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함이나 새로움 또한 사람의 일인자라

by 벽우 김영래

1. 다양함.

노인복지관에 밥 퍼주는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관계자로부터 들었던 말 중에 처음에 이해하지 못했던 말이 "절대로 먼저 밥 푸지 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말이 왜 그런지 깨닫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배식 시간이 가까워오자 술렁거리던 입구에 순식간에 긴 줄이 만들어졌다. 여성의용소방대원들 틈에서 남자가 두 명이었는 내가 담당했던 임무는 힘을 써야 하는 밥 배식이었다. 비슷한 양을 한 주걱씩 푸면 되려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식판을 들고 들어오는 사람마다 주문이 다 달랐다. 많이, 더 , 조금만 더, 너무 많아, 조금 덜어 등등. 다양함과 요구사항의 디테일에 당황했다. 밥 푸는 속도가 느려지자 줄이 줄어드는 속도도 덩달아 느려졌다.

급하면 통한다고 곧 요령을 터득했다. 먼저 차례가 온 사람의 얼굴을 봤다. 눈을 마주치면 느낌이 왔다. 깔끔한 옷차림과 날씬한 외모의 할머니, 얼굴에 근심이 있어 보이거나 아픈 듯 어디 불편해 보이면 '조금만' 이거나 '적게'가 맞았다. 얼굴 표정이 크게 느껴지지 않더라도 수더분하고 좀 통통한 체형의 사람은 많거나 적거나 상관하지 않았고, 체격이 크고 얼굴이 밝은 사람은 '많이'를 원했다. 틀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맞았다.


종이장처럼 얇은 차이를 만지지 않고도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의 감각이나 적응력은 AI나 어떤 기술력으로도 정복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사람 고유영역이다.

종잡을 수 없이 복잡하고 다양해 불가능할 것 같은 감각도 보통의 사람들에게 반복되는 경험으로 쌓이면 정복되고 적응될 수 있다. 모두 사람의 일이기에 그렇다.



2. 새로움.

인사이동으로 부서를 옮겼다. 내 직업에서 경험할 수 있는 예산장비 업무를 제외 한 모든 분야의 업무를 경험했다. 얼마 남지 않은 직장생활에서 그 낯선 업무를 담당하게 되면서 퍼즐이 맞춰졌다. 새로운 재정, 회계 규정을 익혀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다른 업무가 그랬던 것처럼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리라.

출근길이 좀 늘었다. 넉넉잡아 10분이면 도착했던 길을 30분 더 달려야 하는 게 부담이다. 서울이나 대도시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상대적으로 멀게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 다시 가까이 가게 되면 무척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점도 있다. 라디오를 더 오래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중간에 잘라 토막만 듣거나 끝날 무렵에 광고나 마무리 멘트만 들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들을 수 있다. 좋은 게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낯선 사무실에서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 미묘한 차이의 운영 시스템이 느껴진다. 공기도 분위기도 다르다. 업무 시작 전 티타임을 갖고 시작했는데 여기선 아침체조를 하고 각자 업무 준비를 한 후 티타임을 갖는다. 업무 보고의 횟수나 방식, 시간도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적응하는데 문제는 없다. 이제는 지금껏 무심히 지나던 전등과 청사 벽에 떨어지는 빗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창문을 열면 습관처럼 익숙했던 자동차의 소음 대신 새소리와 짙은 녹음으로 둘러싸인 숲 속 풍경. 식사 방법과 차 마시는 시간, 대화의 소재들도 조금씩 다르다. 인사이동 때 가져온 다육화분 몇 개가 크게 위안이 된다. 식물 보는 시간이 길어지면 늙는 거라는데 그걸 보러 가는 걸음이 가볍다.


인사이동은 같은 일의 반복으로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우려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다시 시작하는 긍정의 힘이 될 수 있다.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조직의 시스템도 사람이 만들고 설계한 것이라 사고의 한계가 인간의 범위 내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극복하고 적응할 수 있는 것이다. 불가능할 것 같은 극한의 상황을 설정하는 생존게임에서 조차 살아남는데 유사한 업무임에 말해 무엇하랴.

새로움과 다양함 또한 사람의 일인지라 두려움보다는 긍정의 힘으로 맞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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