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아야 할 상표권과 리폼 사이, 대법원이 내린 선택 뒷 이야기
어느 날 한 통의 소장이 날아들었습니다.
서울의 리폼 수선집. 가방을 고치고 다듬는 일로 먹고살던 이 집에 루이비통이 소송을 걸었습니다.
이유는 상표권 침해.
수선집 주인은 황당했을 겁니다.
팔지도 않았습니다. 고객이 가져온 가방을, 고객이 원하는 모양으로 바꿔서, 고객에게 돌려줬을 뿐인데.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이 수선집에는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오는 손님들이 있었습니다.
사연은 다양했을 겁니다. 오래돼서 낡은 가방, 유행이 지나서 못 들고 다니는 가방, 크기가 맞지 않는 가방.
손님들은 버리기엔 아깝고 그냥 쓰기엔 싫은 가방을 들고 와서 말했습니다.
"이걸 이런 모양으로 바꿔주세요."
수선집은 가방을 받아 완전히 해체했습니다. 원단을 재단하고, 부품을 분리하고, 새로운 형태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큰 토트백이 작은 크로스백이 되기도 했고, 가방이 지갑이 되기도 했습니다. 만들어진 제품을 다시 손님에게 돌려줬습니다.
리폼 비용은 한 건당 10만 원에서 70만 원. 4년 동안 관련 매출액은 2,380만 원이었습니다.
당연히 정품 제품을 이용한 리폼이었기 때문에 리폼 제품에는 LV 모노그램이 빼곡히 박혀 있었고, 리폼 후에도 그 로고는 그대로였습니다.
루이비통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저 가방, 우리가 만든 게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로고가 붙어 있습니다. 이건 상표권 침해입니다."
얼핏 들으면 억지처럼 들립니다. 원단은 원래 루이비통 거였으니까요.
그런데 상표법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상표법이 보호하는 건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상품의 출처표시 기능, 즉 이 물건이 어디서 만들어졌는지를 소비자가 알 수 있도록 하는 것.
다른 하나는 상표권자의 신용 보호, 즉 브랜드가 쌓아온 품질과 평판을 지키는 것입니다.
리폼 과정에서 원래 제품의 형태, 디자인, 기능이 크게 바뀌면, 그 브랜드가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과 품질 기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법률 용어로는 '상표의 희석화'라고 합니다. 소비자가 변형된 제품을 보고 브랜드의 본래 품질을 오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상표법에는 '상표권 소진'이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루이비통이 가방을 판매하는 순간, 그 가방에 대한 상표권은 소진됩니다. 산 사람이 그 가방을 쓰든, 팔든, 중고로 넘기든 루이비통이 뭐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예외가 있습니다. "원래 상품과의 동일성을 해칠 정도로 가공하면, 실질적으로 새 상품을 만든 것과 같아서 상표권 소진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루이비통의 논리는 이거였습니다. 가방을 완전히 해체해서 전혀 다른 형태로 만들었으니, 이건 수선이 아니라 새 상품 제조다. 새 상품에 우리 로고가 붙어 있으니 상표권 침해다.
2023년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루이비통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리폼의 정도가 너무 심하다. 원래 제품과 동일성이 없다. 사실상 새 상품을 만든 것이다.
상표권 침해가 맞다."
수선집은 항소했습니다.
"저는 팔지 않았습니다. 고객 것을 고객에게 돌려준 것뿐입니다. 어떻게 이게 상표권 침해입니까."
그러나 2024년 10월, 특허법원도 같은 판단을 내렸습니다. 수선집 패소. 손해배상 1,500만 원.
수선집은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사실 이런 분쟁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2022년 미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두 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Shiver + Duke라는 업체입니다. 이 업체는 샤넬 의류의 단추를 재활용해 주얼리를 만들었습니다. 샤넬은 이 단추가 원래 주얼리용이 아닌 의류용이었고, 샤넬과 무관한 제품에 자사 로고가 붙어 있다고 문제 삼았습니다. Shiver + Duke는 상표권 소진을 주장했지만, 뉴욕 남부 지방법원은 샤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결국 샤넬 단추를 활용한 리폼은 영구 금지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Sandra Ling Designs입니다. 루이비통 소재를 변형해 의류, 핸드백, 액세서리를 만든 디자이너인데요. "저희 제품에 루이비통과 제휴가 없음을 명시했다"고 반박했지만, 판결 전 합의가 이루어졌고 결과적으로 루이비통에 약 60만 달러를 지급하고 영구 금지 명령에 동의해야 했습니다.
한국의 1·2심 판결은 이러한 해외 사례와 법리적으로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그런데 2026년 2월 26일, 대법원이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대법원의 논리는 한 가지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상표법이 왜 존재하는가?"
상표법은 결국 시장에서의 출처 혼동을 막기 위한 법입니다.
소비자가 "이게 루이비통이 만든 건지 아닌지"를 착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이 수선집 사건에서, 시장에서의 혼동이 생겼을까요?
리폼 제품은 수선업자에 의해 시장에 나온 적이 없습니다.
가방 주인이 맡겼고, 가방 주인에게 돌아갔습니다.
제3자가 "이거 루이비통이 만든 거야?"라고 착각할 기회 자체가 없었습니다.
대법원은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리폼 제품이 거래시장에서 유통되지 않고 개인적 용도로만 사용되는 한, 상표권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소유자가 직접 리폼하는 것만 허용하고, 전문가에게 맡기는 건 금지한다면, 리폼의 자유는 형식적인 선언에 불과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입니다. 루이비통 가방을 직접 해체하고 재봉질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전문 기술이 있는 업자에게 맡기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내 물건에 대한 소유권 행사라는 겁니다.
그리고 판결문에는 이런 문장도 들어 있었습니다.
"리폼 행위는 소유권 행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소비자 후생 증대, 자원 순환이용을 통한 환경적 지속 가능성 확보 등의 가치와 관련되어 있다."
법원이 상표권 판단에 환경 가치를 공식적으로 끌어들인 거의 최초의 사례입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오해합니다.
대법원이 "리폼은 다 괜찮다"고 한 게 아닙니다. 판결문에는 이런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엔 여전히 상표권 침해입니다:
업자가 리폼 과정을 주도하면서 실질적으로 자기 제품처럼 만들어 파는 경우. 고객 의뢰 없이 루이비통 중고 가방을 사다가 해체해서 새 제품으로 만들어 판다면, 이건 침해입니다. 또한 고객이 개인 사용이 아닌 재판매 목적으로 리폼을 의뢰한 걸 알면서도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이것도 침해에 가담한 겁니다.
핵심은 리폼 후 시장에 나오느냐, 아니냐.
그리고 이 사건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사건을 특허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파기환송). 이 수선집이 정말 "원칙적인 경우"에 해당하는지 특허법원이 다시 심리해야 합니다. 수선집이 최종적으로 이긴 것은 아직 아닙니다.
이 판결을 계기로 우리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전 세계 온실가스의 약 10%를 배출하는 패션 산업은 환경 파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업사이클링은 버려질 소재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고, 기업들도 ESG 경영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법제상으로는 리폼 행위의 상표권 침해 가능성을 완벽하게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상표권과 업사이클링의 자유 사이의 갈등이 커지면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저는 세 가지 방향을 제안합니다.
첫째, 리폼의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단순 수선과 창작적 변형의 경계를 법적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찢어진 가죽을 교체하거나 안감을 수선하는 것처럼 원래 제품의 기능과 형태를 유지하는 작업은 허용되어야 합니다. 반면 가방을 해체해 지갑으로 바꾸는 것처럼 제품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경우는 상표권과 충돌할 수 있어 보다 명확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브랜드의 품질과 디자인 요소를 존중하면서도 개인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는 균형점이 필요합니다.
둘째, 공식 업사이클링 프로그램의 도입이 필요합니다.
에르메스의 'petit h'는 업사이클링 전용 라인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친환경적 창작 활동을 장려하는 좋은 사례입니다. 브랜드가 자체 리폼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인증된 리폼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는다면, 소비자의 리폼 수요를 합법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브랜드와 소비자가 함께 협력하는 제도를 통해 지속 가능한 패션 생태계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셋째, 환경 가치와 상표권 사이의 조화가 필요합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의미 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법원이 상표권 판단에서 환경적 지속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는 것, 그 자체가 하나의 신호입니다. 리폼 행위를 무조건 불법으로 보는 것은 시대의 변화에 맞지 않습니다. ESG 관점에서 리폼 허용 범위를 설정하고, 지속 가능한 소비를 법적으로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수선집 문을 두드리던 손님들. 낡았지만 버리기 아까워서,
형태만 바꾸면 또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게 상표권 침해였을까요?
대법원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내 물건을 내 방식대로 쓰는 것, 그게 소유의 기본이라고 했습니다.
이 판결을 "약자가 대기업을 이겼다"는 훈훈한 이야기로만 읽으면 절반만 이해한 겁니다. 이건 내 물건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이야기이고, 리폼과 업사이클링이 법적으로 어떤 위치에 서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며, 환경을 위해 고쳐 쓰는 행위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업사이클링은 지속 가능한 소비를 위한 긍정적인 시도입니다. 하지만 브랜드와 소비자 간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협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통해 환경 보전과 브랜드 가치를 모두 존중하는 새로운 소비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본 글은 2024.11.07 중기이코노미에서 기고된 필자의 칼럼을 바탕으로 재작성되었습니다.
원문은 https://www.junggi.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050 참고바랍니다.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 및 개인적 의견을 목적으로 작성된 것으로, 특정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이나 법적 의견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구체적인 법률 문제에 대해서는 관련 분야의 변리사 또는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