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잠든 사이

by 왓에버

딸아이가 낮잠 자는 틈을 타 잠시 편의점에 다녀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에게서 영상 하나가 도착했다. 잠에서 깬 아이가, 세상이 떠나가라 울고 있었다. "아빠아..."


그 순간,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진심으로 서러워하는 아이 앞에서 웃다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 땅을 치며 통곡하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아이는 세상의 끝을 경험하고, 나는 세상 가장 귀여운 드라마를 본다. 이 기묘한 감정의 엇갈림은 어디서 오는 걸까. 부모는 왜 아이의 진심 어린 슬픔 앞에서 웃음 짓게 되는 걸까?


22개월 아이에게 '아빠와 함께 가는 편의점'은 테마파크 입장과 같다. 뒤뚱거리며 신발부터 찾게 되고, 길 위의 모든 것이 새로운 발견이 되는 탐험, 거대한 보물창고 같은 진열대 앞에서 이것저것 만지는 즐거움까지, 완벽한 하나의 '놀이'다. 애엄마는 무조건 안전제일 집순이라 아이를 데리고 잠깐 산책만 하려고 해도 기겁을 하는 상황이라 자주 오는 기회도 아니다. 내 입장에서는 잠깐 담배사러 가는 것 뿐인데도 말이다. 넘어진 무릎보다, 놓쳐버린 모험이 더 서러운, 그 이상한 슬픔의 논리를 어른들은 이미 잊었다. 아이의 의식은 무대 위 단 하나의 조명처럼, 오직 '나를 두고 떠난 아빠'에게만 온전히 집중되어 있다.


반면 부모의 시선은 무대 전체를 조망하는 관객석에 있다. 우리는 안다. 내가 불과 5분 거리에 있다는 것을. 이 슬픔이 곧 다른 놀이로 잊힐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이 눈물이 아이에게 어떤 실질적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압도적인 관점의 차이가 동일한 사건을 비극과 희극으로 가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모의 웃음을 전부 설명할 수 없다.


심리학자들은 웃음이 안전한 위반에서 터져 나온다고 말한다. 부모는 아이의 울음 속에서 본능적으로 '안전'을 감지한다.


이 눈물은 진짜지만 위험하지 않다.


이 분노는 격렬하지만 해롭지 않다.


오히려 감정을 남김없이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건강함의 증거다. 부모의 웃음은 이 안전함에 대한 확신, 그리고 그 확신이 주는 심리적 여유에서 피어나는 것 같다. 아이의 울음은 감정의 순도 100%다. 어른처럼 체면을 생각하거나 상황을 계산하지 않는다. 아빠가 없으니 슬프고, 슬프니 운다.


모순없는 울음.


그걸 보고 웃고있는 내가 너무 모순적인 것 같아서 잠깐 미안했으나, 그 뿌리가 안전함에 있다고 하니 오히려 아빠로서 마음이 뿌듯해지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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