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악~!!"
오해하지 마십시오. 침 뱉는 소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어느 교실 한편에 도도한 자태로 다리를 뻗은 차가운 도시 남자께서 공부가 하기 싫어 내뱉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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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르륵~ 교실문이 열립니다.
금방이라도 지나가는 참새 한 마리의 아늑한 보금자리가 될 것 같은 머리 스타일,
게슴츠레하게 뜨다 만 눈,
눈이 부신 듯 손 그늘을 만들고,
구름에 달 가듯 가는 나그네도 아닌 것이 인기척도 나지 않는 사뿐한 발걸음으로,
초이가 아침 등교를 했습니다.
당연히 버선발로 맞이해야지요.
불과 5분 전까지 등굣길 차 안에서 기절하듯 잠들었던 아이인데요.
"안녕히..."
"안녕하!"
"... 세요~"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안녕히 계세요."라고 하는 초이의 인사 루틴을 살짝 수정했습니다.
인사 첫마디를 대신 말해주고, 스스로 마무리하는 방법이지요.
주어진 상황을 사진 찍듯 인지하는 자폐의 특성을 감안해서,
상황과 맥락에 따른 인사의 변형을 모델링할 수 있게 해주는 겁니다.
초이가 책상에 가방을 걸고 자리에 앉습니다.
책상 밖 45도 각도로 우아하게 다리를 꼬은 채 조용히 교실 뒤편을 보네요.
초이의 시선이 닿는 곳에 휴식용 매트가 있습니다.
눈치 빠른 선생님이 나서야죠.
"졸려요?"
"졸려요?"
바로 반향어가 나옵니다.
과거에는 자폐아의 반향어를 비정상적인 언어적 양상으로 받아들여 소거시킬 대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았었는데요, 최근에는 반향어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자폐아의 반향어를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일종의 의사소통 반응으로 받아들이는 추세예요.
여기서 의사소통이라 함은,
구어적 소통방식에 국한되지 않은 언어적, 비언어적 소통의 총체라 할 수 있습니다.
발화, 눈빛, 태도, 어조, 자세, 소리 등을 총체적으로 파악해서 아이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죠.
반향어가 비록 상황과 맥락에 부적합한 구어적 표현이기는 하나,
그 자체를 소통의 의도를 가진 반응으로 이해하면 모든 시도를 유의미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단 소통의 양이 많아져야 질도 좋아지는 법입니다.
초이에겐 일단 반응할 수 있는 모델의 양을 늘리는 게 중요해 보여요.
선택할 수 있는 반응의 개수를 늘리는 거지요.
그리고 이왕이면 올바른 언어적 반응으로서의 반향어를 할 수 있게 상황에 적합한 모델링을 반복해서 유도하는 겁니다.
장면장면을 사진으로 찍어놓고 유사한 상황에 놓였을 때 가장 적절한 사진을 꺼내 들 수 있게 훈련하는 거지요.
초이의 반향어를 듣고 함께 교실 뒤편에 매트를 폅니다.
반향어를 아이의 의사표현으로 인정해 주는 동시에, 아이의 적절한 반응에 대한 즉각적인 사회적 보상을 해 줍니다.
적절한 반응이 원하는 결과를 만드는데 효과적이란 것을 체감으로 익히게 하는 것이죠.
수건을 접어 임시로 베개를 만들어 주고, 담요도 덮어줘요.
잠시 뒤, 코 고는 소리가 교실을 가득 메웁니다.
이렇게, 초이의 학교생활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