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미녀 Nov 28. 2020

선배님들, 죄송합니다만

저는 돈이 더 좋습니다.

출판업계가 박봉이고 부가수입도 없으며 연봉 테이블이 절망적인 것 외에도 돈을 벌기 힘든 가장 큰 환경적 요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위 동료들 때문입니다. (충격)




앞서 말했듯 출판업계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이 사람들 중에서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돈을 좋아하더라도 '난 돈이 좋아'라고 공언하는 사람이 드뭅니다. 농담 삼아 하기는 해도 그것이 주류이지 않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좋아할 텐데 말입니다.


이건 왜 그런 것일까 혼자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왜 유독 출판 쪽에 있는 사람들은 돈을 터부시 하는 경향이 짙은가 하고 말입니다. 돈만 좇는 삶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돈을 외면하는 삶 역시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혼자서 열심히 생각해본 이유 몇 가지입니다.


하나. 돈이 없어도 책은 실컷 읽을 수 있어서?

책을 좋아하고 그래서 책을 업으로 선택한 사람은 취미가 독서인 경우가 많고 부가적인 취미가 있더라도 꽤 정적입니다. (예를 들어 필사하기, 글짓기, 음악 듣기, 커피 마시기.) 그러니 책 한 권만 손에 쥐어주면 그 깊이에 따라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시간이 훌쩍 갑니다. 책값은 만원 내외, 비싸 봤자 10만 원 수준을 넘지 않습니다. 도서관에 가면 공짜입니다. 심지어 유명 출판사들에서 운영하는 연재 사이트나 바로 이 브런치라는 무료 매거진을 이용하면 꽤나 양질의 글을 주제별로 많이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이 글을 쓰고 있으니 브런치 수준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독서는 사진, 전자기기, 자동차, 시계, 음향기기 등 다른 취미와 비교해보면 정말 가성비 끝판왕입니다.

결국 나의 여가를 구성하는 취미에 돈 들 일이 별로 없습니다. 돈이 없어도 여가를 즐기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니 돈이 크게 필요치 않습니다.


둘. 돈과는 대비되는 인문학적 사고?

비단 출판업계 사람이 아니더라도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돈을 좇는 것이 경박한 것'과 같은 사고를 갖고 자랍니다. 어릴 때 우리들에게는 부모님께 학원비에 관한 것을 물으면 '너는 돈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해라'와 같은 대답이 흔했습니다. 어딜 가서도 부모님들은 우리들이 친구들보다 '꿀리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이것을 경험에서도, 책 속에서도 배웠습니다.

유독 깊이 있는 글이나 지식인의 저서를 보기 위해서는 인문학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인간의 본질을 탐색하는 인문학에서 감히 돈 따위가 등장할 수는 없지요. 우리가 알고 싶은 건 인간 본성과 사회 구성과 역사적 사실인데, '천박해 보이는' 돈 버는 법이나 돈을 많이 버는 법이나 돈을 빨리 버는 법 같은 것이 등장 할리가 만무합니다.

결국 책을 많이, 오래 읽어 온 이 사람들에게는 더 깊은, 넓은 사고를 위한 인문학 책을 접하는 기회가 많아서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니 돈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멀어집니다.


셋. 파주에 있어서?

돈을 벌려면 돈이 흐르는 길목에 있으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돈이 가장 많이 흐르는 장소는 어디일까요? 금융의 메카 여의도, 모든 산업의 집약체 강남, 전통 강자 시청 정도가 아닐까요. 장소만 짚은 것입니다. 그런데 출판업계는 어디에 있나요? 대부분의 출판사는 파주, 합정, 망원 등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주요 서점은 지점을 제외하고선 파주, 여의도, 충정로, 강남 등에 있습니다.

한 개인을 예를 들어볼까요. 만일 파주 출판단지에 근무하는 이 사람이 집을 산다고 치면 어디로 정할까요. 파주, 일산, 서울의 서쪽 정도가 아닐까요. 그런데 이곳들은 아쉽게도 부동산 가격 상승을 주도하는 곳이 아닙니다. 만일 동일한 조건에서 강남 출퇴근을 위해 분당에 집을 산 사람과 비교를 하게 된다면, 이 사람의 자산은 시간이 갈수록 차이가 나게 될 겁니다. 회사도 그렇습니다. 한 출판사가 사옥을 파주로 결정하게 된다면 강남에서 지은 사옥과의 자산 격차는 점점 늘어날 겁니다. (물론 출판사는 사옥이 어디든 간에 책 사업으로 돈 벌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만...)

어쨌거나 돈이 다니는 길목과 출판업은 그다지 친하지 못하단 겁니다. 돈과 친해져야 돈이 더 가까이 오는 법인데, 물리적인 한계가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제가 썼지만 이 세 번째 이유는 조금 억지이긴 합니다.



그 이유가 어쨌건 간에 돈을 소유하는 것에도, 벌어들이는 것에도 관심이 적은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본인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주위에서 우와아하고 달려갈 때 자신도 모르게 그쪽 방향을 바라보듯, 아무도 그쪽을 보지 않으니 나 역시 그쪽에 무엇이 존재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비싼 것을 좇고 돈이 몰리는 곳에 있고자 하는 사람들과 있으면 자신도 그렇게 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돈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돈의 부름을 빨리 받습니다. 돈을 자기 손에 쥐어 흔들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그 이후로는 돈은 나를 따라옵니다. 그렇게 자본주의는 돈을 먼저 통제하는 자에게 더 빠르게 더 많은 선물을 줍니다.


돈을 좋아하는 저는 회사 동료, 선배들과 공감하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그 외의 관심사나 대화 주제는 제 머릿속 생각과는 한참 떨어져 있어 아쉬울 때가 많습니다. 각자의 가치관이 다른 것은 당연하므로 더욱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덧.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제가 어느 정도의 자산을 이루고 나서 알게 된 여러 자산가들 중에서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참 많더란 겁니다. 즉, 돈 많은 사람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참 좋아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은 돈에 관심이 없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돈 벌려면 이 업계를 뜨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