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년생의 단상

1과 2 사이

by 완자

동갑


이 얼마나 살가운 울림인가.


고등학교 때까지는 딱히 의식하지 못했던 동갑의 존재.

같은 학교 같은 교실, 또는 다른 교실에 있는 아이들 정도로만 인식하다가 사회에 나오면서 갑자기 동갑이라고 하면 싫다가도 정이 가는 신비로운 존재. '동기사랑은 나라사랑'이라는 눈을 질끈 감고 싶은 촌스러운 구호도 있지만 내용만큼은 그 어떤 역사적 사실보다 진실에 가깝다. 같은 풍경을 보며 같이 걸어왔다는 게 갑자기 기적 같아 보인달까. 팍팍한 세상살이 속에서 우린 친구잖아. 이런 갑작스러운 내적인 친밀감이랄까.


여하튼 그럼에도 참 껄끄러운 것이 나의 태생이 빠른 년생에 있다는 점이다.' 빠른'을 밝히는 순간 미묘하게 표정이 달라지는 이도 있고 반백살이 되어서도 '빠른'타령이냐며 한숨을 쉬는 이도 있다. 어쩔 수 없다. 비록 학교는 달랐을지언정 당신과 동시대에 같은 학년을 함께 다니며 같은 교과서로 같은 내용을 배웠으므로 나도 동갑이라는 범주 안에 넣어 주란말이다. 가끔은 사회에 나와서는 그게 무슨 소용이냐며 출생 연도가 다르니 호칭을 올리라는 썩어빠진 인물도 만났었지만 그런 이들은 영원히 치질로 고생하게 저주를 퍼붓고 딱히 가까이 지내지 않으면 그만이다. (나의 그릇의 크기와 질을 극명하게 묘사한 장면)


갑자기 급발진한 느낌이 없지 않아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이야기해 보자면 동갑을 만나면 반갑다. 는 이야기이다. 사인이라도 받아서 하나하나 모아 두며 작은 앨범에 끼워두고 싶지만(무섭) 스탠더드한 인류적 관점에서 본다면 다소 공포감이 드는 행위이므로 마음속에서만 진행해 본다.


일본의 좋아하는 남자 아나운서 랭킹에서 부동의 1위를 자랑하는 아즈미 신이치로(安住紳一郎) 역시 동갑 사랑을 공공연히 밝혀두었다.

一番愛しているのは同学年。二番目は昭和47年と昭和49年の人

가장 사랑하는 건 같은 학년(쇼와 48년생=1973년생). 두 번째는 쇼와 47년생과 쇼와 49년생.

그다음은 쇼와 46년생과 쇼와 50년생이다.

이런 식으로 뻗어나가면 레와 4년생(2022년)은 헤이세이 15년(1940년생) 정도와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동갑이라면 징역 8년 정도의 범죄자까지는 끌어안을 수 있다고 했는데 내 그릇은 그 정도까지는 안될 것 같고 그저 빠른 년생 정도는 우리 동갑 친구 안에 넣어주자 이런 주장을 아주 약하게 펼쳐보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새 학년이 되면 항상 이번에는 맨 마지막 번호가 아니었으면 하며 가슴 졸였었다. 나는 빠른 년생 치고도 생일이 늦어 늘 여자 중에 가장 뒷 번호를 담당했었다. 남들은 신경도 안 쓰는 번호순서가 항상 마지막이다 보니 은근히 화도 나고 괜히 반에서 가장 덜 성장한 느낌도 들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키 순서도, 가나다라 이름순서로 한다고 해서 딱히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즉, 어떤 조건이 붙는 한 다 싫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한결 삐뚤어진 이야기를 하고 나니 침을 싹 바르고 마음을 곧바르게 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반듯하게 크기를 바라면서 이럴 때가 아니다. 그러므로 부디 누군가 빠른 년생을 운운하거든 치질을 떠올리며 '우린 친구아이가'를 한번 뱉어주시길 바란다.


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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