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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 Jan 11. 2022

수 많은 야근이 지나간 후에

퇴사하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퇴사를 하며. 숙소 앞 마지막 한 컷.

2021년 12월 31일, 6개월 계약이었던 인턴이 끝났다. 감사하게도 정규직 제안이 들어왔지만, 거절했다. 충동적으로 내린 결론은 아니었다. 이 겨울이 오기 전, 어느 한가을 밤에 어렴풋이 그리던 결론을 마무리 지은 것뿐이다. 마케팅, 디자인, 에디팅- 궁금했던 것들은 다 해봤다. 친구도 사귀었다. 같은 건물에 살면서 오전엔 회사 동료이고 퇴근 후엔 친구라는, '어쩌면 이런 인연은 다신 없을지도 몰라' 하는 그런 관계들이었다.


'난 이러이러한 게 없어서, 부족해서 안될 거야'라며 벌벌 떨던 내가, '난 의욕이 없는 사람 같아. 그래서 안될 거야'라고 생각했던 과거가 우스우리만치 열정을 쏟았다. 잘하고 싶었고, 일을 사랑했다. 참으로 많은 시간들을 생각에 투자했더랬다. 즐거웠고, 행복했다. 하지만 그거 알죠? 결론적으로 행복했다는 것이지, 내게 고통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라는 거.


퇴사일이 가까워지니 많은 이들이 내게 물었다.

"뭐가 제일 힘들었어?"

주저 없이 대답했다.

"나 자신!"


늘 부족하다 느꼈으니깐. 배워도 배워도, 일을 해도 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느낌! 어딘가 나아지는 것 없이, 그저 일을 쳐내고만 있는 것은 아닐까 깊게 좌절한 순간도 있었다. 욕심인 거 알지만, 단계적으로 최첨단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갖춰나가는 멀티플레이어가 되고 싶었는데, 다 삭아버린 철근 몇 개로 대충 만든 얼렁뚱땅 굴러가는 허름한 기계에 멈춰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느 한가을 밤'의 하늘. 별이 쏟아진다.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고 싶었는데, 막상 수련할 기회가 오니 잘 안돼서 지친 거다. 이렇게 궁지로 몰리는 순간, 웃기게도 이제껏 결정할 수 없었던 것- 목표가 구체적으로 잡히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떨쳐내려 홀로 산책하던 그 한가을 밤, 마음속에 울린 내 목소리. '그래, 나는 글을 품고, 그것들을 콘텐츠로 파는 회사에 가야겠어'. 그 순간 느꼈던, 냉수 한 잔 들이킨 듯 그 어느 때보다 맑게 개인 기분은 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목표를 봐버린 순간부터, 셀 수 없이 많은 날들을 야근으로 지새우며 언젠가 지금 앉아있는 이 방에서 오로지 내가 원하는 글을 쓰길 바랬다. 모든 것이 벅차서, 주말에 그곳으로부터 도망치듯이 여행 간 전주에서 조차 온전한 평화를 찾지 못한 채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막상 이 시간이 오니, 그렇게 평화롭지만도 않아 혼란이다.


도대체 무얼 해야 하는 걸까? 다시 이 커다란 질문 앞에 선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불안을 끌어안았다. 어르고 달랠 생각도 없이, 수많은 불안을 거쳐왔던 방법을 아예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점점 다가오는 심장소리가 귀에 울릴 때까지 해소할 길이 없이 헤매다, 신기하게도 먹히는 방법을 한 가지 찾았다. 일을 잘 해내고 싶어서, 혼자 밤 11시에 사무실에 앉아있는 언젠가의 내 모습을 3인칭 시점으로 보는 거였다.


야근을 마무리하며, 오전 1시 4분에 찍은 사진. 뿌듯했다.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는 장면이었다. 열정으로 가득하던 내 모습. 동시에 미래를 꿈꾸고 있는 내 모습. 잔뜩 등을 굽힌 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들기던 내 모습. 동시에, 그때 마음속 소리도 들었다. '남들이 충분하다 어쩐다 해도 상관없어. 내가 인정할 때까지 할 거야. 꼭 해내고 싶어'. 가만히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귓전의 심장 박동이 점점 느려지더니, 결국엔 그 소리가 사라져 버렸다.


도대체 무엇에서 안정감을 얻은 걸까?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자기신뢰의 빈 공간을 채운 걸까? 아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지만,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방법을 발견한 기쁨에서 시작한 이 자기 안정의 마지막 단계는, 지금 하고 있는 '글을 쓰는 것'이다. 이 방법을 진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 진정한 내 것으로 만들려면, 머릿속을 한 번 거친 어떤 '생산물'이 되어야 한다는 경험에 의거한 단계이다.


불안이 한 바탕 지나가니, 반드시 견뎌야만 하는 길목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이 와닿는다. 앞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찾아왔을 때, 당분간은 이 방법을 써먹을 거다. 그러다 언젠가는 이 방법이 먹히지 않을 수 있겠다. 그렇게 되면 또 그때 글을 써볼까. 죽을 때까지 불안 한 점 없이 살고 싶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욕심은 구겨 던져버리고, 마주한 갈림길 앞에서 골똘히 생각해보는 사람이고 싶은 욕심을 마음속에 새겨본다.


아무튼 오늘의 생각 뭉치를 풀어놓으며- 궁금했던 것 하나. 다들 어떻게 불안을 해소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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