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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Mar 01. 2020

장수생을 바라보는 옆 사람의 심정...

역시 서글프다.

 상명학 학인 중에 루팡님이라는 분이 있다.


 처음에 만난 루팡님은 수험생이었다. 그러다 최근은 시점이 변했다.


  수험을 때려치우고 무언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다고 한다. 직접 대면하고 목소리를 들었던 루팡님은 수험생 루팡이고,  최근의 루팡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글이나 카톡으로 접하면 이질감이 느껴진다. 일본소설과 미국소설은 문체가 다르듯이, 쓰는 언어와 사고회로가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그도 그럴것이, 수험생으로 하루종일 시험생각만 하는 인간과, 사바세상을 돌아다니는 인간은 다른 종자이기에, 어쩔 수 없다.


 14년, 서울, 상명학 모임공간에서 바람님, 프리킥님, 루팡님...그리고 또 누구 있었더라...몇몇의 학인들과 술을 마신 적이 있다. 나는 지방에 사는 사람이라서 한 번 오프모임에 참석하려면 1박2일 여행을 해야 한다. 


 밤에는 적적하고 어디 갈 곳도 없고 해서 유리창에서 신세를 지게 되는데, 그 때 남은 분들하고 한잔 기울이게 되기도 한다. 


 그 때, 루팡님은 수험생이었다. 순경 시험을 준비하던 분이었는데, 술을 참 좋아하신다고 했다. 그래서 주당을 앉혀놓은 줄 알았는데, 쉽게 취기가 오르는 분이어서 깜짝 놀랐다. 


 한편으로 다행이었다. 술을 아주 잘마시는 사람이랑 술을 기울이면 나도 무리하게 되기 때문에 부담이 된다.


 물론 나는 고리타분한 구석이 있어서, '수험생이 왜 술을 마시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잔소리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같이 마셨다. 


 타짜에서 평경장에 고니 데리고 다니면서 


"타짜의 제1원칙. 야수성이 어쩌고 저쩌고."


이러는 대사들이 나온다.  나한테도 그런게 있다.


- 수험생의 제 1원칙. 1분 이상 수다떨면 안된다. (대화가 길어진다.)

- 수험생의 제 2원칙. 값싼 술은 입에 대지 말아라. (술을 안 먹게 될 것이다.)

 등등등


 그러니까 수험생이 술자리를 가지는 자체가, 마치 새로산 옷의 상표를 떼지 않았는데 그게 자꾸 피부를 건드리면서 콕콕 찌르는 것처럼, 신경쓰이고 불편하다 ㅋㅋ 


 그렇지만 내가 수험생이 아니니까 까짓거 상관없는 것이다. ㅋㅋ


 당시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15년에는 부산에 놀러갔는데, 그 때 루팡님이 와가지고 순경에 대한 열정을 피력한 적이 있다. 그 때도 술에 좀 취해 있었다. 


 17년에는 영어 100점받고 필기 합격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루팡님한테 이것저것 얻어먹을 수 있겠구나 하고 기대감이 들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낙방. 참 아쉬웠다. 그리고 그 때 루팡님은 멘탈이 많이 나간 것 같다. 그 이후로 수험을 접는다고 그랬으니까.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고 하시는데, 나는 잘 모른다. 좋은 사정은 아닌거 같아서 먼저 물어보기는 껄끄럽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 중에는 순경 시험을 보고 아무나 다 붙는거 아니냐고 폄하하는 부류도 있다.  고시나 전문직 등등과 비교하자면 당연히 엄청 쉬운게 맞다. 하지만 그래도 경쟁률이 20대 1, 30대1이 넘어가는 시험이다. 


 준비생들이 중고등학생들이 중간고사 벼락치기 하듯이 대충 준비하는게 아니다. 나름대로 성인으로써 자각을 가진채 공부한다. 


'아, 이거 아니면 시간 날리고 밥벌이 못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존재적 위협을 느끼기 마련이다. 누가 하라니까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마음 한켠에는 '붙긴 붙어야 하는데...'라는 의식이 있기는 하다.


 붙은 사람들이야 기분좋아서 수기도 쓰고 신나서 떠벌리고 다닌다. 그래서 우리 눈에는 붙은 사람만 보이고, 떨어진 사람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경쟁률이 20대 1이면 19명은 말그대로 백수 낭인이 되어버린다.


 애초에 보이지 않는 루저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루팡님도 꽤 오래 준비하셨지만, 내 주변에도 무슨 4년제 대학다니듯이 사오년 공부하다가 결국 때려친 사람이 꽤 된다. 


 그 쯤되면 이미 멘탈이 너덜너덜해져서 누가 뭐라고 하든지 앵앵거리는 소리로 들린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별다른 말을 해줄게 없다. 


힘내라는 말도 안한다. 합격을 못하면 힘이 안나는게 당연한데 뭘 자꾸 힘을 내라는지도 모르겠다.  


 어디서 이쁜 여자, 잘생긴 남자를 소개해주는 일도 없으면서 자꾸 결혼하라고 채근하는 집안 어른들을 보는 심정일 것이다. 


 추석 때, 설날 때마다 큰 아부지가 여자를 소개시켜 준다? 그러면서 데이트하라고 용돈을 꽂아주신다? 그러면 그 분의 말씀은 진리이자 천상의 하모니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수험생에게는 달리 방법이 없다.


 나는 루팡님이 순경 시험을 계속 준비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원래 순경시험의 가장큰 장벽이 영어 과목인데, 그걸 100점 맞으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필기는 원래 걱정할게 없다. 


 체력시험도 딱히 고난이도의 동작을 요구하는게 아닌, 생활 속에서 운동을 꾸준히 해왔는가를 측정한다. 그러니까 하루 1시간만 성실하게 임하면 고득점이 가능하다.


 면접은 원래 당락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니까, 나름대로 성실하게 준비해가면 된다. 


하지만 이런건 루팡님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만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건 알 수 없다. 


아쉽다.


 - 그래도 장수생이 수험을 그만두는데는 다 이유가 있는거고, 더이상 채근하면 안된다.


이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신다는 말을 듣고 나니, 답답해진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경찰 시험 계속하는게 백만배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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