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위로란 이런 거야

by 벽우 김영래

세상엔 수많은 흔적과 상처들이 바람처럼 떠돈다. 일억 명이 살고 있으면 일억 개의 바람이 불고, 두 명이 있으면 두 개의 바람이 분다. 내 혼자 있어도 내가 어쩌지 못하는 바람도 분다. 색깔도 냄새도 같은 듯 모두 다르다. 각각 맞고 있는 바람이 다르 듯 각자에게도 맞는 위로가 있다. 불지 않는 바람은 없고, 치유되지 않는 상처는 없다.


난 아주 예민한 감각을 가졌다. 카페인 반응의 민감도만 봐도 알 수 있다. 오후 두서너 시쯤 한잔 마시는 커피 때문에 밤에 잠을 설친다. 커피를 분위기와 향으로 마신다는데 이런 것도 가려야 하다니 야속하다.

밤에 잠을 깨면 쓸데없는 생각들이 밀물처럼 밀려와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이 갑자기 땅 꺼짐처럼 큰일이 되기도 하고, 애써 지우려 하면 반항아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집요해진다. 손톱 밑 보이지 않는 가시처럼 뜨끔뜨끔 아프다. 골똘한 생각이 오해와 이해의 범위를 오간 탓이다. 나중에 돌아보면 참 별 것 아닌데.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하니 남이 보면 스스로 만든 꽤 병 같다 할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는 만남 속에서 사람 수만큼의 다양함을 운전할 때 경험하곤 한다. 운전은 수천 가지의 다른 경우의 수를 만나는 고난한 작업이다. 별별 일들이 게임 타깃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장에 서서 멀쩡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출근길, 난 안 급한 줄 알아. 나도 시간 맞추느라 얘 쓰고 있다고. 달릴 줄 몰라서 안 달리는 게 아니고 앞 차하고 거리를 두려는 건데 어디서 뺨 맞고 온 사람처럼 쌀쌀맞게 좁은 틈으로 훅 들어오는 차. 반대로 급한데 두 차선에서 닮은 듯 나란히 느리게 달리는 차를 만날 때도 있다. 꽁지에 바짝 붙여 위협을 가해 보기도 하지만 내 가슴만 더 쿵덕거린다. 혼자 있을 땐 내 입만 버리면 되는데 옆에 누가 있으면 괜히 잘못도 없이 그 사람 귀까지 더럽힌다. 운전이 사람을 많이 망가뜨린다. 나도 그 속에 살고 있으니 누구를 욕할 처지는 아니다.


술을 못 마시는데 꼭 술을 마셔야 사람인 듯하는 말도 상처다. '남자는 술을 마실 줄 알아야 한다.' 거나 '출세하려면 술을 마시라'하기도 하고, '어제 소주 한 박스를 마셨다'며 자랑이 늘어지기도 한다. 알코올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생겨난걸 난 어떡하라고. 자신과 견주는 강제 비교를 당하고 주문하고 강요받을 때도 있다.

꼭 그런 경우만도 있는 것도 아닌데, 때론 무능함이기도 한데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주류가 사회의 주류를 만들고 끌어가는 듯한 느낌 사로잡혀 비주류로서 소외되고 끌려가는 느낌을 지우지 못해 스스로 슬퍼하기도 한다.


내겐 사람 때문에 뾰족해진 감각을 무디게 뭉게 주는 독서와 글쓰기가 최고의 위로다. 좋은 문장을 읽고, 따라 써 보고, 잘 쓴 글을 흉내 내 듯 내 글을 쓰다 보면 다 잊는다. 어쩌다 맘에 쏙 드는 한 줄 표현을 얻어내 흥분하고 기쁜 나머지 카페인 듬뿍 담긴 오후의 커피 한 잔마저 기특하게 내 몸이 거뜬히 이겨줄 때. 내가 긁은 상처를 엑스맨의 울버린 로건처럼 스스로 불사의 치유능력을 발휘하는 초능력을 느낄 때. 잠깐 짬을 내 뜨거운 햇살을 자랑스레 맞으며 얼굴 발갛게 영근 잎을 자랑하듯 씩씩한 다육이를 볼 때. 큰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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