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코딩’이라는 세 글자는 우리 부모들의 마음 한복판에 자리 잡은 익숙한 불안의 이름이 되었다. 유치원 설명회에서는 ‘영어로 진행하는 코딩 수업’을 자랑하고, 교육청에서 지정한 ‘AI 시범 유치원’이라는 낯선 간판도 눈에 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중고등학생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코딩 학원에는 이제 초등학생들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방학이면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코딩 캠프’가 성행한다.
이 거대한 흐름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정부는 코딩 교육을 의무화했고, 2025년부터는 정보 교과 시수가 두 배로 늘어난다고 한다. 주요 대학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소프트웨어(SW) 특기자 전형’이라는 문을 열어두었다. 시스템이 보내는 신호는 명확하다. 코딩은 이제 영어처럼,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필수 소양’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신호 앞에서 부모의 불안은 지극히 합리적인 반응이다. 내 아이만 뒤처지게 할 수는 없다는 절박함, 더 나은 미래를 열어주고 싶은 간절함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정보를 찾고, 학원 문을 두드리고, 아이의 손에 태블릿을 쥐여준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의 기저에는 하나의 거대한 전제가 깔려 있다. 바로 ‘코딩 교육은 컴퓨터 앞에서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초등학생도 취득하는 신생 자격증을 대단한 스펙처럼 이야기하고, 지방에서는 정보 교사 한 명이 서너 개의 학교를 순회하며 가르치는 것이 현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잠시 멈춰 서게 된다. 이 열풍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이 불안의 파도에 휩쓸려 아이를 서둘러 컴퓨터 앞에 앉히는 것이 정말, 우리 아이를 위한 최선의 길일까?
어쩌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코딩 교육 현장은 ‘생각하는 힘을 기른다’는 고귀한 목표와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현실적 필요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다. ‘컴퓨팅 사고력(Computational Thinking)’이라는 본질은 어느새 희미해지고, 그 자리에는 특정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법을 외우거나, 포트폴리오에 넣을 앱이나 게임을 만들어내는 ‘도구 사용법 암기’가 들어섰다.
이러한 변질은 어쩌면 예견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갑작스러운 교육 의무화로 수요는 폭발했지만, 그 깊이와 철학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교사는 턱없이 부족하다. 수도권조차 한 학교에 정보 교사 한 명이 겨우 배정되는 실정이며, 지방으로 가면 한 명의 교사가 여러 학교를 담당하며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하는 것이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교사들마저 컴퓨터 교육 비전공자로서 단기 연수만으로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깊이 있는 교육 철학의 부재는 자연스레 가르치기 쉽고 성과가 눈에 잘 보이는 ‘툴 교육’으로 귀결된다. 한 교실에서 코딩 수업이 단순히 관련 영상을 틀어주는 것으로 대체되는 웃지 못할 풍경은 이러한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명백히 보여준다. 사교육 시장은 이러한 공백을 더욱 파고든다. ‘3개월 완성 파이썬’과 같은 구호는 불안한 부모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는 아이들에게 생각의 원리를 가르치기보다, 기계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의 엄격한 규칙과 띄어쓰기 하나에도 오류를 내뿜는 깐깐한 문법을 주입하는 과정이 되기 쉽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왜 인간이 기계에 맞춰야 하는가?”.
기술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도구여야 한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인간 고유의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 대신, 기계의 논리 구조에 스스로를 맞추는 법을 먼저 가르치려 하는 걸까? 현재의 코딩 교육 열풍은 어쩌면 기술을 경배한 나머지, 교육의 주체여야 할 인간을 소외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다.
우리는 ‘코딩 교육’이라는 이름이 씌운 거대한 오해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코딩 교육의 진짜 목적은 아이를 프로그래머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파이썬이나 자바스크립트 같은 특정 언어의 전문가가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 모든 혼란을 걷어내고 나면, 그 중심에는 단 하나의 목표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전문가들은 이 ‘생각의 문법’을 ‘컴퓨팅 사고력(Computational Thinking)’이라고 부른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그 본질은 컴퓨터 과학자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사고방식을 체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고방식은 네 개의 단단한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로 ‘분해(Decomposition)’, ‘패턴 인식(Pattern Recognition)’, ‘추상화(Abstraction)’, 그리고 ‘알고리즘(Algorithm)’이다.
이 어려운 용어들에 주눅 들 필요는 없다. 사실 우리는 이미 삶 속에서 이 네 가지 능력을 매일같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기둥, 분해는 크고 복잡한 문제를 작고 다루기 쉬운 단위로 쪼개는 힘이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기’라는 막막한 목표를 ‘ 현관문 나서기 지하철역까지 걷기 7호선 타기…’처럼 작은 단계로 나누면, 문제는 훨씬 명확하고 해결 가능해 보인다. 이는 “방 청소하자”는 막막한 미션을 “ 장난감 상자에 넣기 책은 책장에 꽂기 이불 개기”로 나누어 생각하는 우리 아이의 모습과 정확히 같다.
두 번째 기둥, 패턴 인식은 쪼개진 문제들 사이에서 반복되는 규칙이나 유사성을 발견하는 힘이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의 레시피가 다르지만, ‘재료를 볶다가 육수를 붓고 주재료를 넣어 끓인다’는 공통적인 패턴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레고를 조립할 때, 파란 블록 다음에는 꼭 노란 블록을 놓는 자신만의 규칙을 발견하고 반복하는 아이의 놀이 속에 이 힘이 숨어있다.
세 번째 기둥, 추상화는 문제 해결에 불필요한 세부 사항은 과감히 무시하고 핵심에만 집중하는 능력이다. 자동차를 운전할 때, 엔진의 복잡한 연소 과정까지 알 필요 없이 ‘핸들, 액셀, 브레이크’라는 핵심 기능에만 집중하면 충분하다. 친구와 다툰 상황에서 “누가 먼저 밀었는지” 같은 세부사항보다 “서로 사과하고 화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핵심을 파악하는 아이의 지혜가 바로 추상화의 힘이다.
마지막 네 번째 기둥, 알고리즘은 문제 해결을 위한 명확한 절차와 규칙의 집합을 만드는 능력이다. 요리 레시피가 바로 완벽한 알고리즘의 예시다.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해 “ 빵에 잼 바르기 햄 올리기 치즈 올리기 빵 덮기”라는 명확한 순서를 정하는 아이의 계획이 바로 세상을 움직이는 알고리즘의 시작이다.
이 네 가지 생각의 도구는 컴퓨터 앞에 앉아야만 배울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 속에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 컴퓨팅 사고력이란 결국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명확하게 소통하는 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리고 이 힘은 값비싼 학원이 아니라, 아이의 삶과 놀이 속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단단하게 자라난다.
컴퓨팅 사고력이 ‘생각의 문법’이라면, 그 문법을 배우는 가장 좋은 교재는 컴퓨터가 아니라 아이의 놀이 그 자체이다. 교육학자들은 컴퓨터 없이 컴퓨터 과학의 원리를 배우는 활동을 ‘언플러그드(Unplugged) 활동’이라고 부른다. 이 활동들은 고가의 장비가 필요 없어 비용 부담이 적고, 경쟁보다 협력을 가르치며,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최고의 교육 방식이다.
가장 대표적인 언플러그드 활동으로 ‘샌드위치 만들기 로봇 놀이’가 있다. 아이는 ‘프로그래머’가 되고, 부모는 아이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는 ‘로봇’이 된다. 아이가 “빵에 잼 발라줘”라고 모호하게 명령하면, 부모 로봇은 잼 통을 통째로 빵 위에 올려놓는 시늉을 한다. 아이는 웃음을 터뜨리며 자신의 명령이 얼마나 불완전했는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 시도한다. “숟가락으로 잼을 한 스푼 떠서, 빵의 넓은 면에 골고루 펴 발라줘.” 이 놀이를 통해 아이는 모호한 생각을 명확하고 순서에 맞는 절차, 즉 ‘알고리즘’으로 만드는 훈련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화면에 코드를 입력하고 실행 버튼을 누르는 것은 일종의 ‘블랙박스’와 같다. 아이는 원인과 결과 사이의 논리적 과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화려한 결과물에만 집중하기 쉽다. 하지만 샌드위치 로봇 놀이에는 그런 블랙박스가 없다. 아이의 잘못된 논리는 부모 로봇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이라는 즉각적이고 명백한 피드백으로 돌아온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화면 속 캐릭터를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본질적인 차원에서 논리의 중요성을 체득하게 된다.
이러한 진짜 코딩 교육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 최단거리 찾기 놀이
바닥에 출발점과 도착점을 표시하고, 가장 적은 걸음으로 도착하는 경로를 함께 찾아본다. 중간에 반드시 거쳐야 할 지점을 추가하며 조건을 바꾸는 놀이를 통해, 컴퓨터가 수많은 길 중에서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찾아내는 ‘최적화 알고리즘’의 원리를 몸으로 배운다.
* 패턴 목걸이 만들기
여러 가지 색깔과 모양의 과자나 구슬을 이용해 ‘분류’하는 법을 배우고, ‘빨강-파랑-파랑-노랑’처럼 자신만의 ‘규칙(패턴)’을 만들어 목걸이를 꿰어본다. 이는 데이터를 정렬하고 규칙을 찾아내는 ‘패턴 인식’ 훈련이다.
* 픽셀 그림 그리기
모눈종이에 숫자를 적어두고, 각 숫자에 해당하는 색을 칠해 숨겨진 그림을 완성하는 놀이를 해본다. 이는 컴퓨터가 복잡한 이미지를 어떻게 수많은 작은 점(픽셀)과 숫자의 조합으로 저장하고 표현하는지, 즉 ‘데이터 표현’과 ‘추상화’의 원리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무너진 레고 블록을 보며 “왜 무너졌을까?” 원인을 분석하고(디버깅), 다시는 무너지지 않도록 더 튼튼한 구조를 고민하는(알고리즘 개선) 모든 순간이 코딩 교육이다. 친구와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문제 상황을 차분히 되짚어보고(분해),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며(패턴 인식), ‘사과하고 화해하기’라는 핵심 목표에 집중하여(추상화), 구체적인 화해의 방법을 찾아 나서는(알고리즘) 과정 전체가 최고의 컴퓨팅 사고 훈련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이것은 특별한 ‘코딩 교육’이 아니라, 우리가 언제나 지향해왔던 ‘훌륭한 육아’의 모습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아이의 생각에 귀 기울이고, 논리적으로 대화하며, 놀이를 통해 문제 해결의 기쁨을 함께 경험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아이의 마음에 ‘생각하는 힘’의 씨앗을 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코딩 학원이나 전문적인 교육은 전혀 필요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훌륭한 육아’라는 비옥한 토양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것과, ‘전문적인 교육’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 둘은 서로를 대체하는 경쟁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완성시켜주는 파트너 관계에 가깝다.
부모와의 상호작용과 일상 속 놀이가 아이의 생각 씨앗을 키우는 ‘최고의 토양’이라면, 훌륭한 코딩 교육은 그 씨앗이 체계적으로 자라나도록 돕는 ‘전문적인 정원사’의 역할을 한다. 정원사는 토양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식물이 더 잘 자라도록 가지를 쳐주고, 지지대를 세워주며, 영양분을 공급한다.
전문적인 교육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이가 무의식적으로 하던 생각의 과정에 이름표를 붙여주는 것이다. 아이는 레고를 쌓으며 직관적으로 문제 해결 능력을 발휘한다. 이때 훌륭한 교사는 아이 옆에서 이렇게 말해줄 수 있다. “와, 그렇게 큰 문제를 작은 부분으로 나눠서 해결하다니! 그걸 ‘분해’라고 부른단다.”, “네가 만든 이 순서 덕분에 멋진 성이 완성되었네. 그게 바로 ‘알고리즘’이야.”
이 ‘이름 붙이기’는 교육학적으로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진다. 아이는 ‘분해’, ‘알고리즘’이라는 개념적 도구(언어)를 얻음으로써, 자신의 사고 과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분석할 수 있게 된다(메타인지). 레고를 쌓을 때만 사용하던 문제 해결 방식을, 이제는 그림을 그리거나 이야기를 만들 때도 의식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정 상황에서 발휘되던 능력이 어떤 문제에든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기술’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따라서 부모의 역할은 좋은 학원을 찾아 등록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어떤 교육이 진정한 ‘정원사’의 역할을 하는지 분별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교육이 단순히 파이썬 문법만 가르치는지, 아니면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그 생각에 이름을 붙이도록 돕는지 질문해야 한다. 아이의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 집중하는지, 협력과 토론을 장려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육아라는 최고의 토양 위에서, 좋은 교육이라는 전문적인 정원사의 손길이 더해질 때, 아이의 ‘생각하는 힘’은 비로소 울창한 숲으로 자라날 수 있다.
우리는 긴 시간 동안 ‘코딩 교육’이라는 낯선 여행길을 함께 걸어왔다. 그 길의 시작점에서 우리를 사로잡았던 것은 ‘뒤처지면 어쩌나’하는 막연한 불안이었다. 그 불안은 우리에게 ‘좋은 학원을 찾아 등록해주는 해결사’의 역할을 강요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코딩 교육의 본질은 컴퓨터 기술이 아니라 ‘생각의 문법’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문법을 배우는 최고의 교실은 학원 컴퓨터 앞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샌드위치를 만들고, 무너진 레고의 원인을 함께 고민하는 우리 집 거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는 부모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한다. 우리는 더 이상 아이의 스케줄을 관리하고 외부 자원을 조달하는 ‘매니저’가 될 필요가 없다. 대신, 아이의 생각하는 힘을 믿고 지지하며, 그 성장의 과정을 함께 기뻐하는 ‘철학적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아이가 던지는 엉뚱한 질문 속에서 ‘분해’의 싹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놀이 규칙 속에서 ‘알고리즘’의 천재성을 칭찬해주는 것. 그것이 동반자로서 부모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물론 언젠가 아이가 더 깊은 탐구를 원할 때, 좋은 교육이라는 ‘전문 정원사’의 도움을 찾아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우리의 목표는 ‘컴퓨터 학원 등록증’이라는 불안의 증표를 얻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더 체계적으로 다듬고, 다른 사람들과 지적으로 교류하는 기쁨을 누리도록 돕는 것이 될 것이다.
불안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나 더 빠른 선행학습이 아니다. 내 아이의 잠재력을 믿는 조용한 확신이다. 컴퓨터가 결코 그려줄 수 없는 우리 아이만의 고유한 ‘생각의 설계도’가 이미 아이의 마음속에서 그려지고 있음을 믿는 것이다.
오늘, 컴퓨터 전원을 켜는 대신 아이와 눈을 맞추고 물어봐 달라.
“오늘은 우리, 무얼 하며 놀아볼까?”
그 대화 속에서, 아이의 삶 곳곳에서 반짝이는 ‘생각의 근육’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이 불안한 시대를 건너갈 가장 단단하고 확실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