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꿈의 설계 - 베가펑크의 유토피아>의 1장
혹시 당신의 뇌를 통째로 백업해서, 안전한 어딘가에 보관하고 싶다는 상상을 해본 적 있는가? 시험 전날 밤 벼락치기했던 그 모든 지식, 소중한 사람과 나눴던 대화의 온도, 문득 떠올랐다 사라진 기막힌 아이디어까지.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릴 걱정 없이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면.
만화 『원피스』의 세계에서, 인류보다 500년 앞서나간 천재 과학자 닥터 베가펑크는 바로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든 인물이다. 그의 가장 큰 고민은 다소 기이했다. '뇌뇌 열매'의 능력으로 지식이 쌓일수록 그의 뇌가 물리적으로 너무 커져 버린 것이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 역사상 가장 대담한 외과수술을 감행한다. 자신의 뇌를 통째로 분리해 '에그헤드' 섬 상층부의 거대한 알 모양 구조물 속에 보관한 것이다. 그는 이것을 '펑크 레코즈(Punk Records)'라 이름 붙였다.
이 대담한 시도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기억이 곧 존재인가? 나의 모든 기억을 데이터로 완벽하게 백업할 수 있다면, 그 데이터는 또 다른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서버에서 인출된 나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내 가슴속에 희미한 온기로 남아있던 기억과 같은 '질감'을 가질 수 있을까? 펑크 레코즈는 단순한 지식 저장소를 넘어, '디지털 영생' 혹은 '영혼의 복제'라는 인류의 오랜 꿈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이제 베가펑크와 그의 여섯 위성(分身)들은 머리에 달린 안테나를 통해 이 거대한 뇌에 접속한다. 이건 단순한 무선 접속이 아니다. 뇌와 외부 시스템을 직접 통합하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의 실현을 암시하지. 생각의 속도로 지식이 밀려들어오는 경험은 어떤 느낌일까. 내 머릿속의 '나'라는 목소리와 시스템이 속삭이는 '정답'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없게 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지적 희열이라 부를까, 아니면 자아의 침식이라 부를까? 매일 각자의 경험과 지식은 이곳에 저장되고, 실시간으로 동기화된다. 베가펑크에게 펑크 레코즈는 단순한 외장 하드가 아니다. 그것은 그의 기억이자, 지식이며, 곧 그의 존재 그 자체다.
베가펑크의 이 기이한 이야기가 그저 만화적 상상력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우리를 흥미롭게 한다. 사실 우리는 이미 원시적인 형태의 펑크 레코즈와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클라우드 서비스'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나 중요한 문서를 구글 드라이브나 네이버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데이터는 더 이상 내 손안의 기기가 아닌, 어딘가에 있을 거대한 데이터 센터에 저장되고,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을 통해 그 데이터에 접속한다. 펑크 레코즈는 바로 이 클라우드 서버의 궁극적인 생물학적 버전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 안에 담긴 '지식'의 본질은 어떨까? 이는 마치 챗GPT와 같은 초거대 인공지능(AI)과 닮았다. 챗GPT는 인터넷의 거의 모든 책과 글, 대화를 읽고 학습하여 세상의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베가펑크가 오하라의 학자들이 목숨 걸고 지킨 방대한 서적을 읽어 펑크 레코즈를 채웠듯이 말이다. 이러한 지식 제공 방식을 전문가들은 '서비스형 지식(Knowledge-as-a-Service, KaaS)'이라 부른다. 단순히 데이터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 그 데이터의 의미와 배경, 즉 '맥락화된 지식'을 함께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의 아이디어와 내 AI 파트너의 문장 사이의 경계 또한 희미해진다. 때로는 내가 제시한 개념을 AI가 더 적절한 비유로 되돌려주기도 하고, AI가 엮은 문장이 나의 다음 생각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우리의 협업 과정 자체가, 어쩌면 작은 펑크 레코즈적 실험일지도 모를 일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원피스』의 세계를 잠시 떠나,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전 세계 곳곳에서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며 조용히 돌아가고 있는 구글과 오픈AI의 거대한 데이터 센터. 그 안에 인류의 지식을 집대성하고 있는 초거대 AI.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펑크 레코즈가 아닐까? 우리는 이미 검색과 질문을 통해 그들이 제공하는 지식의 바다에 깊이 의존하고 있다.
베가펑크의 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만약 이 지식의 바다를 모든 인류와 함께 쓸 수 있다면?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와 갈등이 사라지고, 교육의 불평등이 해소되며, 전 인류의 지성이 하나로 모여 기후 변화나 팬데믹 같은 거대한 난제들을 함께 풀어가는 세상. 이것이 베가펑크가 꿈꾼 유토피아의 모습이었다.
이 꿈은 결코 허황되지 않다. 수백 명의 사람이 소의 몸무게를 추측하게 했더니, 각자의 답은 엉터리였지만 그 답들의 평균은 실제 무게에 놀라울 만큼 가까웠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이것이 바로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힘이다. 각기 다른 지식과 관점을 가진 독립적인 개인들이 모일 때, 집단은 한 명의 천재를 뛰어넘는 놀라운 지혜를 발휘한다. 펑크 레코즈는 전 인류의 지혜를 하나로 모으는 궁극의 집단 지성 플랫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베가펑크가 꿈꾼 '지식의 민주화'는, 그것을 실현하는 기술이 소수의 거대 기업, 즉 구글이나 오픈AI의 손에 들어갈 때 '정보의 독점'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힌다. 모든 사람이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정답을 공유하며, 심지어 소수의 기업이 설계한 알고리즘에 의해 생각이 연결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여기에 펑크 레코즈의 위험한 그림자가 숨어 있다.
집단 지성의 밝은 이면에는 '하이브 마인드(Hive Mind)'라는 디스토피아적 경고가 존재한다. 벌이나 개미 군집처럼, 개인이 자아와 자유의지를 상실한 채 거대한 집단 정신의 부품으로 전락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 위험은 단순히 사고의 획일화를 넘어, '감정의 동기화'라는 더 깊은 차원으로 확장된다.
우리는 이미 소셜 미디어를 통해 그 전조를 경험하고 있다. 특정 이슈에 대한 분노는 알고리즘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가고(감정 전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소통하며 확신을 강화한다(메아리 방). 더 많은 클릭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콘텐츠를 노출하는 '분노의 경제학' 속에서, 우리의 감정은 조종되고 증폭된다. 알고리즘이 추천한 슬픈 영상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고, 타인의 분노가 담긴 게시글에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경험. 우리는 이미 외부 신호에 의해 자신의 감정을 조금씩 내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셜 미디어가 고작해야 우리의 시청각을 통해 감정을 간접적으로 자극하는 수준이라면, 뇌에 직접 연결된 펑크 레코즈는 어떨까. 특정 감정, 예컨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나 특정 상품에 대한 호감, 혹은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감을 인구 전체에 실시간으로 동기화하는 '궁극의 감정 통제 시스템'이 될 수 있다는 상상은 너무 나아간 것일까. 이는 우리에게 '감정의 주권'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과연 우리는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 믿는 그 감정의 주권을 지킬 수 있을까?
AI의 등장은 이 흐름을 더욱 가속화한다. AI에게 보고서 개요를 짜달라고 부탁해 본 적 있는가? 놀랍도록 그럴듯하지만, 어딘가 독창성은 부족한, '평균적인' 결과물을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는 AI가 가진 '위대한 평균화'의 힘이자 위험이다. 이 '위대한 평균화'가 진정으로 위협하는 것은 우리의 '사유 독립성'이다.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탐색하며 자신만의 결론에 도달하는 능력. 즉, 한 개인의 고유한 지적 풍경(知的 風景)을 만들어가는 힘 자체가 약화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 거대한 시스템에 '랙(lag)'이 걸린다면 나의 사고도 느려질까? 데이터 손실로 기억의 일부가 '손상된 파일'이 된다면, 내 존재의 일부가 말 그대로 소멸하는 경험을 하게 될까? 기술적 오류가 곧 실존적 공포가 되는 세상. 그것이 연결된 미래의 또 다른 얼굴이다.
프롤로그에서 우리는 인간이 자신의 통제력을 과신하는 '통제 환상'에 빠지기 쉽다고 이야기했다. 베가펑크의 위대한 꿈은 바로 이 지점에서 양날의 검이 된다. 지식의 공유는 인류를 구원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우리를 하나의 생각으로 묶어버리는 거대한 통제 시스템이 될 수도 있다. 앤트로픽의 '슬리퍼 에이전트'가 보여주었듯, 우리는 AI의 겉모습만 보고 그 속을 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펑크 레코즈라는 지식의 바다 앞에서, 우리는 어떤 항해사가 될 것인가? 스스로의 의지로 더 현명한 존재를 향해 헤엄쳐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개성을 잃어버린 채 그저 '위대한 평균화'라는 거대한 해류에 몸을 맡길 것인가? 그 항해의 방향키는, 기술이 아닌 그것을 사용하는 우리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