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삶은계란 Jun 17. 2019

11. 새 출발, 떨리는 마음

집 알아보기가 너무 어려워, 일자리를 다시 찾아야 하나 고민을 했다. 인터넷에 올려진 집에 30군데는 연락해보고, 그중에 연락 오는 10군데를 가보았지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간은 다가오고, 마음은 촉박하고 편의점, 세탁소, 교회 등 생판 모르는 한국 사람들에게도 집 때문에 연락해, 도움을 청하고 또 청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파트를 떠올리게 되었지만, 크레딧 점수가 낮으면 보증인이 필요하다는 어마 무시한 말을 들었다. 당시 보증인이 뭔지도 잘 몰랐으면서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했는데, 당연히 거절당했다. 요즘 세상에 어느 누가 보증을 서주겠는가. 그러다가 한 아파트에 application을 넣어보았는데, 보증인 없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아, 신나서 계약을 했다. 그 아파트가 얼마나 나를 피 말리게 했는지는 모른 채 내 집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참 좋았다. 한국에서도 안 해보는 계약에 난 미숙함이 많았다. 수백 장의 계약서를 얼마나 꼼꼼히 읽어봐야 하는지 잘 몰랐었고, 아파트 보험, PSEG, 인터넷 등 하나하나 처리하는데 발품을 팔고 또 팔으니까. 다락방에 살다, 생긴 내 집, 나만의 공간은 너무 좋았다. 거실에, 발코니, 부엌, 화장실 등 어찌나 크고 넓던지, 아무것도 없는 거실 바닥에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숟가락, 젓가락으로만 시작한 내 미국 생활은 그렇게 처음으로 프라이팬도 사게 되었고, 혼자 하나씩 하나씩 침대, 책꽂이, 책상 등 이것저것 장만하였다. 이사 간 동네는 예전에 살던 동네와 달리 아주 평화롭고 안전한 동네였다.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P 대학교와도 5분밖에 걸리지 않았고, 창밖에 나무가 가득하고, 잔디에는 청설모가 가득했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면, 사과농장, 호박 농장이 가득했다. 그렇게 이사를 혼자서 차근차근했다. 무거운 것들을 2~3번 왔다 갔다 하니, 이사는 끝나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지만, 차도, 집도, 이사도 다 되었다. 될 일은 다 된다는 것이 그 말일까.  




                                                                           

아파트는 내가 버는 돈이 고대로 다 나가는 굉장히 비싼 집이었다. 아마 나의 미국에서의 삶이 길어질 줄 알았더라면 이런 집에서 절대로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 일이라는 게 한 치 앞을 모른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당시 기숙사, 홈스테이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받았던 나는 더 이상 "집"으로 인해, "관계"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고, 행복한 미국 생활을 마무리 장식하고 싶었다. 가구가 없는 집은 가끔 나를 더 외롭게 했지만, 말 그대로 퇴근 후 "집에 빨리 가고 싶다"라는 마음을 미국에서 처음으로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마음껏 초대하고, 내가 좋아하는 자연 속에서 사는 행복을 누리게 해 준 집이었다. 누군가는 가끔 나에게 나의 이 아파트가 너무 그립다고 말하지만, 솔직히 딱히 그립지는 않다. 다만, 한번 더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싶다. 그렇게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미국에서의 취업부터 시작해서,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차를 사고, 집 렌트를 하고 이사를 하고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들이 하나씩 하나씩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있었다.                     

 


    


2016년 9월 1일 날짜로, 간절한 바람대로 미국 고등학교의 선생님이 되었다. 나의 계약은 2016년 9월 1일부터 2017년 6월 30일 정확히 10개월이었다. 10개월은 참 길게만 느껴졌고, 언제 끝날까라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다. 새로운 신입 선생님이기 때문에 Professional development라는 교육을 받기 위해 8월 29일 첫 출근을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새로운 신입 선생님들끼리 교육을 받았고, 다음 며칠은 전체 교사 교육을 받았다. 여러 가지 서류부터, 보험, 연금 등 모든 서류에 사인을 했고, 학교 노트북과 학교 아이폰을 받았다. 학교 이메일을 열고, 어떻게 성적을 입력하는지 배우고, 기본적인 교칙을 들었다. 교실을 정리하였으며, 필요물품들도 주문하고 준비하는 시간이었다. 1년 동안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Unit 플랜을 만들어서 올렸고, 매주 단위 레슨플랜을 준비해야 했다. 그렇게 9월 7일 나의 아이들을 처음 만난다는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다. 그렇게 난 모든 생활 준비를 마친 채, "선생님"이 된다는 기대와 함께, 첫 학생들을 만날 첫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첫 제자는 첫사랑 같다는 말처럼 만나기도 전부터 설렜다. 그 설렘이 산산조각 나는 것은 며칠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To be continued...

작가의 이전글 10.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