022

이화에 월백하고 vs 피아노 협주곡 1번

[고전문학-with 클래식] 봄날 밤, 센티멘탈이든 멜랑꼴리든


고전문학에서 시조는 그 정형성으로 인해 단순 명확하고 경쾌한 장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수업에서 집중도가 꽤 높습니다. 이조년의 '이화에 월백하고' 는 클래식 음악 하나가 있으면 금상첨화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쇼팽의 음악은 그래서 딱이라고 봅니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一枝) 춘심(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련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 이조년, ‘다정가’     


봄날 밤에는 잠들지 말라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우애 있는 형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형과 함께 길을 걷던 동생이 길가 풀숲에서 반짝이는 금덩어리를 주웠다. 마침 두 덩이인지라 사이좋게 하나씩 나눴다. 배를 타고 오던 중 갑자기 금덩어리를 강물에 던져 버렸다. 형이 놀란 표정을 짓자, “형, 이 물건이 요물이야. 형의 것을 자꾸 빼앗아 가지라고 해. 내가 이러면 안 되잖아.” 형제간 우애에 금이 갈 것을 염려하는 동생의 깊은 마음을 형도 알았던지 자신의 금덩어리도 강물에 던졌다. 그러곤 손잡고 집으로 향했다는 이야기.    

 

아, 나의 최애 다정가

아버지는 자식들이 장수하면서 가문도 영원히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일 큰 아들은 백 년, 둘째는 천년, 셋째는 만년, 넷째는 억년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그 막내가 조년으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어렸을 때부터 영리한 티가 팍팍 났다. 고려말 예문관 대제학을 지냈으며, 강직하고 엄격한 성품의 소유자로 알려졌다.     

문학작품을 읽다 보면 때론 막 흥분하는 작품이 있다. 그러곤 나도 모르게 입에 거품을 물고 썰을 풀어간다. ‘이화에 월백하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이때는 흥분도 갑(甲)의 하이텐션으로 시종일관 이어진다.     


내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해볼진대, 

고향집 바로 뒤에는 이조년의 성주 이 씨 제실이 있다. 가난한 시골 농촌에서 성주 이 씨의 시제(時祭)는 온 마을 어린애들이 다 몰려드는 최대의 잔칫날이다. 산 너머 이조년의 묘 앞에서 꼬맹이들은 과일이며 시루떡을 코를 훌쩍거리면서 받아먹었다. 그러곤 제실에 모여 그가 지은 ‘이화에 월백하고’를 의미도 모른 채 큰소리로 읊곤 했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읊었던 시조를 오늘 내가 접수하고 있다는 이 사실은 사람을 얼마나 기분 좋게 하는지, 아,,, 아무도 모를걸.     


다정도 병이다

배꽃이 눈부시도록 하얗게 핀 밤에는 달빛도 하얗다. 두견새마저 슬피 우는 이 봄날 밤에 잠을 잔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다정다감하기 그지없는 화자가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면서 잠 못 이루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시조가 임금이나 연인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의 발로에서 불렀든 그냥 봄날 밤의 자연 현상에 대해 노래했든, 정 많은 사람은 어딜 가나 괴롭다. 그래서인가 다정도 병이란 게.    

 

배꽃이 피는 봄날, 실제로 자정을 전후하여 은하수가 남북으로 길게 하늘을 가로지르고 있다는 것은, 이 시조가 자연 현상을 피상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작가 자신이 직접 관찰한 것을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쇼팽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도 있듯이 ‘로맨틱하고 평화로운 기분에 젖어 약간의 우울함을 느끼면서, 마치 봄의 달빛이 어린 밤처럼 표현한’ 곡이다. 봄날 밤에 느끼는 애상적인 정서를 떠올려주는 듯한 기분은 이조년의 시조와 어쩜 이리 같을까.      


가슴으로 들어온다

음악 애호가 문학수가 말했다지. 이 곡은 아무런 설명 없이 들어도 가슴으로 잔잔하게 밀려 들어온다고. 애상이 깃든 가요적 선율이 빈번히 등장하는 까닭에 서너 번만 반복해 들으면 이 음악은 그대로 외워진다고 말이다.      


이조년의 시조도 그렇다. 서너 번만 반복해 낭송하면 그대로 고막을 통해 뇌에 쏙쏙 박혀 들어온다. 거짓인지 한번 읊어보자. 지금 당장, 롸잇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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