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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 Nov 07. 2021

일의 기쁨과 슬픔

첫 직장생활 4개월 후, 나를 마주하는 내 안의 거울 앞에서.

띠섬목해변 - 직장 동료이자 친구들인 이들과 함께

한산에서 살게된 지, 첫 직장을 다니게 된 지 벌써- 네 달이나 지났다. 이제 일주일만 채우면 만 네 달이 된다. 입사한 지 한달 째엔, 밀린 날들을 기록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일기를 토해내듯 갈겨놓고 마지막에 ‘제가 이럴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하는 문장들로 대충 포장해 글을 던져버렸다. 그 땐, 혼란이 가득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감정이 없어진 건 아니다. 모든 감정이 그렇듯, 비워지고 늘 새로 채워지는 중. 이제와 생각해보니 처음에 마주한 이 두려움이 모든 것이 처음이라서, 삶의 패턴이 완전히 바뀌어서 그렇게 된 것 같진 않다.


그러면 뭐 때문에? 그런데, 그냥 내가 고치고 싶어했던 내 기질적인 면이 결국 내 감정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것. 한산에 딛기 전부터, 그 옛날 ‘내가 맡은 바’에 욕심이 생겼을 때부터 나는 평생을 완벽하게 살고 싶었다. 동시에 이런 성향을 버리고 싶어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라본 나는, 버리는 것 조차 '완벽하게' 버리고 싶은 사람이었다. 다들 알겠지만, 완벽주의자치고 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벽주의자는 완벽을 추구하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완벽한 결과물을 내진 않는다.


물론 남들에게 이런 잣대를 들이밀지는 않는다. 또 저마다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는 기준이 있을 것 이라고 굳게 믿고 있어서, 솔직히 말하면 내 상관할 바 아니다. 난 나만 신경 쓰면 된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한번 즈음은 ‘내 실력이 이정도까지다-‘ 하고 인정하는 태도도 필요하다는 걸 안다. 아는데, 또 그 태도가 결국 더 나은 나로 이끌지 못한다는, 내가 나에게 떳떳하지 못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완벽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이면서 동시에 마음 속으로 동경하는 –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마음들이 터질 듯 우겨져있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서천 하늘

누구나 처음엔 잘하지 못 한다. 처음부터 잘하면 그건 사람이 아닐 것이다. 알고있지만, 다 비워내지 못한 욕심들이 여전히 매 순간 나를 괴롭힌다. 특히 글을 쓸 때. 내 인사이트의 밑바닥을 느끼는 순간에는 막막함 그 이상의 무력감을 느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쨌든 글이란 형태의 컨텐츠를 생산해내어야 하는 입장이라, 매 주 꼬박꼬박 결과물을 내놓고 있지만, 어째 매 주 갈수록 만족감이 바닥을 치는 중이다. 글을 대하면 대할수록,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을 대하듯 마음이 어려워진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주도 그랬다.

 

늘 혼돈으로만 가득 찬 날들을 보내는 건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존경스러운 상사와 사수가 있고, 동료 이상으로 마음을 얹어주는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과 만들어내는 장면에서 매 번 위안을 얻고 에너지를 받고 있지만, 동시에 해결 되지 않는 불안한 한 구석이 분명 남아있다. 내가 언제까지고 남들에게서만 에너지를 얻을 건 아니니까. 나는 분명 타인과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지만, 나와의 관계에서도 존재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고 싶은 내가 스스로에게 좋은 사람이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건 또 아니니까.
 
 심지가 굳길 바랐고, 지금 굳어지는 중이라 생각한다. 근력 운동을 하고 난 뒤에 우리가 근육통을 느끼는 이유는, 근섬유가 찢어져서 (상처가 나서) 다. 찢어진 근섬유들이 회복되면서 근육이 좀 더 튼튼해지고 모양을 잡아가는거라 한다. 이런 매커니즘이 우리 근육에만 해당될까? 이 세상 만물의 문법이 그래 보인다. 뭐든지 상처 없고, 고민없는 발전은 없듯 나도 ‘더 나은 나’로 향하는 발전의 기로 위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이 고통이 늘 달갑고 당연하게 여겨지기만 하진 않는다.

전주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서천으로

위로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딱 이 정도까지만 괴로워하고, 담담하게 살고 싶다. 살면서 마주칠 날들에, 이 정도까지만 혼란스러워 하고 의연하게 살고 싶다. 이런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은, 대게 남들이 그렇듯 지나가야 할 관문을 지나고 있기 때문일 거라 굳게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한산에 오게 된 것도, 이 커뮤니티에 속하게 된 것도 눈물나리만치 감사하다. 이 시기에 이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산으로 향하는 숙소 뒷길이 없었더라면, 쏟아질 듯 가득한 밤하늘이 없었더라면, 초등학교 앞 네 대의 그네가 없었더라면? 잘 모르겠다.


두렵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새벽 안개 낀 것 같은 감정이 개길 바라며, 어렵지만 스스로에게 떳떳한 날들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마음으로 백지를 채운다. 어제도 떳떳하고 오늘도 떳떳했다면 내일도 떳떳할 것이라는.. 이두희식 수학적 명제를 내 삶에도 괜히 대입해본다. 결국에는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 누구에게도 얻지 못할 해답을 향해 가는 여정에 결국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풍경들을 마음에 담아두며 살고 싶다. 오늘도 그 순간 위에 있다.

 

괜히 글을 쓰고 싶은, 전주의 평화와 평화에서 세 달 만에 오로지 나를 위한 글을 쓰고 마음을 가다듬는다. 두시간 남 짓의 시간 동안 지난 날을 돌아보고, 몇 번의 문단 퇴고를 하고, 마지막 문장의 온점까지 찍는다. 이 카페를 나설 때면, 내가 싫어 도망치듯 전주로 날아온 이틀 전의 나와는 다른 내가 되어있을거라는 확신이 있다. 어제와는 다른 나로 살아갈 날들을 그리며 기차에 몸을 싣겠다.

 

각자 어떻게 살고 계신지? 하여튼 난 이렇게 살고 있다. 생각을 온 몸에 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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