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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Sep 06. 2022

너의 말은 좋은데, 밑줄은 안긋고 싶네

림태주 시인의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를 차용한 제목입니다.



특수학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교실 문을 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곳은 참 아늑하고 따뜻해요.

볕이 잘 드는 남향인 것도 한 몫합니다만, 창밖으로 중앙정원이 펼쳐져있거든요.

여기까지는 참 환상적이죠?

짧은 환상에 걸맞은 대환장이 펼쳐집니다.

저는 매일 아침 거대한 우주와 마주합니다.

도무지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모를 아이들의 마음우주와 같으니까요.

저는 그저 아이들의 행동 하나로 짐작할 뿐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든 것들을요.


'언어'를 가진다는 것의 편리함은 무엇이던가요.

공기같이 당연한 언어의 효용을 누리며, 우린 때론 교묘하게, 때론 있어 보이게 위장하꾸며냅니다.

하지만 미처 언어를 갖지 못한 아이들은 그보다  직관적이고 솔직한 비언어를 갖고 있어요.

눈빛과 행동, 소리로요.

중증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표현은 여기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우린 아이들의 가장 솔직한 비언어를 읽습니다.


물론, 어딜 가나 있는 똑똑이들이 이곳에 있어요.

말도 잘하고, 행동도 재빠르고, 사교적이고, 살가운 아이들이요.

세상 든든한 존재들이지요.


특수학교라는 곳은 여타 일반학교와 다른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건 보조인력이겠군요.

저희 학교에는 학생생활을 지원하는 특수교육실무원과 사회복무요원들이 거의 대부분의 반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법적 정원 6명.(*초중 6명, 고 7명/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한 학급에 배치되는 학생 수입니다.

적지요? 하지만 결코 정원에 속으면 안 됩니다.

우리 아이들은 정말, 특별하니깐요.

그런 의미에서 특수교육실무원과 사회복무요원은 결코 없어서는 안 학교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이번에 사회복무요원 관리 업무를 배정받았어요.

서른 명 가까이 되는 사회복무요원들의 관리와 고충상담을 병행하는 업무이지요.

제가 낯을 별로 안 가리는 (척)하기는 한데요...

한창때의 젊은 남성들과 허심탄회하게 속을 털어놓으려면 어쩐지 담배도 한 대 물고, 필요할 땐 행님의 마음으로 위로도 찐 하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아주 쪼끔은... 그 보단 쪼끔 더 많이 생기긴 했어요.

담배까진 아니지만 커피 한잔 내려주는 큰 누나 정도는 되야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꼰대 소릴 듣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규 사회복무요원이 왔어요.

그런데 새로 오신 분의 표정이 영 밝지가 않습니다.

알고 보니 특수학교에 배정될 거라 생각도 못했는데, 근무지가 이곳으로 배정이 되었다고 하는군요.

마른하늘의 날벼락이 따로 없지요.

얘길 듣고 표정을 보니 영 이해가 안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바깥세상은 아주 바쁘게 돌아가고, 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곁을 스쳐요.

그중엔 장애인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스치는 비율로만 따지면 얼마나 될까요.

아마 대화까지 하게 되는 일은 그것보다도 드물겠죠?


아마도 우리의 신입은 많이 당황을 했던 것 같아요.

얘길 듣다 보니 살다가 이렇게나 많은 장애인이 모여있는 건 처음인가 보네요.

그것도 휠체어 타는 지체장애인이 아닌 발달장애인,

우영우 아닌 보통의 자폐인을요.

시계 토끼 따라 토끼굴에 들어간 엘리스가 딱 이런 기분일 겁니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읽어주며 한참 동안 위로를 전하는 제게 그가 대뜸 묻습니다.


"선생님은 어쩌다 이런 길을 선택하신 거예요?"


상당히 도발적이지요.

그는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나 봅니다.

중증 장애학생과 함께하는 일상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이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침착하기로 했습니다.

순수하지만 난폭한 질문에는 덤덤하고 진솔한 답변이 최고죠.


오랜만에 들으니 신선하더군요.

그러게요. 저는 어쩌다 특수교사가 되었을까요.


생각해보면 저는 교사가 되고 싶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굳이 전공을 살리지 않고도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을 것도 같았고,

무엇보다 '교사'라는 직종의 고리타분한 뉘앙스가 좋지 않았습니다.


생각의 전환이 일어난 시점은 교생실습 때였어요.

당시 너무나도 버라이어티 한 아이들을 만나 웃고 떠들다 정이 들었지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사건이 주는 황당함에, 어이가 없어 웃기 시작했지요.

이곳은 정말이지, 어제와 같은 날이 단 하루도 없습니다. 

오늘만 사는 아이들 덕분에 덩달아 오늘만 살게 되는 것 같달까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특수교사라는 직업은 사실 딱히 특별할 게 없습니다.

아이들이 예뻐 보일 수 있다는 것.

예쁘게 볼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게 전부인 것 같거든요.


신입의 질문에 성심껏 답을 합니다.

제 답변을 들은 그가 한 마디를 더 보태는군요.


"그건 그냥 선생님이 성격이 좋아서겠죠."


... 뭐 하자는 걸까요?

저는 평소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공연히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주의인데요,

놀랍도록 도발적인 그 질문에 하마터면 발끈할 뻔했습니다.

하지만 참아야죠.

그는 지금 당황한 상태니까요.


특수교사를 하며 제가 제일 많이 들은 말은 무엇일까요?

"착하다."입니다.

동종업계에 속하신 분들이라면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텐데요.

사실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 어느 정도의 '선함'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지 '착한 성격' 때문에 이 직업을 선택한 것만은 아닙니다.


직업 만족도를 좌우하는 지표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직업은 다분히 '가치지향적'입니다.

경제적 지표, 목표 성취감, 사회적 지위 이전에

보편적 가치의 실현, 인간됨의 가치와 같은 보다 본질적인 질문들에 가까운 직종이지요.

다른 이들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착하다."는 말이 불편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말하는 이의 의도는 어떻든 간에, 어쩐지 제 귀엔 폄하하려는 것처럼 들리거든요.


침착하게 답변을 합니다.

단지 '착함'이라는 단어로 다 포섭될 수 없는 이유들과,

다른 길을 놔두고 '기꺼이' 이 길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들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이 모든 일은 결코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요.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는 말이지요.

결단코, 아이들이 예뻐 보이는 눈을 틔우는 일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제 답변이 마음에 든 건진 모르겠지만, 신입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졌어요.

조금은 편안하게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긴 하죠.

싫든 좋든, 그에겐 군 대체복무이긴 합니다.


굳이 영혼이 담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운이 좋으면, 그도 이곳에서 근무하는 2년 내에 반짝 거리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테니까요.

그에게도 그런 운이 당도하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신입을 보내고 난 이후로, 당돌한 그의 질문이 내내 맴 돌고 있습니다.

다시 보니 좋은 질문이었군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걸 보니 말이죠.

하지만 밑줄은 긋지 않으렵니다.


이건 그의 당돌함에 대한 매우 사사로운 '삐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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