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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tabook Nov 18. 2022

캐나다는 가을에도 눈이 허벅지까지 내려요?_캘거리

이상기후 시대에 캐나다 여행하기

라스베가스를 (빈손으로) 떠나며,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돈을 따서 돌아가야 했는데. 한국 가면 강원랜드에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은근히 도박 좋아하네?


라스베이거스 공항에서 캘거리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유롭게 책 읽는 고여사 옆에서 나는 점점 긴장되었다. 이제 또 다른 나라로 가는데 괜찮을까? 게다가 운전을 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도 초보운전 딱지 붙이고 다니는 내가 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부터 유튜브에 '캐나다 운전', '캐나다 교통 신호' 등등을 빠짐없이 찾아서 시뮬레이션 했지만 여전히 불안했다.


그때였다. 띠링- 페이스북 메시지가 왔다. 

며칠 후 밴프에서 만나기로 한 캐나다인 친구 프랑수아였다.


"아뉴, 오늘 밤 캘거리에 도착하지? 날씨예보 봤어? 지금 눈이 엄청 많이 와."


"얼마나 오는데?"


"엄청 많이. 폭설이야. 허벅지까지 푹푹 빠질 정도로 내릴 거라는데."


"...캐나다는 원래 가을에도 눈이 내려?"


"아니, 이상기후야."


환장하겠네. 폭설까지 오는데 내가 운전을 할 수 있겠느냐고. 게다가 우리가 예약한 차는 세단이었다. 과연 눈길에서 세단이 괜찮을까? 네이버에서 '캐나다 눈 렌트'를 검색했다. 여행 블로그와 카페를 뒤져본 결과, 눈이 많이 올 때는 세단이 아닌 SUV를 렌트하는 게 안전하다고 했다. 머리가 아팠다. 렌터카 회사에서 SUV로 변경해주려나? 그리고 SUV는 한 번도 운전 안 해봤는데 괜찮을까?


"엄마, SUV 운전해봤어?"


"아니, 나 그리고 세단이어도 운전 못한다고 말했잖아. 외국에선 운전 안할 거야."


더더욱 환장하겠네. 그래 내가 해야지. 그리고 이왕 운전하는 거, 눈길에 미끄러져서 객지에서 비명횡사하는 것보단 SUV에 내가 익숙해지는 게 낫겠지. 렌터카 회사에 일단 메일을 보내놓았다.  


우리는 에어캐나다 비행기를 탔다. 라스베이거스 갈 때와 달리 승무원들이 매우 친절했다. 국적기라 그런가?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눈 때문에 활주로가 미끄러운 관계로 비행기가 착륙을 못한다는 거다. 처음엔 '금방 처리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대수롭지 않게 기다렸다. 그런데 1시간이 넘도록 비행기는 하늘을 뱅뱅 돌고만 있었다.


참다 못한 한 승객이 항의했다.


"대체 언제 착륙합니까? 처음에 방송 한 번 하고선 전혀 안내를 안 해주니, 이거 이래서야 되겠어요? 에어캐나다 못쓰겠네! 책임져요!" (물론 영어였다)


친절한 에어캐나다의 승무원들이 정중히 사과하고 승객을 달랬다. 성질난 승객이 계속 언성을 높였지만 승무원들은 침착한 자세로 빠르게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비행기는 얼마 있지 않아 착륙했다. 활주로에 멈춰선 비행기 창밖으로 시야가 안 보일 정도로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캐나다의 가을을 보러 온 건데 첫날부터 한겨울이네. 단풍은 어떡하지.


승객 모두 내려서 터미널로 들어갔다. 이젠 짐이 안 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지쳐서 바닥에 널브러져 짐을 기다렸다. 1시간 넘게 지나서야 겨우 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고여사의 주황색 캐리어는 여전히 바위처럼 무거웠다.


"그동안 햇반이랑 라면이랑 밑반찬을 얼마나 먹었는데 왜 아직도 이렇게 무거워!"


고여사의 주황색 캐리어는 내가, 고여사는 내 작은 캐리어를 끌고 렌터카 센터로 향했다. 다행히 렌터카는 SUV로 변경할 수 있었다. 바꾼 차량은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SUV, 산타페였다. 둘이 타긴 좀 큰가 싶었지만 크고 튼튼해 보여 심적 안정감을 주었고 짐 싣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오히려 잘됐네. 


차를 끌고 나오니 밤이 되어 깜깜했다. 선진국 캐나다인데 도로가 왜 이렇게 어둡지? 가까스로 상향등을 켜고 천천히 달렸다. 뒤에서 차가 경적을 빵 울리고는 우리 옆을 지나쳐갔다. 캐나다에서는 경적을 안 울린다는데 왜 저러지? 내가 뭔가 크게 잘못했나? 이 추운 날씨에 식은땀이 났다. 다행히 숙소는 공항에서 멀지 않았다. 숙소에 도착하니 눈은 그쳐 있었다. 집 앞에 차를 대고 짐을 내렸다. 


12월이 아니라 10월 초란 말이에요!


에어비앤비 주인이 보낸 메세지에 현관문 자물쇠 비밀번호가 있었다. 자물쇠는 동그란 모양에 옛날 전화기 다이얼처럼 숫자가 동그랗게 달려 있었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여는 거지? 


“엄만 옛날 사람이니까 이런 전화기 써봤지? 비번이 이거라니까 한번 열어봐.”


“응.”


그런데 자물쇠 다이얼은 옛날 전화기의 그 다이얼이 아니었다.


“안 열리는데?”


“진짜? 다시 한번 잘 좀 해봐.”


주인이 보낸 메세지에 자물쇠 여는 방법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었지만, 당최  수가 없었다.   없이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았다. 시간은 아홉시 반이 넘어 있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받았다. 와 미치겠네. 우리나라 전자 도어락 봐. 번호 띠띠띠띠+별표 얼마나 간단하고 좋아. 


“아 추워 죽겠네 진짜!”


더운 라스베이거스에서 온 터라 둘다 얇은 차림이었다. 어쩌지? 이대로 차에서 자야 하나? 고여사가 말했다.


“왠지 할 수 있을 거 같아. 가만 있어봐.”


고여사가 정성껏 하나하나 꾹꾹 눌러 이렇게 저렇게 하니 자물쇠가 툭하고 열렸다. 나도 모르게 외쳤다.


“오 고여사 천재! 짱짱맘!”


우리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와 내가 좋아하는 서양 가정집이다! 방에 들어가니 퀸 사이즈 침대와 아기자기한 장식장이 있었다. 집을 꽤 예쁘게 꾸민 것 같긴 한데, 잠깐 둘러볼 체력조차 없었다. 고여사와 나는 각자 재빠르게 씻고 침대에 누웠다. 순식간에 잠에 빠져들었다. 잠들기 직전, 내일 430km를 어떻게 혼자 운전해서 가냐 하는 걱정이 머리를 스쳤다. 큰일이네.  

 

다음날 아침, 창문으로 눈부신 햇살이 들어왔다. 창밖에 눈이 소복히 내린 마을 풍경이 아름다웠다. 


"엄마, 창으로 햇볕 들어오는 거 봐. 집 인테리어도 너무 예쁘다. 나 이런 데서 살고 싶어!"



에어비앤비 거실 탁자에는 주변에 가볼 만한 카페와 음식점이 소개된 종이가 있었다.


"엄마, 여기가 추천 맛집인가봐. 가는 길에 들러서 먹고 가면 될 거 같애. 얼른 짐 챙겨서 나가자."


"그래 오늘 먼길 가야 하니 빨리 출발하자."


고여사와의 북미 여행, 이제 캐나다에서의 두 번째 날이 시작되고 있었다. 


캘거리에 가면 꼭 들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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