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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계란 Jun 24. 2019

12. 초짜 선생님의 험난한 시작

학교마다 다르지만, 우리 학교는 42분씩 수업을 했다. 나의 시간표는 7시 50분부터 7시 57분까지는 Homeroom으로 가서 9학년 출석체크를 했고, 1교시는 8시부터 8시 42분 수업, 2교시는 다른 엔지니어링 선생님을 도와주고(코티칭), 3교시는 프렙 시간으로 복사를 하거나 수업 자료를 만드는 등 수업 준비, 4교시부터 8교시까지는 수업이었다. 아이들을 만나는 첫날, 난 말 그대로 밤잠을 설치며, 기대감 가득 부풀어있는 초짜 선생님이었다. 무엇을 해야 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머릿속에만 가득가득 그려져 있는 상태로 아이들 앞에 갔으니 말이다.



                        


아이들은 동양인의 젊은 여자 선생님이 신기해서였을까, 첫날은 정말 순한 양처럼 조용하고, 얌전했다. 나는 아이들의 성향을 잘 판단하지 못했고, 학생수가 30명 가까이 되는 수업인 경우, 솔직히 무섭고 두려웠다. 아이들이 그들의 발톱을 드러낸 것은 채 일주일이 되지 않아서였다. 수업에서 뛰쳐나가고, 떠드는 것은 기본, 싸우고, 물건을 던지고, 소리 지르고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그래도, 1교시는, 학교에 오자마자 여서였을까, 아이들이 소수였기 때문일까, 가장 내가 좋아하는 시간이었고, 조용하고 수업이 잘 되는 시간이었다. 또한, 공부 잘하고 괜찮은 아이들이 많아서 내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들이 많았다. 솔직히 1교시 아이들을 보기 위해서 학교에 가자는 마음으로 처음 몇 달은 학교에 출근하기도 했을 만큼 정이 가는 학생들이 많았다. 다른 선생님들은 수업이 떨어져 있었는데, 나의 경우, 5시간 연속이라 마지막 8교시는 완전히 기진맥진해서 수업을 진행했다. 더군다나 6교시와 8교시는 SPED 학생들이 많아 특수 선생님이 나의 수업을 도와주었는데, 현지 미국 선생님이 내 수업을 듣는다는 것이 처음에는 부담이 되었다. 그래도 나중에는 누군가 도와준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았고, 덕분에 애들 관리가 쉬었다.





순한 양이라 믿었던, 아이들은 본모습은 무서웠다. 거짓말을 시작했고, 협박을 했고, 울고 때를 썼으며, 엄마를 데려오는 등 여러 일이 많았다. 학교에서의 일들을 내게 큰 충격을 줬고, 나는 나대로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고, 악을 지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학년에 비해 내가 가르는 학년이 최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 어떤 것도 먹히지 않았고, 점점 더 힘들어만 졌다. 동료 교사들은 나를 비웃는 것 같았고, 모든 학생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았고, 나만 힘들고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11월쯤, 같은 학년을 가르치던 한국인 선생님은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러다 보니, 그리고 몇몇 선생님들이 12월이 끝나고, 학교를 옮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왠지 선생님은 나의 길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학교를 지원도 했고, 이때 GRE 시험을 보았다. 학교에 출근해야 는 일요일 저녁이 두려웠고, 교장선생님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는 악몽을 꾸기 일쑤였다. 부모님께서는 그만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하셨고, Classroom management가 불가능한 사실에서 엄청난 좌절을 했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포기하기에는 너무 힘들게 얻는 Job이었다. 고민 끝에, 수많은 사람에게 물어보고 조언을 구했다. 슈퍼바이저, 동료 교사, 다른 학교 교사 등 어느 누구에게 매달렸다. 물어보고 또 물어봤다. 내 수업에 들어와 달라고 부탁했으며, 다른 선생님들 수업 청강을 했고, 경력이 많은 선생님들께 조언을 구하고 또 구했다. 꼭 살아남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달라졌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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