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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Jan 11. 2023

너의 한 마디에 웃는 날이면 (1)

오랜만에 학교 이야기를 합니다.


처음엔 특수학교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쓰겠다며 호기롭게 시작했었는데요.

막상 학교 이야기를 몇 편 쓰다 보니 계속 망설이게 됩니다.

이유는 세 가지예요.

첫째는 현실성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를 하게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고요.

둘째는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은 세계여서,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가 자칫 장애에 대한 편견만 가중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였어요.

셋째는 자기 검열을 반복하다 보니 남는 게 없어서였습니다. 그리고 어째 글이 핑크핑크하게 물들어 가는 것이, 오글거려서 손가락에 자꾸 제동이 걸리더라고요.

그렇게 몇 편의 글을 쓰고 지우길 반복했어요.


그런데, 오늘은 꼭 쓰려고 합니다.

몇 없는 찰나의 순간에 대해서요.


왜냐하면, 그렇게 스친 순간들이

아직까지 제가 특수교사를 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초이는 키 181cm에 우월 다리길이를 자랑하는 훤칠한 인물의 소유자예요.

저희 반에서 비주얼을 담당하고 있지요.

솔직히 중학생용 책걸상이 감당하기엔 조금 버거워 보이기는 하는데,

그것이 항상 다리를 꼬아 책상 밖 45도 각도로 내밀고 있는 이유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느낌적인 느낌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인상인데요,

훤칠하고 인물 좋은 남학생들 중에 유독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많아요.

평범하게 자라 일반학교를 다녔으면 분명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을 거예요.

어디 분위기 좋은 카페, 볕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입 다물고 조용히 창 밖을 보고 있으면,

절로 감탄이 나올만한 아이들이, 우리 주변엔 참~ 많습니다.

(절대적으로 지극히 주관적 소견일을 밑줄 그어 강조합니다.)

음... 그런 분위기를 풍기려면, 우선은 공공장소에서 입을 다무는 연습부터 시켜야겠네요.

뛰지 않고 다소곳이 앉아있는 연습도요.


아무튼 초이는 그런 부류의 아이들 중 하납니다.


초이의 등교 첫마디는 언제나 "안녕히 계세요~" 예요.

차마 "안녕하세요~"까지 발전이 되진 않은 거죠.

초이에게 인사는 "안녕히 계세요."입니다. 


자폐아이들의 반향어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심심할 때 내는 유희적 표현일 때도 있고요,

맥락과 무관하게 갑자기 과거의 장면이 생각나서 내뱉을 때도 있어요.

상대방의 말을 의미 없이 단순히 따라 하기도 하고요,  

때론 소통의 의도로 쓰기도 합니다.

초이는 분명한 소통의 의도를 갖고 있죠.

인사를 하려고 "안녕히 계세요~"라고 하니까요.


초이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아요.

그나마도 학교에서 들어본 건 "안녕히 계세요."가 전부네요.

나머진 낮게 울려 퍼지는 핸드폰 진동음과 하기 싫을 때 거부의 뜻으로 내뱉는 "카악!" 소리뿐입니다.

가정에서는 좀 더 한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학교는 집만큼 편한 장소는 아닌가 봐요.

새벽녘 동이 틀 때 잠드는 수면패턴으로 오후 늦게 등교를 하는 게 일상이었거든요.

학교에서 지내는 시간이 짧다 보니, 편하지 않을 만도 하죠.


학교생활의 최대이점은 자연스러운 환경에서의 언어노출과 사회적 기술 습득에 있습니다.

일반학교 특수학급에 소속된 아이들이 보다 일반적이고 자연스러운 비장애 또래들의 생활환경에 푹 빠져들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증의 아이들은 학교생활 환경에 젖어드는 것이죠.

또래환경은 치료실이나 교사와의 일대일 수업에서 채워질 수 없는 폭발적 습득환경이 되거든요.


지난 4개월 간 저는 초이의 학교생활 시간을 늘리는데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부족한 잠은 학교에서 재울 테니 아침 등교시간에 맞춰달라는 요청에 어머님께서도 많이 힘드셨을 거예요.

비몽사몽 한 초이의 등교가 시작됐습니다.


초이에겐,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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