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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Nov 29. 2022

곰이 5호, 출격 준비 완료

저희 집에는 4대째 대를 이어 온 곰 인형이 있습니다. 남매의 애착 인형이요.

도대체 그 애착 인형이 무엇이간듸 남매가 서로 물려줘 가며 물고 빠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마는,

이 한 녀석의 몸빵으로 두 아이의 애착이 공고해진 건 확실합니다.

시작은 이러했습니다...


때는 2015년 1월 중순...

자타공인 똥 손 중의 똥 손인 저는 머잖아 첫 아이를 안게 될 설렘으로 호기롭게 'DIY 애착 인형 세트' 하나를 주문합니다.

시크릿 가든 몰아보기를 하다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꿰매 만들었다는 현빈의 반딱이 츄리닝에 현혹된 탓일까요.

내 자식에게 '이태리 장인은 아니지만 엄마의 한 땀 정도는 괜찮잖아?!'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잠시 했던 모양입니다.


이제는 아부지가 되신 그 시절 현빈


아, 미리 말씀드리건대,

주변에 임신과 출산을 앞두고 있는 예비 엄마가 있으시다면 모 브런치 작가의 글을 빌어


애착 인형은 반드시 공산품으로 준비하라!!


고 조언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왕이면

아주 흔하고, 시대를 타지 않으며,

언제든 구하기 쉬운 것으로!!


말이지요...


무튼, 바늘에 손가락을 이리저리 찔려가며 우여곡절 끝에 곰 인형 하나를 완성했습지요.

곰이는 그렇게 우리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현이의 애착 인형이었던 곰이(...하지만 머잖아 그녀가 나타는데?!!)



현이 세 살이 되던 해, 드디어 그녀가 등장합니다.

쭈의 탄생이죠...!!

쭈는 정말 남다른 아기였어요.

신생아 시설, 우레와 같은 목청을 뽐내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며 거하게 신고식을 했어요.

약간 소금을 쳐서,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목청껏 울부짖었습니다.

잠은 또 어찌나 안 자는지,

산후도우미 이모님은 '이렇게 안자는 신생아는 처음 본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지요.


존재감이 하늘을 찌르는 아기 앞에 엄마 아빠도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어요.

세 살밖에 안되던 현이는 자다가 깜짝 놀라 깨기 일쑤였고요.

어느 날은 도저히 안 되겠던지 잠투정하던 현이가 곰이를 냅다 던졌습니다.

시끄럽다고요.

그런데 쭈가 울음을 뚝 그치는 게 아니겠어요.

그리곤 곰이를 안고 잠이 들었습니다.

네... 그 일로 곰이는 쭈의 애착 인형이 된 거죠...

현이는 그 후로 쭈에게서 인형을 되찾기 위해 무진 애를 써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곰이는 그날로부터 그녀의 원픽이 돼버렸거든요...





시간이 많이 흘러 현이는 여덟 살, 쭈는 여섯 살이 되었고요,

쭈는 여전히 곰이를 안고 다닙니다.

그 사이 수 차례 곰이와의 이별을 시도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낡고 해진 곰이를 수십 차례 깁고 깁다 보니,

거의 프랑켄슈타인 상태로 만든 것도 여러 번이었지요.

(머리와 팔다리를 잘라서 아예 꿰매버렸던건 몇 호더라...)

그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눈에 불을 켜고 초록 검색창을 뒤졌습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똑같은 제품을 여전히 팔고 있더라고요....ㅠㅠ

네, 그런 연유로......

저는 아직도 여섯 살 아이의 애착 인형을 손수 한 땀 한 땀 제작하는 신세가 돼버린 것입니다.





지난 주말에 쭈가 코로나 확진이 되었어요.

맞벌이 가정에서의 아이 돌봄을 어쩌나 골몰하고 있던 때, 때마침 보건소 알림이 오더군요.

소아 돌봄을 위한 공동 격리자 지정 안내 문자였습니다.

덕분에 저는 지난주부터 계속 격리자 신세입니다.

물론 지금은 온 가족이 줄줄이 소시지가 되어 나란히 확진된 바람에 오손도손 사이좋게 격리를 하고 있지요.

근 2 주간 함께 격리해 있자니 이거시 진정한 가족의 애(愛) 아니겠는가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 지경입니다.


아무튼,

갑자기 생긴 시간으로 지혜로운 집콕 생활을 고심하다 지난 휴직 때 미처 하지 못한 숙제를 하기로 했어요.


곰이 5호 제작이요.


잦은 세탁과 건조기 행으로 솜이 많이 뭉치고 여기저기 터지는 것이...

그간 고생한 곰이 4호를 보내줄 때가 된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제 니덜이 해라....

 


열심히 바느질에 골몰한 엄마를 보며 쭈가 한 마디 합니다.


"엄마, 찔리면 어떡해? 바늘 무서워."

"아따거!! 아야... 바늘에 찔렸어. 엄마 아픈데 곰이 그만 만들까?"

(정색) "아니, 만들어 줘."


딸내미를 참 잘 키웠지요?

어쩜 이리도 목표지향적인지 말입니다.(주륵...ㅠㅠ)


이틀간 요래조래 만들어 드디어 곰이 5호를 완성했습니다.


뒤를... 부탁하네....!(쿨럭)



쭈가 곰이 4호와 5호를 동시에 안고 너무 행복해하네요.

그 모습을 보니 뿌듯하기도 합니다.


"쭈, 이제 곰이 4호 보내줘도 되겠지?"

"응! 이제 버려도 돼!"


......?!!!


"쭈야... 쉿! 곰이 들으면 서운해해."

(정색)"... 엄마, 얘는 인형이잖아."


........?!?!?!


언제나처럼 달콤 살벌한 그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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