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체조시간에 허리를 굽혔다 펴며 무심히 올려단 본 하늘이 감동적이었다. 흰 구름이 덧칠해진 그림 같은 파란 하늘. 깊이가 느껴지는 맑고 깨끗함. 올려다보는 데도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 동작을 멈추고 눈을 떼지 않고 한참을 봤다.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 만해 한용운의 <알 수 없어요>
정말 시인의 표현처럼 며칠 내내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며 비를 쏟더니 구름 걷힌 하늘이 잠깐씩 보일 때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보였다. 매일 보았더라면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겠지. 지친 일상에 기분 좋아지라고 친구들에게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더니 너도나도 하늘 사진을 한 장씩 올렸다. 인도에 있는 친구는 인도 하늘을, 베트남에 있는 친구는 베트남 하늘을, 서울에 있는 친구는 한강 풍경이 근사한 하늘을.
그러고 보니 내가 보고 있는 하늘은 나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친구들은 내가 보지 못하는 다른 하늘의 한 귀퉁이를 다른 풍경과 어우러진 같은 하늘을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햇살이 비켜가는 노을 지는 하늘과 먹구름의 어두운 그림자 사이로 밝게 빛나는 하늘. 비에 씻겨 땟구정물 쏙 빠져버린 듯 깨끗하게 표백된 구름과 어우러진 하늘. 제각각의 얼굴처럼 하고 있는 하늘이 본래는 같은 모양인 것이다.
지금은 서로 다른 땅을 딛고 서 있는 친구들이 사는 모습은 제각각일지언정 예전의 어느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공유할 수 있는 많은 추억들이 있다. 하늘 얘기를 하다 문득 그들이 많이 보고 싶어 졌다.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본다. 남학.유택.태일. 언제쯤 다시 만나 얼굴 보고 얘기할 수 있을까. 코로나도 가고 삶의 짐을 좀 덜 수 있는 시간이 오면 그때쯤 같은 곳에서 같은 하늘을 보며 이야기 나눌 수 있겠지. 그때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