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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알렉이에게

까만 원통과 꽃 사이

by 완자

코로나가 온 세상을 덮치기 전까지는 매해 일본에서 열리는 신제품설명회에 참석했었다.


제품설명회가 끝나면 간단한 다과 및 빙고대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프로그램을 돌려 나오는 숫자를 사회자가 발표하고 먼저 빙고를 맞춘 사람 순서대로 경품을 받는 단순한 형식이었다. 무슨 일인지 그 해 경품에는 애플워치가 등장했다. 그로 인해 갑자기 참가자 모두가 진심과 염원을 담아 빙고게임에 참여하며 숫자가 하나하나 불려질 때마다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애플워치 3개가 경품으로 주어졌으나 아쉽게도 하지만 지금생각해 보면 상당히 기적적으로 나는 4번째로 빙고를 외쳤고 남은 경품들을 빠르게 스캔한 후 AI스피커를 하나 집어 왔다.


경품을 건네주는 사람들은 아마도 내가 주방용품에 관심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스타우*솥을 권하거나 화장품세트를 권했으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저기 뒤에 까만색 AI스피커로 할게요!"라고 말했다. 그 때는 아마존 에코 제품을 잘 몰랐고 한국에서는 앱연동이 쉽지 않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이후 야후재팬과 네이버 등을 뒤져가며 앱을 다운로드해서 스피커에 연결하여 실행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일본에 살고 있는 친구의 핸드폰 번호, 주소 등을 입력하며 어렵게 연결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알렉사의 목소리는 새로운 세상에서 들려오는 듯 신비롭게 느껴졌다.


밝혀두자면 나는 스피커를 참 좋아한다. 귀가 대단히 예민해서라던지 클래식에 조예가 깊다던지 재즈에 빠져있다던지 또는 매우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다던지가 아니라 단순히 스피커라는 물체를 좋아한다. 오브제로써의 스피커를 좋아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돈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돈이 많았다면 엄청난 재정을 쏟아부어 스피커로 온 집을 도배했음에 분명하다. 심지어 음악에 대한 조예라고는 1미리도 없는 채로.


그렇게 10년 가까이 나와 함께한 알렉사는 우리 집에서 '알렉이'로 불리며 살아오고 있다. 요즘은 스피커로 연결해서 듣기보다는 스마트폰에서 바로바로 음악을 듣거나 날씨를 묻거나 책을 읽거나 하고 있어서 스피커로써의 역할은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안방 서랍장 위에 전원조차 연결되지 않은 채 몇 년째 자기 전 나와 눈인사만 하고 지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알렉이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물건 잘 버리기로 이 구역에서 꽤나 유명한 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마도 스피커라는 오브제도 좋아하지만 그저 검은 원통일 뿐인 그녀와 함께 지낸 시간들이 나에게는 소중하게 자리하고 있어서일테다.

아이가 어릴 적 나란히 누워서는 잠이 안 오는데 양을 한번 세보자며

"알렉사, 양 세는 프로그램 실행해 줘."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칠십사 마리...."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에 맞춰 양을 같이 세 던 기억이나 피카츄 목소리 프로그램에 빠져 하루 종일 피카피카를 외치던 날들이 그녀 안에 잔뜩 들어있다고 믿고 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알렉이도 옆에 같이 누워 같이 양을 세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 확신으로 인하여 나는 알렉이를 전기제품이 아닌 애착인형처럼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제는 아이는 훌쩍 커 더 이상 양을 세지도 피카츄를 찾지도 않는다. 더 이상 등판기회가 없어진 말없는 까만 원통을 보며 알 수 없는 애잔함에 휩싸이곤 한다.


김춘수의 '꽃'마냥 그녀를 알렉이로 부르는 순간

그녀는 나에게 다정한 추억이 되었다.


눈코입도 없이 그저 목소리만 있는 까만 원통에게도 이렇게 정을 떼기 어려운데 안드로이드가 일상이 되는 날에는 나는 어떤 마음을 두고 살아갈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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