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전업주부 도전기

돌쟁이와 중2사이

by 완자

얼마 전 퇴사한 회사는 아이의 돌잔치를 끝내고 그 한 주 뒤 입사했다. 그 아이가 올해 중2가 되었다. 강산이 한번 변했고 이사를 두 번 했으며 내 팔자주름은 깊어졌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와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치열하게 우열을 가리며 서로 선두 올라서기를 반복하며 지냈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에 코로나가 온 세상을 덮쳤다. 아이는 집에서 노트북으로 EBS수업을 하루에 몇 개씩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나서였을까 아이는 눈에 띄게 고개를 흔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매스컴의 영향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매스컴을 끊어도 고개는 계속 흔들어댔으니까. 고개를 흔드는 것이 조금 진정되는가 하면 '음, 음' 소리를 내기도 하고 팔을 꺾는 듯 행동하기도 했다. 친한 반 친구 엄마에게 '요즘 xx가 아픈 것 같다고 우리 아이가 이야기하던데 무슨 일 있나요'라는 전화를 받기도 했고 아이가 좋아하던 주짓수 학원에서는 어린아이들이 우리 아이가 목을 가다듬는 듯한 소리를 따라 한다고 저녁 성인부 시간에 와줄 수 있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는 개구지지만 학습도 잘 따라가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던 '보통의 학생'이었다. 조금 자주 어깨를 돌리고 목을 가다듬는 듯한 소리를 낼 뿐.


회사를 다니는 동안 아이는 친정에서 잘 돌봐주셨다. 친정 덕을 많이 본 나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고 했는데 아마 여러 시대에 걸쳐 굵직한 나라들을 구했던 것이 틀림없다. 부족함 없이 때로는 지나친 사랑으로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집 앞에는 아주 낮은 산이 하나 있었는데 그렇게 외출을 꺼리시는 아부지도 날이 좋으면 아기띠에 아이를 넣고 산에 가서 바람을 쐬시기도 하고 집에서는 탱크그림을 그려주시기도 하고 '블루클럽'도 데뷔시켜 주셨다. 엄마는 이유식을 포함해서 모든 식사를 고기, 생선, 나물 할 것 없이 골고루 넣어 만들어 주셨다.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는 학원 라이딩을 도맡아 하시며 아이가 학원 수업 듣는 시간에는 주변 공원에서 묵주알을 돌리시며 아이를 기다리셨다.


아이는 이사 오면서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었는데 얼마 전 새언니가 피아노 학원 선생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조카와 우리 아이는 피아노학원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다닌 학생이다. 피아노를 처음 접해서 체르니 40까지 가르친 아이들은 아직까지도 조카와 우리 아이 두 명뿐이라서 생각이 많이 난다고. 요즘 아이들은 체르니를 거의 배우지 않는 데다가 피아노자체도 오래 배우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교과 학원을 다니기에도 벅차기 때문일 테다.


오랜만에 친정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할아버지가 데뷔시키신 블루클럽에 들러 아이 머리를 깎았다. 원장님은 아이의 이름까지 기억하며 반가워하셨다. 할아버지는 잘 계시는지. 조카들 이름을 줄줄 대시면서 조카들도 잘 있는지. 지금 몇 살이 되었는지, 아직도 동글동글 귀여운지. 우리 아이에게도 "이제 훌쩍 커서 원장님하고 대화도 하는구나"하시며 환한 얼굴로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아이는 이렇게 쑥쑥 커간다.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아이는 동네 곳곳을 누비며 흔적을 많이 남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지만 아이가 크는 동안 직접 보지 못한 순간들이 훨씬 더 많음을 안다. 중2가 되어서도 아이는 여전히 고개를 돌리고 음, 음 소리를 낸다. 그 어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엄마가 옆에 없어서 틱이 심해졌나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오곤 한다. 이제부터는 아이의 일상에 엄마의 흔적을 조금씩 더 남겨보려 한다. 살짝이라도 너의 잔기침이 잦아드는 곳에, 목이 덜 아픈 장면들 그 사이사이에 엄마가 함께 하길. 바라고 바라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알렉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