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갇히다

첫눈 오는 날 문고리 한 번 안 잡았다

by 벽우 김영래

일요일 아침 첫눈이 펑펑 내렸다. 9층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는 주차창은 금세 은세계로 변해갔다. 땅의 높낮이가 잘 드러나지 않는 데다 주차 차량이 무덤처럼 두리뭉실한 언덕을 만들었다.

뉴스에서는 코로나 발현 이후 최대 1천 명을 넘겼다며, 심각한 우려와 함께 집에 머물 것을 연신 당부하는 소식을 전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은 자발성이냐? 강제성이냐? 하는 두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스스로 고립을 선택해서 가만히 있는 것이고 하나는 강제로 감금되는 것이다. 두 가지 경우가 결과는 동일하지만 마음으로 느끼는 상태는 천양지차다. 감옥과 같이 외부에서 잠겨있는 상황은 굉장한 공포감과 갑갑함, 폐쇄성으로 인한 압박감이 작용한다. 자발성은 언제든 문을 열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편안한 느낌이 더 강하다.

그렇더라도 지금과 같은 감염병의 전파가 심각히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반강제성의 심리적 압박감이 없지 않다. 특히 10만 조금 넘는 작은 도시에서 서울보다 높은 감염률은 감금과 같은 공포감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더구나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이라 개인 신상이 낱낱이 알려지는 것 또한 큰 부담이다.


습기를 머금은 첫눈이 만들어내는 겨울 경치를 꽤 오랜만에 본 느낌이다. 최근의 사진에서도 봄이나 가을 풍경은 많이 담았어도 겨울은 몇 장 없다. 왜 그랬을까? 추워서 호주머니 손이 밖으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해서 그랬나 보다.

아침은 어제저녁 집에 들어올 때 사온 식빵과 과일 그리고 커피 한 잔으로 해결했다. 근사한 호텔은 아니지만 조식은 아메리칸 스타일로 시작했다. 잠깐 창문을 열어 내리는 눈을 감상했다. 건조한 갈색 풍경에서 순식간에 은세계로 변했다. 추위만으로는 뭔가 빠진 듯 허전한 풍경에 비로소 퍼즐이 맞춰지 듯 완성되는 겨울을 지켜보았다.

창문을 닫고 이번에는 소파에 편한 자세로 기대어 넷플릭스를 열었다. 요즘 좀 오래된 영화를 다시 보는 재미에 빠졌다. 며칠 전에는 '가을의 전설'과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봤고, 오늘은 '8월의 크리스마스'를 봤다. 애틋한 사랑과 인간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는 시공을 초월한다. 이런 주제는 인류의 영원한 스토리 샘물이다.

나는 사이버 게임 같은 너무 엉뚱한 설정이나 좀비 같은 공포물은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감도 없지만 혹시라도 그런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싫고, 사실적인 파괴와 폭력이 직접적이고 세밀하게 표현되는 장면들도 상상력을 지운다.


점심은 과자 몇 조각으로 때웠다. 때웠다는 말은 맛과 영양의 의미와는 거리가 먼 공복을 채우는 활동에 다름 아니다. 활동이 없으니 식욕이 생기지 않음은 당연하다. 요즘은 아파트 정문에 배달 오토바이가 줄을 선다. 미끄러운 길을 달려올 라이더들의 고단함과 메뚜기도 한 철이라고 어려운 때 소상공인과 배달 젊은이들의 넘치는 일감으로 행복한 비명 사이에서 잠깐 고민하다가 냉장고 열었다. 가을에 사서 얼궈 둔 옥수수를 데워 먹었고 드디어 시작하는 프로배구를 시청했다.

TV 시청의 백미는 '세계 테마여행'이다. 코로나 이후 방송국에서도 새로운 촬영을 못했는지 몇 번씩 방영했던 것들이 되풀이되고 있지만 볼 때마다 새롭고 흥미롭다. 중국의 산들과 사막, 동남아시아 유럽의 골목길 등등 내가 상상하는 곳들을 찾아가는 여행 프로그램이다. 이번 주엔 '당신이 꿈꾸는 아프리카'였다. 마다가스카르의 살아있는 화석 바오바브나무와 칭기의 국립공원 등등 내가 엄두도 낼 수 없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줬다. 대리 여행의 만족도가 이렇게 높은 프로그램이 다시는 없을 듯하다. 일주일 방송분이 주말에 한꺼번에 쏟아진다. 이건 필시 코로나가 준 선물이다.


눈이 솔아서 사각사각하는 소리를 내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리는 듯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겨울밤이 깊어가고 있다. 이불 밖이 위험해 따뜻한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밖으로 나가는 문고리를 한 번도 잡지 않고 하루를 보냈다.

이렇게 고립된 삶이 보건소, 병원 선별 진료소 앞 길게 늘어선 검사 대기줄 앞에서 얼고 붓고 끊어질 듯 아픈 다리로 하루 종일 버텨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노고가 새삼 고마워지는 밤.

저 오늘 하루 종일 집에서 보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손바닥 소설) 낮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