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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미녀 Jun 24. 2021

퇴사 예정자와의 점심

그리고 인생 고민

퇴사를 앞두고 동료들과 점약을 잡는다. 하루하루 채워나가다 보니 2주 치가 금세 채워진다. 밥 약속을 못 잡는 사람들과는 티타임으로 대체. 고객사분들하고도 약속을 잡는다. 하루에 5명, 이제는 업체명이 아닌 '000 부장님'으로 달력에 메모를 한다.



퇴사 예정자와 밥 먹기는 이전 회사에서도 겪어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대강 오고 갈 이야기가 예상이 갔다. 원래도 사람들과의 미팅에 '무슨 말을 하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소심쟁이였기에, 이번에도 나름 할 말을 준비해뒀다.



"어디 다른 곳에 가나요?"

"아뇨, 집으로 갑니다. 퇴사해요."

"대표님이(팀장님이) 잡지 않으시던가요?"
"제 생각이 확고했어요."


"왜 그만두나요?"

"이제 회사원 그만하려고요."


"힘든 일/괴롭히는 사람/어려운 일이 있었어요?"
"알면서..."




그런데 웬걸.

이번에는 달랐다.

모든 미팅이 다.


이직처가 정해지지 않은, 완전한 퇴사를 하는 사람이라 그랬을까.

사람들은 퇴사 예정자를 앞에 두고 나를 향한 질문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본인의 고민, 본인의 과거를, 본인의 인생 이야기를 통틀어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니 점심시간도, 30분 정도로 생각한 티타임도 짧다. 사무실 각자 자리로 돌아가는 그 순간까지 입을 멈추지 않는다.


5년을, 혹은 10년을 봐온 동료들의 그런 모습이 낯설다.

자신의 전공과 완전히 다른 길을 고민하는 K과장님, 사업계획서를 맘에 품고 다니는 J 차장님, 내 나이 즈음 면접을 수 차례 떨어졌던 것을 인생 최악의 실패로 생각하고 후회하는 K차장님, 서울살이 월급쟁이가 힘겨워 지방으로 이사를 고민했던 Y대리님 등...


00 회사의 00팀 대리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나를 마주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렇게 진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퇴사를 앞둔 '나의 이야기'를 준비해뒀던 나는 졸지에 고민 상담을 해주고 있었다.




나도 그랬듯이,

각자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산다.

월급쟁이라면 더더욱,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가면 갈수록,

나의 일과 인생의 방향에 대해 곱씹는다.


퇴사를 앞두고 나눈 동료들의 속 깊은 이야기가 좋았다. 물론 퇴사를 했으니 앞으로는 동료들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건 아쉽지만. 하지만 이제는 안다. 퇴사를 해도 갈 사람은 간다는 것. 즉, 연락을 할 사람은 계속한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인연을 나는 믿는다.


지난 2주간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물론 나의 불분명한 앞길도.


이렇게 고민하고 신중한 사람들이라면

분명 무엇이든 잘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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