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바운드와 나
이 글은 공연 기획일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페스티벌 사운드바운드에 대한 2016년, 5월의 기억입니다.
사운드 바운드 In 부평 애스컴을 준비하며_세 번째 이야기
지독한 하루였다.
갑작스러운 두발 검사에 내 앞머리는 공중에 흩어졌고, 음악시간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 덕분에 음악 선생님의 심각한 훈계를 들어야만 했다.
잘린 앞머리만큼 꺾인 내 자존심은 점점 깊은 모래지옥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렇게 터덜터덜 걸어가던 그 날의 하굣길. 상가가 끝나고 미군 부대 담벼락이 시작되는 경계가 되는 골목에 있던 작은 화방에 충동적으로 들어갔다.
어린 시절 난 한동안 그림을 그렸었고, 꽤나 잘 그려서 주변의 인정을 받았었다. 그런데 당시 미술 학원 원장의 무책임한 한 마디에 미술의 꿈을 접어야 했다.
친절한 표정의 아저씨가 반갑게 맞아 주던 그 화방에서 오랜만에 4B 연필을 잡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교칙으로 정해진 두발의 길이를 지킬 필요도 없었고, 바른 소리를 내기 위해 손가락을 정확하게 짚어가며 연주를 할 필요도 없었다. 맘이 내키는 대로 펜으로 그리면 그것이 내 세상이 되어준 그 하얀 도화지는 그 날의 나에게 큰 위안이었다.
학창 시절 그렇게 그 화방은, 회색 빛에 삭막함이 가득하던 미군 부대 사이에서 따뜻한 온기와 위로를 주던 그런 곳이었다.
부평 신촌 지역의 이야기를 점점 알아갈수록 아쉬움이 커진 것은 신촌 지역에 과거를 담은 공간이 온전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난 3월에 행사를 치른 신포동과는 달리 공간의 부재는 축제를 준비하는데 큰 어려움으로 작용하였다. 어렵사리 마을 주민들의 협조로 공간을 대여하는 것까지는 가능했지만, 신포동처럼 그 공간의 의미를 주기가 너무 어려웠다.
대표님과 난 여러 날을 고민했고, 신포동처럼 마땅한 공간이 없음을 역이용, 공간이 없다면 공간에 집착하지 말고 부평 신촌의 이야기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 첫 번째로 탁 피디의 여행수다팀이 참여하게 되었다. 신명 나는 입담으로 여행교 교주로 불리는 탁 피디의 여행수다 팀의 참여로 우리는 천군만마를 얻는 기분을 느꼈다. 탁 피디의 여행수다는 사운드 바운드 In 부평 애스컴에서 그들의 정기 음악 콘서트인 방랑 음악회를 진행한다.
한 편에서 음악 웹진 편집장이자 인천 노래 관련 책까지 집필한 이력이 있는 평론가 나도원씨의 참여는 사람들에게 애스컴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우리의 의도에 가장 적절한 두 번째 프로그램이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과거의 유산도 부활 시켰다. 부평에서 과거 존재했던 지음 음악 감상회를 기획하였고, 보통 사람들의 소소한 음악 이야기를 담기로 했다. 참여자를 모집하는 공고에 과거 지음 음악 감상회 원년 멤버들부터, 문화부 기자, 음악 평론가, 일반 사람들까지 다양한 지원자들이 신청 메일을 보내왔다. 개인적으로 이번 음악 축제에서 가장 기대되는 프로그램이다.
처음으로 부평 신촌 골목을 방문했을 때, 앞으로의 진행에 눈 앞이 깜깜 해지는 기분을 느꼈었다. 그런데 각계각층의 사람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마을의 의미 있는 음악 축제로 만들기 위한 마을 사람들의 응원에 과거 지독한 그 날, 화방에서 받은 따뜻한 온기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사운드 바운드 In 부평 애스컴 날짜가 다가올수록 부평 신촌 골목에 따뜻함이 점점 퍼져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