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와 역시 사이
메이지 시대 태생인 나의 할머니에게는 애용하는 약이 하나 있었다. 애용, 아니 그런 간단한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앙에 가까운 존재였다. 의사를 싫어했던 할머니는 아프거나 또는 다치더라도 그 약으로 모두 낫는다고 믿고 계셨다. 예를 들면 감기에 걸려 목이 아프다는 생각이 들면 그 약을 따뜻한 물에 타서 조금씩 마셨다. 언뜻 일반적으로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 약은 연고이기 때문이다.
"할머니, 그건 바르는 약이니까 마시면 안 돼요."
가족들이 계속 이야기한들 들은 척도 하지 않고는 "응, 그러니까 목에 바르는 거야."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호무라 히로시(穂村弘)의 에세이를 읽으며 우리 아부지가 떠올랐다. 아부지 역시 맹신에 가까운 그릇된 믿음을 가진 피부용 연고가 하나 있었다. 그 연고의 쓰임이라는 것은 조금 뾰루지가 났다든지 붉은 기가 올라왔다든지 약간의 생채기가 났다든지 무언가 피부에 관련된 아쉬운 상황이 있으면 ****을 바르라며 망설임 없이 건네셨다. (다행히 물에 타서 마시라고는 하지 않으셨다)
문제는 이 연고의 강력한? 효과로 조금이라도 두껍게 바르면 당분간 자국이 허옇게 남았다는 데 있다. 어렸을 때는 아무 생각도 없이 발라댔으나 가정 안에도 근대화가 거쳐 가면서 이 약은 인간에게 조금 센 것이 아닐까? 이렇게 남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약국에서도 그 연고의 모습은 볼 수 없게 되었다.
우리 동네에는 오랫동안 약국이 두 곳 있었다. 한 곳은 주광색의 조금 찬 느낌의 조명에 넓은 안경테로 얼굴의 절반을 가리신 깐깐한 표정의 약사님이 계셨고 또 한 곳은 전구색의 비교적 따뜻한 느낌의 조명에 일견 얌체처럼 보이는 약사님이 계셨다. 아부지는 전구색 약국을 일명 '여우네'라고 칭하며 이용하셨고 나는 이랬다 저랬다 했지만 결국은 '여우네'로 정착했다.
두 곳 모두 상점가에 있었고 상점가에는 빵집이며 문방구 잡화점 등등 몇 십 곳이 넘는 온갖 상점이 즐비했다. 워낙 오래된 상점가여서인지 '상인계'가 오랫동안 '신뢰'만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쌓여온 신뢰는 '계주'라는 단 한 명의 증발로 인해 단번에 무너졌고 상점가는 예전 같은 신뢰만으로는 서로를 대할 수 없게 되었다.
사실, 믿음이 무너지는 것은 의외로 순간이다. 혹시가 역시가 되는 순간. 우리는 그 찰나들을 여러 번 분명 목격했지만 조금만 형태를 바꾸고 다시 나타나면 또다시 속고 만다. 서로라고 느꼈던 친절함이 한쪽은 어리석음으로 둔갑해 버리는 세상이다.
마음의 생채기야말로 연고를 물에 타서 마시면 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호무라씨의 할머니는 진작에 알고 계셨던 걸까.
꿀꺽꿀꺽
생채기 난 마음까지 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