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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미녀 Nov 25. 2020

돈 벌려면 이 업계를 뜨세요.

미우나 고우나 출판업

재테크를 시작하면서, 그리고 지금도 계속하면서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해서 매일 출근해서  사무실에 앉아있을 때마다 생각나는 것입니다. 바로 '돈 많이 벌고 싶으면 출판업계는 안된다(틀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 일을 무척 좋아합니다. 애정이 너무 넘치고 흘러서 일을 바라볼 때도, 일을 하고 있을 때도 즐겁습니다. 물론 진행 상황에서 벌어지는 자잘한 것들에 화도 내고 짜증도 나며 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며칠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매우 열심히, 진심으로요. 입사 10년차인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나 애정이 깊은 이 일은 돈에 있어서만큼은 최악입니다. 이전 글에도 썼듯 출판업계에 있다면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커녕 어느정도 버는 것 수준입니다. 다른 업계사람들이 보면 기겁할 만한 연봉 테이블은 물론이거니와, 그 흔한 보너스 역시 손에 꼽습니다. 상여금이라는 존재가 있기는 있는데 이것도 그저 내 연봉에서 잘라낸 조삼모사일 뿐입니다. 복지도 몇몇 기업 빼고는 거의 없으며, 있어도 대기업의 그것과 비교해본다면 정말 보잘 것 없다고 평가해도 무방한 수준이구요. 제가 출판업계 전수조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가 이렇다는 이야기입니다. 혹시나 두둑한 연봉, 흔한 보너스와 인센티브, 빵빵한 복지가 있는 곳이 있다면 제보해주세요. (즉시 이직 준비합니다.)

어쨌거나 제가 다니는 회사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있는 것에 만족하며 다닙니다. 어쩔 수 없지요, 제가 선택한 회사이니까요.


일단 매일 8시간 이상을 머물며 내 전부를 쏟아붓는 곳에서 근로소득으로 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면 나머지 시간은 어떠할까요. 디자이너나 개발자와 같이 별 다른 기술이 있어서 또 다른 수입을 만들어내면 조금 나을까요. 그런데 그마저도 겸업 금지 조항에 걸립니다. 눈 딱 감고 몰래 한다면야 못할 건 없겠지만 어쨌거나 불허는 불허입니다. 겸업 금지 조항은 어느 직종이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러니 월급쟁이는 월급으로 승부를 봐야하는 것이지요. 어쨌거나 내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해서 돈을 버는데, 그 일의 질이 어떻든 컨텐츠가 어떻든 '돈 많이 주는 곳이 장땡'이란 겁니다. 월급쟁이의 목표는 '돈 많이 버는 직장'에 있어야 옳습니다. (물론 돈만 봤을 때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출판업계에 있는 모든 분들은 '책과 함께 하는 삶'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출판업계 사람들을 만나면 '책을 좋아한다'는 기본 전제가 늘 깔려있다면 맞을까요. 이건 다른 산업과는 다른 느낌이지요. 예를 들어, 유통사의 구두MD가 있다고 칩시다. 구두(잡화)업계 사람들끼리 모이면 저 사람은 꼭 구두의 생김새를 좋아하고 최신 트렌드를 꿰뚫고 있으며, 구두를 수없이 쌓아놓고 아끼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아닐 겁니다. 그저 '일'일 뿐일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출판업계 사람이라면 '책을 좋아하는, 즐겨 읽는 삶'이 그 사람에게 베이스로 깔려있습니다. 제가 10년간 이 업계에 있으면서 만난 사람들은 반드시 책과 부둥켜 안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제 경험에 의거해서 99%는 확신합니다.


그 래 서

돈도 못 버는 이 출판업계를 떠나지 못하고, 또 그다지 떠날 생각이 없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미 우 나 고 우 나

책이 좋아서 이 일을 하고, 책을 더 많이 읽으려고/팔려고/만들려고 이 일을 합니다. 왠만한 유명한 책은 대부분 읽습니다. 주로 자기가 몸담고 있는/일하고 있는 특정 분야에 쏠려있는 경우가 많지요. 왠만한 출판 트렌드는 빠르게 익힙니다. 어떤 책이 쓰여지고 어떤 책이 많이 팔리고 어떤 책이 '재미있는지' 촉각을 곤두섭니다. 내 일을 잘 하기 위함도 있지만 결국은,


책이 좋아서요.




슬프지만, 이 사실(돈을 벌기 위해선 출판업계를 떠야한다는)을 깨닫고나서 저는 큰 갈림길에 선 적이 있었습니다.

출판업을 때려치고 돈 많이 주는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인가, 아니면 돈과는 큰 연관이 없는 이 애증의(?) 출판업계에 남아서 발버둥쳐볼 것인가.


그리고 아시다시피 저는 후자를 택했고, 다행히도 운이 좋게도 월급 외의 소득을 만들어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자유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금은 책을 더욱 진심으로 좋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을 하고 사무실에서 생각나는 바로 그 문장입니다.

'쥐꼬리 만한 월급으로 할 일은 드럽게 많다. 아주 그냥 지겨워죽겠어, 그치만 당장 이 책은 좋은데?'


파주 출판단지의 흔한 카페 풍경.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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