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점심식사 러브콜이 시작되었다. 이삼일 간격으로 점식식사를 내는 이재천 씨에게 탁구장 사람들이 슬슬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일부러 시간을 피해나가기도 하고 약속을 핑계로 빠지기도 했다. 얻어먹는 것도 어쩌다 한 번이지 언젠가는 다시 갚아야 할 빚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와 친한 몇몇 사람들은 속사정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그런 제안을 사람들에게 알리려 노력했고,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기분 좋게 먹어주는 게 낫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하곤 했다.
올해 초 어느 날인가 문득 오전 회원들이 한 20여 명 남짓 있는데 자신이 점심을 살 테니 모두 가자고 소리를 쳤다.
“재천 오라버니 멋져요!”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탁구장은 주로 오전, 오후반으로 나눠 운영되고 있는데 9시 반쯤 되면 많은 회원들로 가득 찼다가 12시가 되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재천 씨는 교직에서 퇴직한 지 8년 동안 줄곧 이곳에서 운동을 했다. 키가 일 미터 팔십 센티에 몸무게도 구십 킬로가 넘는 데다 얼굴선도 굵고 우락부락하게 생겼다. 이마와 목에 주름이 진해 그의 나이를 짐작하게 했지만 얼핏 보기에는 50대 후반의 나이로 밖에 안보였다. 목에 굵다란 금목걸이를 하고 있어 탁구 칠 때 치렁치렁했다. 전력을 모르는 사람은 첫인상에서 뒷골목을 누볐던 조폭을 떠올릴 만한 그런 외모였다. 하지만 그는 체육교사로 평생을 살았다. 그의 제자들의 말에 의하면 외모에 비해 성격이 부드럽고 어려운 학생들을 잘 챙기는 존경받는 선생이었다고 했다. 체육선생이었으니 운동신경도 좋아 탁구 실력도 톱클래스에 속했다. 젊은 사람들의 도전을 기술과 노련미로 제압했으며 시 대회에 출전하면 항상 상위권에 입상을 했다.
점심시간까지 한 20여분 남아 있어 회원들이 마지막 피치를 올리며 탁구 삼매경에 빠져있을 때 그의 한 마디는 충분히 환호를 받을 만큼 주위를 집중시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것 같았으나 삼삼오오 몇몇 그룹이 빠져나갔다. 그와 친하게 지내며 함께 하는 그룹의 멤버들인 송 탁, 철 탁, 심 탁, 장 탁, 그리고 김 탁만 남았다. 성이 다 달라 뒤에 탁구의 탁자를 붙여 부르는데 이철수 씨만 성에다 탁자를 붙이지 않고 가운데 이름자에다 탁자를 붙여 '철탁'이라 불렀다. 그는 나이가 예순다섯에 작고 호리호리한 체격임에도 유연성이 없어 뻣뻣하게 로봇처럼 움직이며 운동하는 습관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여름을 사수하려는 듯 햇살이 뜨겁게 아스팔트를 달구고 있었다. 가을 햇살이 보름째 쨍쨍 내리쬐고 있었다. 맞으면 화살이 박히는 것처럼 아플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올해는 대풍년이 될 거라고 사람들이 말했다. 간간히 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비가 왔다는 흔적이나 느낌을 느끼기엔 햇살이 너무 강했다. 진짜 가을이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아침과 낮 기온이 10도 이상 차이가 났다.
차 두 대에 나눠 타고 막 출발하려는 때 김복순 씨와 여은심 그리고 노숙자 씨가 탁구장 옆 회관 건물에서 나오고 있었다. 화장실을 갔다 오는 모양이었다. 그는 출발하려는 차를 세웠다.
"어이! 미녀 삼총사. 점심 먹으러가."하고 그가 그녀들에게 말을 건넸다. 그녀들은 항상 붙어 다녔고, 탁구장을 나오지 않을 땐 단체로 결석을 했다. 운동할 때도 실력 좋은 여은심 씨가 하수를 하나 골라 넷이서 복식 경기만 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남편들과 모두 사별하고 혼자라는 점이었다.
"오라버니가 사줄 거야?" 여은심 씨가 웃으며 대꾸를 했다.
"아까 내가 사준다고 했잖아. 뒷자리 비워 놨으니까 타셔."
잠깐 망설이는 듯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뒷자리에 올라앉았다.
탁구장에서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원장 순대는 재래시장 옆에 있었다. 그가 2층짜리 건물을 살 때만 해도 그곳은 이 도시에서 그래도 꽤 괜찮은 상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금세 퇴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는 원장 순대에서 세를 받고 있는 건물주였지만 월세를 받기가 미안해 스스로 손님이 되고,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식사를 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한 데는 지난해 아내가 암으로 죽고 나서부터였다. 시장에서 채소장사를 하던 아내는 그가 퇴직하면서 장사를 그만두고 여행이나 다니면서 편하게 살자고 했는데 집에서 놀면 더 빨리 늙는다며 몇 년 더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다 병이 들었고, 4년여를 병원 신세만 지다가 결국 돈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그때 큰 충격을 받았다. 사는 모든 것들의 의미가 햇볕에 색 바래듯 뿌옇고 흐릿했으며, 허무하게 느껴졌다. 우울증이 와서 두문불출하며 아무것도 안 하고 술만 마시며 폐인처럼 일 년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 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모든 것을 다 풀어놓으리라 맘을 먹고.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점심때가 되었는데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미리 연락을 받은 주인이 일행을 맞았다. 식탁 두 개에 전골냄비 음식이 올려져 끊고 있었다. 이재천 씨가 상 머리에 앉았고, 탁돌이들이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다른 상에 할머니 삼총사와 술을 안 하는 송 탁이 앉았다. 운전을 하는 송탁하고 김복순 씨를 빼고 모두에게 소주를 한 잔씩 돌렸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밤새는 줄 모른다고 김복순 씨가 제일 늦게 탁구를 배웠지만 제일 열정적이었다.
“탁구 치는 재미가 하루를 못가. 오늘 이렇게 재미나게 웃고 떠들며 운동했으면 한 일주일은 가야 하는데 낼 아침 가면 또 치고 싶어 지는걸 뭐.. 오라버니들은 안 그래요. 하하하”
하고 김복순이 유쾌하게 웃었다. 탁구 치는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탁구 얘기만 하고, 배드민턴 치는 사람들은 배드민턴 얘기만 한다. 음식을 다 먹도록 소주가 두서너 병 비워지고, 좋아하는 탁구 얘기로 분위기가 한껏 들떴다. 그때 여은심 씨가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보더니 키득거렸다. 평소 말수가 없던 송 탁이 한마디 했다.
“갑자기 미쳤나 왜 저런데”
평소 말이 없던 사람이 한 마디 하니 식당엔 웃음이 한가득 터졌다. 여은심 씨가 변기에 돈이 빠지면 일어나는 일들이라며 카톡에 올라온 글을 읽었다.
“십 원짜리가 빠지면 수수방관, 오백 원짜리가 빠지면 자포자기, 천 원짜리가 빠지면 우왕좌왕, 오천 원짜리가 빠지면 안절부절, 만 원짜리가 빠지면 이판사판, 오만 원짜리가 빠지면 입수 준비, 십만 원짜리가 빠지면 사생결단, 백만 원짜리가 빠지면 뽀사삔다, 그렇다면 변기에 신랑이 빠지면? 뭘까요? ” 하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웃음이 터져 감정을 절제하기 어려웠는지 숨을 크게 쉬었다. 이내 다른 사람의 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입으로 답을 해버렸다.
"흐흐흐....... 물 내린데.” 하고는 참던 웃음을 터트렸다. 또 한 바탕 봄꽃 같은 웃음이 터졌다.
술이 두어 잔씩 더 돌고 커피까지 마시고 나니 거의 한 시 반이 다되었다. 이제 오후반의 운동이 시작될 시간이 되었다.
“백만 원짜리 보다도 못한 남자가 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운동해야지. 그만 가세."
그가 일어나며 말했다. '변기에 빠지면 물이라도 내릴 마누라라도 있으면 좋겠네.' 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여은심 씨가 그의 중얼거림을 얼핏 들었다. 몇몇이 가볍게 웃었지만 분위기는 물속처럼 무거웠다. 신발을 신다 비틀거리며 중심을 잃은 그를 여은심이 손을 내밀어 잡았다. 거리엔 여전히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는 낮술 한 잔으로 얼굴이 빨갛게 변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