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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Jan 17. 2023

너의 한 마디에 웃는 날이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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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가 본격적으로 오전 등교를 시작하며 저는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조용하고 얌전한 줄만 알았더니, 생각보다 하기 싫은 게 많고 거부하는 게 많은 까다로운 성향이라는 점과,

제가 여태껏 살면서 한 번도 얼굴에 침을 맞아본 경험이 없었단 사실을요.


초이의 "카악!"은 끝을 몰랐습니다.

공부하기 싫을 때도 "카악!"

먹기 싫은 반찬을 먹이려고 할 때도 "카악!"

양치할 때 칫솔질이 거칠어도 "카악!"

"카악! 카악! 카악!!"

그래도 물러서지 않으면 길고 매끄러운 손으로 제 손 꼬집었어요.

그리곤 마스크를 살짝 내려 "투!"하고 침을 뱉었죠.


음... 일반학교였으면 난리가 날 만한 장면이지요?

음..... 그렇습니다.


초이의 행동은 분명 잘못된 게 맞아요. 하지만 행동을 걷어내고 의도를 보면 어떨까요.

말을 할 수 있는 아이였으면 분명 "싫어요. 안 해요. 그만해요."라고 표현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 초이에게 무엇이 필요할까요.


"싫어요! 카악 아니야, 싫어요!"

"카악!!"

"아니야, 싫어요! 싫어요라고 해야지. 초이 하기 싫어요?"

"싫어요?"


마지막 말을 따라 합니다. 그럼 아이의 의사를 존중해 줘야죠.


"싫어요? 초이가 싫다고 했으니까 그만할게."


이것으로 초이는 원하는 바를 이뤘습니다.





학기가 마무리되는 12월 초.

초이는 이제 오전 등교에 완전히 적응을 했습니다.

새집지은 머리로 비몽사몽 하며 교실에 들어오는 것도, 책상 밖으로 내민 다리도 여전합니다.

그런데 몇 가지 달라진 게 있어요.


(매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졸려요?"


적절한 상황에 자신이 요구하는 바를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나타났습니다.

교사가 모델로서 제시한 의문형의 어조를 지연반향어로 표현한 것이죠.

달라진 건 이뿐만이 아닙니다.


"카악!"의 자리를 "싫어요."가 완전히 대체했습니다.

공부를 하다가 "싫어요."라고 말하거나,

급식시간에 교사의 손등을 꼬집고 싶은 걸 참느라 손을 바들바들 떨다가 "싫어요."라고 합니다.

무심결에 "그만할래요."라는 좀 더 긴 발화가 나오기도 하고요.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어요.

등교와 하교의 인사말의 차이를 인지하고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구분하여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아직 헷갈려하지만요.

화장실이 급할 땐 혼자 뛰쳐나갔는데, 이젠 교사의 팔을 당겨 "쉬!"라고 허락을 구합니다.

교실 친구들을 관찰하다 다른 친구의 소리를 따라 하기도 하네요.

자폐 아이가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 건 좋은 일이죠.


다만 시도 때도 없이 "싫어요."를 남발하는 건 새로운 문제긴 합니다.

말하는데 재미를 붙인 건 좋은데, 슬슬 선생님을 놀리려 해요.


초이의 어머니께서는 "카악!" 하는 소리를 소거시키려고 무진 애를 쓰셨다고 해요.

한 학기가 지난 지금, "카악!" 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언어가 나타난 걸 매우 기뻐하셨어요.

어머니의 감사인사에 저도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별거 있나요.

이 맛에 특수교사 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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