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가고, 특별한 일정이 있어 못가도 보름에 한 번은 부모님을 뵈러 시골에 가곤 한다. 지난주에 갔더니 식탁이 낡았다며 어디서 구했는지 작은 유리를 몇 개 맞춰서 덕지덕지 얹어 놓으셨다. '이게 뭐냐'며 당장 사러 가자고 했더니 '뭐 어떠냐', '얼마나 더 쓰겠냐'며 괜찮다 하시는 것이었다. 그 말이 이명처럼 속에서 계속 울렸다.
좀 이기적으로 자신들을 위해서 사셨으면 좋겠는데. 그런 모습을 볼 수는 있을까?
퍼즐 조각처럼 맞춘 유리를 보고서야 남이 볼까 민망할 정도로 낡은 식탁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속 울림을 잠재우기 위해 서재에서 쓰던 책상을 시골 부모님 댁 식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새로 살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다리에 한 두 군데 상처가 있긴 해도 공부방 책상 용도로 썼던 것이었었지만 원래 용도는 식탁이었다. 그걸 두고 돈을 들일만큼 여유롭지도 않았고, 있는 거 갖다 드린다는 명분이니 부담스러워 하시지도 않을 거라 내 입장에서 편하게 생각했다.
전역하면서 가져온 아들 짐이 임시방편으로 서재에 놓였다. 심리학의 '깨진 유리창 법칙'이 서재에도 적용되었다. 한두서너 달 되니 잡다한 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 둘 늘어서 급기야 발 디딜 틈도 없이 되어 버렸고, 내 발길도 뜸해졌다.
범죄예방 환경을 조성하는 셉테드의 기법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 참에 식탁이 빠지고 나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동기가 만들어졌다. 일요일 하루를 잡아 대청소를 실시했다.
원점에서 시작하기 위해 책꽂이를 제외한 모든 짐들을 현관 입구와 거실로 다 꺼냈다. 그러고 보니 좁아 보였던 방이 괘 크다는 것도 새삼스러웠다. 잘 들춰보지 않게 되는 책들과 전공서적, 잡지 등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익숙한 풍경처럼 자투리 공간에 쌓았다. 그리고 대강의 분류기준을 만들어 분류하고 정렬했다. 큰 덩어리들은 쉽게 끝났다. 작은 것들이 문제였다.
버리려고 하는 것들, 이를테면 쓰레기라고 생각되는 것들의 처리가 문제였다. 왜냐하면 이것들도 처음부터 그런 취급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들은 그것들 나름대로 새로운 계획이나 희망처럼 나에게 기쁨과 도전을 주었고, 작은 바람들이 얹혀 지금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소용이 다 되었거나 잠시 잊혀 추억이 묻지 않고 그대로 놓였다는 이유로 운명을 다 한 것들이다. 그것들을 선별하는 작업은 숭고해야 했다. 내 삶의 기억이나 과거의 추억들을 다 끄집어내거나 했거나, 혹은 자신을 살려달라며 잠자고 있던 추억을 들춰내 내 앞에서 애원과 읍소를 을 했기 때문에.
비닐봉지에 담긴 작은 손 편지들, 머그잔에 들어앉은 먼지 묻은 학교 배지와 수학여행 기념품들. 작은 열쇠고리 인형들, 미니어처로 만들어진 손 보드 장난감, 반질반질한 강 돌멩이, 박스 안에 담긴 지난 내 삶의 흔적 - 10여 년 전 쓰던 핸드폰, 각종 영수증, 심지어 월급명세까지, 혹은 가계부 - 들까지. 온통 자신을 살리기 위한 읍소와 애원으로 통곡의 마당(?)이 되었다.
쓰레기봉투에 버리고 손을 꺼내다 보면 '지금 나를 버리는가' 라며 흐느끼는 것 같아 차마 다시 손을 넣어 꺼내 놓고 다시 보게 된다. 이리 만지고, 저리 쓰다듬으면 이미 그것은 버릴 수 없는 물건이 된다. 예전에 버리지 못했던 것들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버려야겠다는 생각 또한 무모하고 위험하며, 아쉬움이 고인다. 그래서 도로 제자리다.
버려야 할 것들은 쓰다 만 노트와 수첩, 쓸데없는 욕심처럼 꽂혀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말라 버린 펜들의 무리들이었다. 그것마저 버리지 못하면 물러설 곳이 없다. 버려야 할 것과 그러지 말아야 할 것의 구분이 점점 분명해졌다. 추억이 묻어나는 것과 아무런 감흥 없는 것들의 선별이 이루어지면서 큰 쓰레기봉투 배가 불러갔고, 방 안은 단순하고 간결해졌다. 대청소는 지나온 과거의 내 삶을 현재와 연관 짓고 미래로 가기 위해 자신과 벌이는 전쟁 같은 것이다. 그러니 숭고한 작업이다.
구석구석 쌓인 먼지도 쓸어내고, 뜬금없이 궁금했던 잃어버린 것들이 발견되는 소중한 대청소의 시간은 어둠이 내리고서야 끝이 났다. 집안에만 있어도 피곤하고 힘들 수 있다는 것이 코로나 19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서재에서는 앞 동 건물 사이로 시내 전경이 훤히 보인다. 안락의자에 앉아 차 한잔을 마시며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다. 대청소가 지난 내 삶의 추억을 들춰보는 또 다른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옛날에 읽었던 소설이나 에세이도 다시 한번 꺼내 읽어 볼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다. 멈칫멈칫하던 글쓰기도 더 열심히 해야겠지.
다음엔 어디를 손 대볼까? 옷장, 싱크대, 냉장고 등등 거기엔 어떤 나의 과거들이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