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소설> 과수원 길

고단했던 삶이 동화처럼 유쾌한 한바탕 추억이었으면....

by 벽우 김영래

김팔수는 옆집 이응노가 울타리 근처에서 쓰레기 태우는 것이 늘 못마땅했는데 급기야 일이 터지고 말았다. 바람이 불면서 사과 창고 지붕으로 불길이 옮겨 붙은 것이다.

김팔수는 방에서 매캐한 연기 냄새를 맡고 뭔가 이상해서 나왔더니 사과 창고 지붕에서 꾸역꾸역 회색빛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맨 발로 뛰쳐나왔지만 뭘 어찌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맘속에서는 이미 불이 훨훨 타고 있었다. 손이 떨려 119에 신고도 제대로 못했다. 신고를 잘못했는지 기다리는 소방차는 오지 않았다. 주변엔 불을 끌 수 있을만한 것이 없었다. 물을 떠 오기에는 멀었고, 떠온다 한들 지붕까지 뿌릴 수도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다시 119를 눌러보았지만 되돌아오는 대답은 소방차 곧 도착한다는 말 뿐이었다. 일각이 여삼추라는 말이 실감 났다. 불꽃이 보이지 않았지만 더 많은 연기가 꾸역꾸역 올라왔다. 한 시간은 기다린 것 같았다. 멀리서 이명 소리 같은 소방차 사이렌이 들렸다. 아득했다.


지난가을 김팔수는 과수원에서 일하다 마누라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밤낮으로 사과를 따느라 애를 먹었다. 날이 좋아 사과 풍년이 들었다. 풍년이 들 땐 차라리 사과가 안 달리는 게 낫다. 팔아봐야 인건비도 제대로 안 나온다. 반대로 흉년이 들 때 남들보다 좋은 사과를 따야 돈이 되는데 그땐 또 같이 흉년이 된다. 매년 반복되는 농사 패턴에서 한 두 번 걸리는 운 좋은 해도 있었다. 어느 한 해는 사과 꽃이 필 때 전국적으로 우박이 내려 거의 농사를 포기 상태가 되었는데 김팔수네 동네 과수원들은 멀쩡했다. 멀쩡한 정도가 아니라 풍년이 들었다. 그때는 밤새 사과나무에 매달려 있어도 힘이 들지 않았었다.

지금은 그런 요행이 있어도 칠순이 넘는 나이에 나무 밑에 가는 것도 힘에 부칠 지경이었다. 그냥 해오던 일이니 내버리지 못해 밥이라도 먹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이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한 달은 입원했다 퇴원한 마누라는 겨우내 방구석에서 병과 씨름하며 보냈으니 봄이 되었어도 과수원 일을 하기엔 이제 영 글렀다. 미안해하며 뭘 자꾸 해보려고 애를 쓰는 걸 보고 있자니 더 울화가 치밀었다. 변변찮은 식당을 하는 아들에게 그만 때려치우고 와서 농사를 지으라고 해도 절대 농사를 짓지 않겠다며 들은 체도 안 했다.

얼마 전 어버이날도 전화만 하곤 집에 내려오지 않은 걸로 봐서 아들에게도 뭔가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아마도 운영하는 식당의 벌이가 좋지 않은 데다 건물주가 세를 올려달라고 했단 얘기를 들었다. 과수원을 팔았으면 하고 바라는 듯한 아들의 마음을 김팔수가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것마저 털어먹으면 이응노 꼴이 난다는 것을 훤히 알 수 있어서 얘기도 못 꺼내도록 틀어막았다. 그것만을 노부부가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었다..

이응노도 마누라가 죽고 나서 아들 사업 밑천 대준다고 땅 좋은 과수원을 몽땅 처분해서 다 줘버렸는데 사업이 망했고, 지금은 동남아 어디로 도망을 가서 연락도 끊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에게 남은 건 지금 살고 있는 집 한 채가 전부가 되어 버렸다. 공식적으로 아들이 있어서 생활보호 대상자에 포함도 안돼 생활이 어렵다. 그래도 면사무소에서 봉사단체를 연결해줘 가끔은 생필품이나 쌀 등을 지원받아서 연명을 하고 있다.

김팔수는 이응노 생각을 하면서 가끔 머리를 가로젓곤 했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아들 생각대로 과수원을 팔아 아들 내외의 식당 운영 자금을 댄다면 똑같아질게 뻔했다. 언젠가 아들한테 차라리 도시생활을 접고 내려와서 과수원에서 사과농사를 지으라고 권하기도 했다. 아들은 전혀 생각이 없진 않았지만 며느리는 그럴 생각이 꿈에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옛날 낡은 건물에 냉동고를 들여놓으면서 지붕에 열 차단을 위해 뿌려놓은 왕겨에 불이 붙어 연기를 내며 타고 있었다. 훈소형태로 타고 있다가 산소가 유입되면 한 순간에 불길이 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작년 가을에 값이 싸서 팔지 않고 보관하던 백 여 박스의 사과들이 모두 잿더미가 될 지경이 이르렀다. 김팔수는 한 박스라도 건져 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금방 숨이 턱에 차올라 창고 앞에 쓰러지고 말았다.

다행스럽게 불꽃이 번지기 전에 소방차가 도착해서 지붕 윗부분을 뜯고 물을 뿌렸고, 왕겨를 끄집어 내려서 큰 피해가 나지 않았다. 냉동고 한쪽이 그을리고 전기 배선이 좀 상했어도 그만하길 천만다행이었다. 김팔수도 소방대원들의 부축을 받아 안전한 곳으로 옮겨서 진정이 되었다. 몸이 성치 않은 김팔수 마누라가 한쪽 다리를 약간 절면서 쟁반에 커피를 타 가지고 나왔다. 소방대원들은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복장을 풀어헤치고 땀을 닦으며 커피를 한 잔씩 받아 마셨다. 김팔수는 길게 숨을 내쉬며 비료포대에다 사과를 손에 잡히는 대로 한 반 정도를 담아서 소방차에 실어 줬다.

과수원 길을 따라 마을 어귀로 내려가는 소방차가 모습을 감추자 가슴 한 곳에서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내 이누무 인간을 가만 두나 봐라.”하곤 이내 발걸음을 총총 옮겨 이응노에게로 득달같이 갔다. 새마을 운동 시절 지은 불란서 주택은 이미 당시의 영화를 잃어버린 채 초가집보다도 못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야 이응노 이 인간아 좀 나와봐. 불을 냈으면 나와 보기라도 해야 할 거 아녀”

사실 이응노는 김팔수 보다 한 살이 위였지만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다. 그런데다 가세가 기울면서 김팔수의 기세에 눌려 늘 풀이 죽어지냈다.

방안에 인기척이 없었다. 마루를 막고 있는 미닫이 문을 드르륵하고 열어젖혔는데도 인기척이 없어 어디 나갔나 하고 그냥 돌아설까 하다가 반장화를 벗고 방으로 들어갔다. 느낌이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만 같았다. 이응노가 이불 위에 쓰러져 있었다.

김팔수는 잠깐 동안 어찌할 바를 몰라 그를 흔들었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혹시 죽은 것 아닐까 겁이 났다. 얼굴을 가까이 대고 보니 가슴이 약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손을 비롯해 온 몸이 그을음으로 새까맣게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김팔수는 그가 왜 이 모양이 됐는지 짐작이 갔다. 그냥 놔두면 그대로 죽을 것 같았다. 김팔수는 다시 119구급차를 요청했다. 잠시 후 현장에 왔던 구급차가 이응노를 싣고 병원으로 갔다. 보호자가 없어서 김팔수가 동승을 했다. 응급처치를 하던 구급대원이 위험한 상황은 아니고 좀 놀란 것 같다고 말해 주었다.

구급차가 얼마쯤 달리는 중간에 그가 의식을 되찾았다. 희미한 정신만큼이나 목소리도 흐릿하게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평상시에도 그는 술을 마시고 취할 때면 ‘노아’를 쉼 없이 불렀다.

김팔수는 이응노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괜찮다는 표시를 그렇게 했다. 손은 아직 따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방관 한 명이 과수원을 찾아왔다. 지난번에 준 사과가 맛있다고 직원들이 사고 싶다는 것이었다. 소문이 나서 읍사무소에서도 사과를 사겠다고 연락이 왔다. 작년 가을에 사과 농사가 대풍이 되는 바람에 값이 싸서 봄에 내놓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찮게 기회가 행운처럼 찾아왔다.

가을에 파는 가격보다 박스당 만원은 더 받고 팔 수 있었다. 그나마도 더 달라고 하는 주문이 많았지만 금방 동이 났다. 서너 박스는 남겨놓았다. 이응노에게 한 박스 주고, 나머지는 소방대원들에게 들고 갈 계획이었다. 돈 몇 백만 원을 손에 쥔 김팔수는 세상 일 참 알 수 없다는 듯 마루에 앉아 집 앞으로 난 과수원 길과 멀리 마을 풍경을 내려다보며 길게 한 숨을 내쉬었다. 자기가 살았던 고단했던 삶이 동화처럼 유쾌한 한바탕 추억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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