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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Sep 14. 2022

너의 존재가 더 이상 민폐가 아니게 되는 그날까지

학부모 상담주간입니다.

이번 한 주간 학부모 상담을 통해 이번 학기동안 학교에게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교육서비스의 수요와 방향을 결정하게 됩니다.

특수교육의 가장 특징적인 장점은 개별화교육계획(Individualized Education Plan, IEP)에 있어요.

장애특성과 학습자의 차별적 독특성을 고려한 개별 학습계획을 수립하는 것이죠.

장애특성, 교육적 요구, 현행학습 수준을 고려하여 학생에게 적합한 교육의 목표, 방법, 내용을 결정합니다. 여기다 중고등학생의 경우 진로직업교육까지 포함한 전방위적 교육계획을 만듭니다.

학생 한 명에 대해서요.

그러니까 한 학급 법적 정원이 6명이면, 총 6개의 IEP가 나오는 것이죠.

매 학기 마다 개별화교육지원팀을 구성하여 장애학생에게 필요한 교육적 지원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초과근무를 하고야 말았어요.

몹시 피곤한 상태입니다만 오늘은 글을 써야 겠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한 학부모님께서 저의 가슴을 울리셨기 때문이지요.





아이는 자폐성 장애를 갖고 있어요.

자폐성 장애는 사회적상호작용의 심각한 결손과 의미없는 반복행동(상동행동), 반향어, 언어발달지체로 상징되는 발달장애의 한 분야입니다.


잠시 곁가지로 빠지자면,

최근 종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는 자신을 소개할 때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다고 하는데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자폐성 장애'가 아닙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자폐성 장애로 분류되지 않지만 자폐성 장애의 특징적인 부분을 일정 부분 공유하는 '범 자폐성 장애'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영우는 반복적인 행동과 반향어, 눈 맞춤의 어려움과 같은 자폐성 장애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언어발달이 지체되어 있지는 않지요. 박은빈 배우의 연기 디테일로 봤을 때, 우영우는 구부정한 자세와 현학적인 언어발달로 특징되는 아스퍼거 증후군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네요.



각설하고, 다시 학부모님과의 상담으로 돌아옵니다.


아이는 매우 젊잖은 기질을 가지고 있어요. 비장애 학생들도 모두가 다르듯, 장애학생들 또한 장애특성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개개인의 기질을 타고납니다. 매우 외향적이고 활동적인 아이가 있는 반면,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며 신체활동을 꺼리는 아이도 있지요. 이 친구는 후자에 속합니다.


아이는 매우 조용하고 얌전한 편이에요. 특유의 핸드폰 진동음과 같은 소리를 내는 것을 제외하면(무료함을 달래거나 유희적 의미를 가진 행동)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합니다.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데도 크게 거부하지 않고 착실하게 잘 해요. 물론 하기 싫을 때는 칵!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지만요.


매우 모범적인 아이죠?

그런데 어머니께서 의외의 말씀을 하십니다.

자꾸 미안하다는 말씀을요.

아이가 선생님이 하라고 하는 것을 거부하며 칵! 하고 버릇없는 소리를 내는 것도, 학교에 자주 빠지는 것도, 가끔씩 내는 소리가 주위에 방해가 되거나 민폐가 되는 것도 미안하다는 말씀이셨어요.


순간 저는 어머니의 말씀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어머니는 이 아이를 키우는 동안,

혹여 아이의 장애가 주변에 민폐가 될까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사셨던 걸까요.

이렇게 순한 아이를요. 그것도 특수교사에게 조차 말입니다.






오래전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이 나네요. 영화 '말아톤'에서 극중 얼룩말을 좋아하는 초원이가 얼룩말 무늬 스커트를 입고 있는 여성의 엉덩이를 만졌다가 난리가 난 장면이 있었어요. 뜻밖의 추행으로 화가난 여성이 소리를 지르고 주변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들어요. 뭔가 잘못된 걸 알아차린 초원이가 몹시 당황을 합니다. 그때 초원이 엄마가 아들을 감싸안고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칩니다.


"우리 아이는 자폐를 앓고 있어요!!! 우리 아이는 자폐를 앓고 있어요!!!"


공개적인 장소에서 내 아이의 장애를 큰 소리로 고백해야 하는 장면이라니...

절규에 가까운 어머니의 외침이 참담하기 그지 없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특수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많은 아이들과 부모님을 만나 보았지만 저는 아직도 감히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당장에 내 아이가 감기에만 걸려도 애가 타는데요.

장애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심정이라는 것은, 그보다 백배는 더 속이 타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이가 밖에서 조용히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스스로 자제할 수 있을 정도로 어머니께서는 아이를 아주 잘 키우셨다고 말이죠.


어머니께선 별 말씀을 하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잠시 울컥이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저는 가끔 '장애'라는 이름이 더 이상 삶의 굴레가 되지 않는 날에 대해 상상해 봅니다.


세상에 숨어들 필요없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없이,

장애를 더 이상 민폐로 여기지 않아도 될 그 날을요.


그런데, 그날이 올까요.


저는 왔으면 좋겠습니다.


(앞에 '쫌!'이 숨어있는 건 안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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