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을 아십니까

빅과 도의 사이

by 완자

바닥에 깔린 거대한 피아노 건반모양

발로 건반을 누르면 빛이 반짝하며 소리가 난다.


'BIG'은 내가 태어나 처음 '영화관'이라는 곳에 가서 본 '영화'이다.

스크린 속은 어찌나 반짝이던지 마법에 걸린 세계 같았다.

이렇게 재미있는 것이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영화관이라는 왠지 어른스러운 공간, 근엄하고도 근사함을 느끼게 해주는 진한 빨강 빛의 의자들, 원어와 함께 나오는 세로글 자막, 스크린 속에서 스스로 빛을 내는 듯한 배우들. 쉴 새 없이 긴장하게 만드는 스토리. 나는 빨강 빛 의자에 앉아 스크린을 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영화 내용도 현실에 섞인 듯 기분만큼은 제법 멋있는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라는 상상도 한 적 없이 그리고 그 어떤 노력도 없이 그저 나이가 들면 그럴듯한 어른이 되는 줄 알고 어서어서 한 해가 지나가길 바라던 시절이 있었다.

릴리 프랭키는 '사람은 나이를 먹는 것 정도로 성장 따위 하지 않는다. 아저씨가 차분해 보이는 건 그냥 기운이 없기 때문이다.' 진작 이 말을 알았다면 조금은 정신을 차렸었을까.


요사이 아드님은 사춘기의 정점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계시다. 나 역시 갱년기의 맨 앞 줄에서 1등 자리를 누구에게도 내주지 않고 달리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우리 둘은 전력 질주로 정 반대 방향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지만 좁아터진 나의 마음속에 아드님을 담아낼 수가 없는 요즘. 핸드폰이 내 속 터짐을 헤아린 건지 아니면 대놓고 엿듣고 있는 건지 오이즈미 요가 자신의 딸과 나눈 대화에 대한 영상을 추천해 왔다.


(욕조에 부녀가 앉아 나눈 이야기이다.)

딸 : 나는 커서 아빠처럼 되고 싶어

오이즈미 요 : 오-(으쓱하며) 왜 그렇게 생각했어?

딸 : 아무런 노력 없이 여기까지 온 거잖아?

오이즈미 요, 잠시 생각해 본 후


아빠는 여권이 방송국에 맡겨진 채로 어디 가는지도 모르는 생활을 몇 년을 했었어.

어느 날 갑자기 해외로 나가게 될지도 몰라.

타본 적도 없는 스쿠터를 타라고 하더니 도쿄에서 홋카이도까지 가라고 해

이런 걸 누구나 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아

하지만 아빠는 이걸 노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왜냐하면 그건 아빠한테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으니까

그러니까 너도 노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렴


오이즈미 요는 도입에 비해 꽤 이야기의 마무리가 잘 됐다며 웃었다.


딱 오늘이 '결심 포기의 날'즈음이다. 1월 3주 차에 새해 목표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올해는(올해도) 결심한 것이 없었으니 '결심 포기의 날'을 맞이하여 결심해 본다.

올해는 나의 길을 가보자. 노력이라고 생각 들지 않는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 정면에서 달려오는 누군가는 그냥 눈을 감고 지나쳐보자. 그러면 조금 기운 있는 어른이 될지도.


그리고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본다.

아드님의 전력 질주도 나의 맨 앞자리 달리기도.

지나갑니다. (최강록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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