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녭!!"
"실시!!"
엄마의 군대식 호령에 아이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왔다.
두 아이는 자기 몸에 맞는 공간을 찾아 벽에 등을 대고 착! 달라붙는다.
눈빛엔 결기 엇비슷한게 서려있다.
단... 유효시간은 1분이다...
첫째 현이가 생후 10개월이 되었을 즈음의 이야기다. 매일 집에만 있다가 처음으로 문화센터(이하 문센) 아기 오감놀이 프로그램을 등록했다. 영유아기 아이의 문센 등록에는 다양한 의미가 들어있다. 첫째로는, 하루 2만 개의 단어를 뱉어내야 속이 시원한 엄마들이 하루 종일 옹알이만 듣느라 지치다 못해 우울해진 기분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 둘째는, 1 대 1 대치 상황을 벗어나 1시간 동안 아이의 시선을 엄마가 아닌 다른 곳에 돌릴 수 있다는 점. 셋째는, 우리 집에서는 절대 해 줄 수 없는 저지래를 마음껏! 후회 없이! 아이가 적극적으로 탐색할 수 있게! 보장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밀가루 풀풀~ 국수 면발 휘리릭~~ 거기다 앙증맞은 코스튬까지!)
'오늘은 또 어떤 귀여운 장면을 포착할 것인가.' 하는 기대감과 함께 잔뜩 부풀어 오른 진실의 광대를 애써 누르며 문센 교실에 들어간 어느 날. 선생님 앞에 옹기종이 모여 앉은 아이들 사이 현이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다른 아기들보다 더 귀여워서... 는 아니고. 꼿꼿하게 앉아 등을 펴고 바른 자세로 앉아있는 아이들 사이, 구부정한 허리에 거북목을 하고 있는 현이가 뙇! 하고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의자에 앉을 때도 그랬다. 한쪽으로 기대어 삐딱하게 앉거나 배를 접어 앉거나 고개를 한쪽으로만 젖히는 행동을 자주 하는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아이의 자세가 나쁘다는 것을.
당황한 엄마의 폭풍 검색이 시작됐다. 태어난 지 만 1년도 안된 아이의 자세가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아이를 재워놓은 깊은 밤까지 인터넷 검색을 계속하다 제법 그럴듯한 가설 하나를 발견했다. 태아 시절 뱃속의 아이는 엄마가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자세를 '편안한 자세'로 받아들이는데, 이것을 태아의 뇌가 '기본자세'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하... 이 놈의 엄마 타령... 엄마 죄인 만들기에 동참하고 싶진 않지만... 뜨끔하다. 솔직히는 뜨끔하다 못해 '앗 뜨거워'다. 굽은 등, 거북목, 척추측만, 무의식적으로 한쪽으로 꺾이는 고개... 딱 내 자세였다.
둘째 쭈를 키우면서도 자세를 유심히 봤다. 다행히 쭈는 꼿꼿하게 등을 곧추세우고 앉기에 한 시름이 놓였다. 허리는 첫째만 잡아주면 되겠구나 싶었는데... 너무 이른 판단이었나 보다. 둘째는 여섯 살로 넘어가는 시기를 기점으로 고개를 앞으로 빼서 옆으로 돌려 푸는 행동을 시작했다. 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다. 목과 어깨 승모근이 굳어 목 근육이 당기는 것이다. 최근에는 행동이 점점 심해지며 '목이 답답하다.'는 호소를 시작했다. 여섯 살 쭈의 승모근이 단단하게 잡혔다.
어떻게 아이들의 몸이 이럴 수가 있을까. 한창 말랑말랑 할 나이에 몸이 부드러워 뭉친 근육도 절로 풀릴 시기인데. 그렇다고 핸드폰, 태블릿을 열어주지도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부랴부랴 아이들용 자세 교정 밴드를 구입하고 하루에 10분씩 착용토록 했다. 등이 펴지기는 하지만 쫀쫀한 밴드의 힘을 아이들이 버텨내질 못했다. 밴드에 살이 쓸려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등받이 좌식의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지 오래다. 아이들이 버거워하지 않고도 효과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그렇게 고민 끝에 하루 5분 엄마와 함께하는 벽에 등 붙이기 놀이가 탄생했다.
놀이라고 해서 별다른 건 없다. 그저 엄마랑 같이하는 것뿐.
의식적으로 신체상을 정렬하기 위해서는 우선 감각을 깨워야 한다. 벽에 밀착된 부분과 각 부분의 정렬 상태를 충분히 인식해야 자세를 교정할 수 있다. 아이들의 경우 처음부터 서서 하는 건 너무 힘들거니와, 신체상을 의식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고, 자칫하면 벌을 받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어 벽에 등을 대고 앉아있기로 접근했다. 순서는 이렇다.
1. 벽에 등을 대고 엄마와 마주 앉는다.
2. 편안하되 바른 자세로 아빠 다리를 하고 앉는다.
3. 엉덩이 끝을 벽에 바짝 붙인다.
4. 양쪽 어깨를 벽에 붙인다. 이때 양쪽 날개뼈가 손뼉 칠 것 같이 모인다고 상상한다.
5. 엄마를 보며 뒤통수를 벽에 붙인다.
6. 준비가 됐으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풍선 바람 빠지듯 천천히 후~ 뱉어내며 몸의 힘을 뺀다. 이때 어깨, 뒤통수는 붙인 상태다
7. 편안하게 숨을 쉬며 엄마와 수다를 떤다.
8. 중간에 엉덩이, 어깨, 뒤통수가 잘 붙어있는지 질문하고 스스로 확인한다.
방법은 생각보다 효과적이었다. 아이들은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도 벽에 등을 잘 대고 있었다. 말 많은 첫째 현이는 5분 동안 신나게 떠들다가 간혹 무의식적으로 자세가 풀렸지만, 엄마의 중간점검에 맞춰 스스로 몸을 세워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둘째 쭈는 인내심은 없지만, 경쟁심이 있는 아이라, 엄마와 오빠가 끝까지 하니 자기도 끝까지 하겠다고 했다. 물론 풀었다, 잡았다를 반복했다.
지난 일주일간 거의 매일 5분씩 벽에 등 대고 앉아있기를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결과가 좋다. 역시 가장 빠르게 효과를 본 건 가장 어린 둘째 쭈다. 쭈는 일주일 동안 목을 쭉 빼서 옆으로 돌리며 푸는 행동의 빈도가 많이 줄었고, 목과 어깨에 습관적으로 힘을 주는 것도 좋아졌다. 평소에 몸 풍선 놀이를 같이 병행한 것도 도움이 됐다. 내 몸을 풍선이라 생각하고 크게 들이마시고 흐물흐물한 풍선처럼 공기를 내뱉으며 몸을 이완시키는 동작을 반복한 것이다. 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을 의식하게 되면서 어깨나 목에 부담스러운 힘이 들어가는 것도 자각하게 된 것이다.
머리가 쪼끔 더 큰 첫째는 약간의 저항을 했다. 심지어는 '엄마는 등 펴는 게 중요하냐, 공부가 중요하냐! 둘 중에 택해!' 하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초1 치고는 제법 맹랑하다. 하지만 1학년의 흑백논리에 흔들릴 엄마는 아니지. 아들은 엄마의 논리력(?)에 별수 없이 수긍을 했고, 그 뒤론 열심히 잘 따라주고 있다. 등이 펴지는 경험 덕분인지 등받이 의자에 앉아서도 제법 허리를 펴고 앉아있다.
더불어 나도 효과를 보고 있다. 요가를 3일 이상 쉬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목과 어깨 통증이 주말이 지나도 괜찮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집에 남아도는 벽에 있어도 절대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운동은 밖에서 하는 거고, 집에서까지 이러지 말자.' 하는 안일한 생각에 자세를 마구 구기며 앉아 있었을 게 분명하다. 아이들 자세를 잡는다는 명목 하에 덩달아 효과를 보고 있는 엄마다.
꾸준하게 아이들의 자세를 잡아줘야겠다.
아이들에게 나쁜 자세로 비롯된 통증만은 물려주지 않으리라.
육아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 있다. 아이들의 본 보기로서, 나부터 잘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건 비단 자세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산책을 하다 쓰레기를 하나 줍고, 이웃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친절하게 대하고, 운전하다 보행자가 먼저 지나갈 수 있게 기다리거나, 짜증 나는 상황을 쿨하게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로운 태도와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타인의 입장에서 조망할 줄 아는 넓은 시야. 아이는 부모의 삶이 보여주는 모든 행동 패턴을 지켜보고 수용한다.
아이가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면, 결국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글을 쓰며 나도 모르게 말려 있던 어깨가 슬슬 아파온다.
우선은, 등부터 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