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길과 대길 사이
새해를 맞이하여 오미쿠지를 뽑아보았다.
결과는 중길(中吉).
물론 일본 진자에 가서는 아니고 인터넷으로 뽑았다. 애정해 마지않는 ’스이요도우데쇼(水曜どうでしょう)'웹사이트에서 클릭 한 번으로 뽑아주었다. 나름의 한 해를 시작하는 루틴이랄까. 대길보다 왠지 중길이 조용히 돈을 모으고 살 것 같아 약간 기분이 좋다. (참으로 긍정적)
‘스이요도우데쇼’는 말하기 시작하면 다들 도망가지만 그래도 나의 최애 일본 예능프로그램이다. 1996년에서 2002년까지 방송된 홋카이도 로컬방송으로 서서히 입소문을 타더니 2007년에는 47개 모든 도도부현에서 방송되었다. 방송의 모토는 '저예산, 저자세, 저칼로리'. 여행콘텐츠도 여럿 있는데 초기에는 복불복 주사위를 굴려서 가는 일본 국내여행으로 시작했다. 후에는 해외로도 떠나게 되지만 지방 방송국이라 예산이 넉넉하지 않아 도쿄 방송국이 1개 찍을 예산으로 10개를 찍어왔다고도 한다. 이후 부정기적으로 리턴즈 등의 이름을 달고 간헐적으로 방송되었다.
방송 시간대가 심야 시간대 편성이어서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이었고 지금 생각하면 유튜브 같은 내용이나 편집형식이 많았다. 방송 시작이 30년 전이다 보니 아무래도 그런 날 것같은 느낌이 상당히 새롭게 느껴졌던 것 같다.
출연자는 지금은 대 배우가 된 오이즈미 요(大泉洋)와 그의 소속사 사장이자 탈랜트인 스즈키 다카유키(鈴木貴之) 두 명뿐이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의 디렉터인 후지무라 타다히사(藤村忠寿)가 목소리 출연으로 상당한 점유율을 가진다. 당시 일본에서도 낯설었던 디렉터의 잦은 목소리 출연은 출연자가 3명인 듯한 느낌이 드는 연출이었다. 후지무라 디렉터 자체가 재미있는 캐릭터여서 셋의 조합이 무척 좋았다. 이런 디렉터가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방식이나 여행하는 예능, 복불복식 전개는 한국의 1박 2일이나 무한도전의 연출 방식에 영향을 주지않았나 싶다.
좌) 나를 혼란에 빠뜨린 DVD
우) ’스이요도우데쇼‘ 완전체 4인. 왼쪽부터 카메라 감독 우레시노 마사미치, 스즈키 다카유키, 오이즈미 요, 후지무라 타다히사
당시 도쿄에 살고 있어 홋카이도 방송을 볼 수 없었던 내가 ’스이요도우데쇼‘를 만난 이유는 가장 친한 친구가 삿포로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에게 홋카이도의 도산코 마츠리(道産子祭り)를 소개해주고 싶어서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주었지만 (비디오테이프는 사어인가?) 나는 마츠리 영상이 10분을 넘어가면서 급속도로 흥미를 잃었고 빨리 감기로 돌려보다 뒤에 녹화된 ’스이요도우데쇼‘와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유럽 21개국 완전제패와 일본 내 스쿠터 여행시리즈가 가장 재미있었다. 일본에 있을 때 새로 나온 ‘스이요도우데쇼’의 DVD가 있어 서둘러 예약을 하고 편의점으로 찾으러 갔다. 집에 가서 볼 생각에 기분 좋음이 MAX에 달했을 때, 전철 안에서 갑자기 머리를 스친 생각.
‘아, 우리 집에 DVD플레이어 없는데?!’
나의 어처구니 없는 DVD사건을 삿포로 출신의 그녀에게 말하자 오히려 잘 됐다며 DVD 플레이어를 들고 우리 집을 찾아 와 ‘스이요도우데쇼’ 상영회를 열었다. 물론 나의 룸메이트는 뭐 저런 것들이 다 있나 싶은 눈초리를 주었지만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스타가 될지는 몰랐던 오이즈미 요가 이제는 홋카이도 출신 중에 가장 출세한 스타로 자리 잡았다. 무려 GLAY를 제치고.
제목과 관련 없는 내용은 이만 거둬들이고 올해 뽑은 대길같은 중길의 오미쿠지 내용을 짧게 소개하자면,
원하는 일 : 이루어지지 않겠어? 대략 이루어지겠지.
기회・연락 : 오지 않겠어? 대부분 오지 않겠어?
잃어버린 물건 : 나오지 않겠어? 대부분 나올 거야.
금전운 : 어느 정도는 벌어.라고 할 수 있을 듯.
분쟁 : 싸우지 말라고!
이사 : 이사 가? 뭐 괜찮긴 하지만 좀 쓸쓸하네.
올 한 해는 싸우지말고. 대략 이루어질 일들을 기분 좋게 기다려보면서 그럭저럭 무탈하고 너그러운 일년이 되길 바라며.
모두 함께 차차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