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움 Oct 18. 2022

아이는 오늘도 자란다

첫째 현이는 요즘 부쩍 초딩체를 남발하고 있습니다. 

   *초딩체: 우스꽝스러운 말을 마구잡이로 뒤섞어 괴상하게 조합된 말. 무맥락, 무개연성이 특징.


"엄마 이것 좀 보셈!"

"이거 좀 너무 한 거 아님?!"

"어쩔어쩔~~저쩔저쩔~~~"

"그랬습니 다람쥐~!"


... 너, 말이 전반적으로 짧다?!


아들의 익살스러운... 듯한 말이 귀에 들릴 때마다 반응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깐족대면서 슬쩍슬쩍 선을 넘어오려 해서요. 

넘어가야 하나, 지적해 줘야 하나... 

내적 갈등에 시달리다 보면 곧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에 대꾸 없이 그냥 두는 쪽을 택하기로 합니다. 


고민이 되는 점은 또 하나 있습니다. 

무뚝뚝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점이요.

원체 타고나길 무뚝뚝한 갱상도 상남자이긴 하지만, 

최근엔 남자아이 특유의 허세가 잔뜩 낀 것 같아요.

무뚝뚝하다 못해 퉁명스럽고 뚱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여른 속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애써 뚱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말 끝마다 '에휴~' 하며 못 마땅하다는 티를 내요.

툴툴거리면서도 하라는 것 다하고, 동생 도와줄 것 다 하긴 하지만요. 


아들은 일찍 어른이 되고 싶은가 봅니다. 

원체 어린애 취급받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요,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일에 필요 이상의 개입이 있으면 매우 자존심 상해하거든요. 

혼자 할 수 있는데 왜 도와줬냐고 반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른스러움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어설픈 모습을 보이기 싫고, 뭐든 잘 알고, 척척박사인 척하고 싶은 건 이해 하지만,

남들에게 함부로 잔소리를 하고, 따지려 들고, 남 탓을 하는 건 좋은 어른의 모습은 아니니까요.


뭐.. 제가 할 말은 아닙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모르는 걸 모른다고 인정하지 못하고, 

여자아이 다움을 강요받거나, 어린애 취급을 당하는 걸 견디질 못했어요. 

그래서 더 똑똑한 척, 아는 척을 했었지요.

네... 이래서 씨도둑질은 하는 게 아니라고 했나 봅니다. 


아들의 '똑똑함' 설정은 잦은 오류를 동반해요. 

주로 일이 풀리지 않거나, 원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 그럽니다. 

이상적인 자신은 완벽해야 하는데, 현실의 자기는 그렇지 못해 버퍼링이 걸리나 봐요. 

특히나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는 게 버거울 때가 많습니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잘 못됐잖아!!"


안 풀리면 남 탓을 하는 것이죠. 

아직 어려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잘 모르기도 하고,

마음에 담기 버거운 감정은 곁에 있는 구구에게라도 던져 버리고 싶은 심정인가 봅니다. 

덕분에 옆에 있다가 불통을 맞는 건 언제나 동생 쭈입니다. 

 

이럴 땐 어지간해서 주눅이 들지 않는 당찬 쭈가 얼마나 대견한지 몰라요.

오빠가 뭐라 해도 같이 당당히 맞서는 모습이 기특해(?) 보인다면 좀 이상한가요?

눈앞에서 남매가 서로를 잡아먹을 듯 싸우고 있는데 말입니다. 


하루는 보드게임을 하다 현이의 게임이 잘 풀리지 않았어요. 

엄마가 1등, 쭈가 2등, 현이가 꼴찌를 했지요.

게임이 끝나고 결국 현이의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동생을 도와준 엄마도 마음에 안 들고, 

오빠를 이겼다고 놀리는 동생도 마음에 안 들고, 

영 따라주지 않은 운빨에 잔뜩 화가 났어요.

짜증이 짜증을 몰고, 목소리가 커지자 결국 엄마에게 크게 혼이 나고 맙니다. 


저녁 식사 내내 현이는 잔뜩 뾰로통한 얼굴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밥만 우적우적 먹는 모습에 짠 하기도 했지만, 

아이에게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그냥 두기로 했지요.

어려도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으니까요. 


식사를 마친 현이는 그릇을 치우고 조용히 일어나 책상으로 갑니다. 

그리곤 뭔갈 열심히 끼적이더니, 엄마에게 쓱 내밀고 방으로 들어가요.

뭔가 했더니 매일 쓰는 감사 일기장이네요.

거기엔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짜증내서 죄송합니다.'


현이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일기장으로 사과를 했나 봅니다. 

저는 기특한 마음에, 

먼저 사과를 건넨 용기가 대견해 밑에 답글을 써 아들에게 다시 일기장을 건넸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다시 답글을 받았어요. 

이렇게요. 

 


답글을 받고 저는 아들을 크게 한번 꽈악 안아줍니다. 

그제야 아들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네요.


아이는 이번 일로 무엇을 느꼈을까요.

자존심이 강해서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길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진정한 용기는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아들의 대댓글은, 그런 엄마의 마음이 가슴에 닿았단 뜻일까요?


날마다 커가는 키만큼, 마음의 크기도 커지고 있는 아이는 

오늘도 열심히 자라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벽에 등 붙이기를 실시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