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을 넘어 동해 바다로
일요일 아침 부스스 눈을 떠 시간 확인한 후 이불을 뒤집어썼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아홉 시가 넘었다. '많이 잤는데도 겨우 아홉 시 밖에 안됐어.'라는 짧은 탁식이 나왔다.
쉽게 오지 않는 다섯 번째 주말. 우리 부부에게는 잉여의 일요일이었다. 첫째, 셋째 주 일요일은 시장이 쉬는 날이라 처갓집에, 그 사이사이는 부모님 댁에 다녀와야 했다. 단순한 수학 공식 같은 일들이 알게 모르게 정착되어서 이 순환의 고리를 깨는 일은 사건처럼 여겨져 쉽지 않다.
3월의 마지막 날인데도 어젯밤부터 눈, 비에 바람까지 불어 하루 종일 어두컴컴했다. 창을 열었을 때는 한 겨울 같은 추위가 몰려들었다.
"어디라도 달려 볼까?"
차비를 마치고 10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했다. 어디라고 정하지 않았지만 목적지가 바다였으면 하는 마음은 둘이 다 같았다. 일상을 벗어나는 느낌이 강한 곳은 쉽게 접하지 못하는 곳이어야 했고, 책상이나 집 같은 좁은 공간이 아니라 넓고 탁 트인 곳이면 좋았다. 달리기엔 고속도로가 제격이지만 풍경은 국도가 더 좋아 후자를 선택했다. 영월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엔 단종제를 알리는 광고판이 진눈깨비를 맞으며 마치 눈물을 흘리는 듯 서 있었고,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산등성이는 백설을 이고 있어 마치 알프스의 설산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태백 준령 아래는 안개와 눈과 비가 뒤섞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차 창 밖의 축축한 풍경은 차 안의 메마른 공기를 더욱 안락하게 만들었고, 손은 따뜻하고 보송보송해져 기분 좋았다.
시간은 봄이었지만 계절은 산맥에 가로막혀 아직 겨울이 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국도를 달릴 때는 풍경에 주목해야 한다. 유리창에 부딪치는 바람에서부터 꼬불꼬불한 길을 돌면서 보이는 높거나 낮은 집들과 저 멀리 골짜기에 홀로 떨어져 자연인처럼 사는 사람들, 깃발처럼 펄럭이는 안마당의 빨래와 허물어져가는 담장을 버티고 있는 녹슨 철대문, 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노인의 무표정, 비가 샐 것 같은 너와지붕의 초라함과 동네 어귀에 자리 잡은 거대한 은행나무의 침묵도 풍경으로 스쳐갔다. 단순함과 새로움, 지루함과 낯 섬이 뫼비우스 띠처럼 반복되었다.
산맥을 넘어서는 순간 반복 속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두문동재와 싸리재를 넘어 동해로 들어가니 그곳엔 터줏대감처럼 봄이 자리 잡고 꽃놀이를 하고 있었다. 만화방창이 이런 것이라고 알려주듯 개나리 벚꽃은 물론이고 나뭇가지 끝 새순들이 연두 연두하고 있었다. 방금 두서너 개 재를 넘어왔을 뿐인데 겨울은 오간데 없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았지만 목적지는 있었다. 동해 바다 전체를 볼 수 없기에 어딘가에 닿아야 한다면 추암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연찮게 만나는 풍경이 달리는 여정을 한껏 즐겁게 했다. 빨간 신호등에 쫓길 일도 없었다. 터널이 풍경을 가로막으면 또다시 나타나는 풍경을 기대하는 너그러움이 생겼다.
터널을 나가기 전 보이는 여명이 미래처럼 봄의 시간으로 닿아 있었다. 시간은 봄이었고, 계절은 겨울인 듯했던 추측은 틀렸다. 어느새 시간도 계절도 모두 봄이었고, 바다도 바람에 출렁이는 힘찬 봄 바다였다. 바다가 특별할 건 없었다. 바다는 언제나 그렇듯 그 자리에서 크고, 넓고, 그리고 술에 취한 듯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는 해변을 걸었고,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어떤 때는 기세 좋게 달려왔고, 때론 풀 죽은 모양으로 힘없이 오기도 했다.
오징어를 구워 파는 아주머니의 추천으로 근처 유채꽃 축제장으로 갔지만 너무 많은 차와 사람들로 인해 내릴 생각도 않고 스치는 풍경조차 외면하고 지나쳤다. 남쪽으로 달리다 임원, 수로부인 헌화 공원 이정표가 보여 무작정 핸들을 돌렸다. 한가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징검다리를 건너 수산시장을 둘러보며 공원 찾았지만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관광안내 이정표에도 없었다. 역사와 설화가 어우러진 <헌화가>의 공원이 이곳이었는가 하는 추측만 하고 다시 길에 달렸다.
길은 포항과 영덕으로 이어졌고, 남으로 달릴수록 계절은 점점 더 봄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길은 영덕에서 고속도로를 오르는 수밖에 없었다. 어둠이 내릴 때까지 달릴 작정이었다. 후포에 닿아서 스카이워크에 올라갔다. 밑에서 올려다보는 풍경이 낭만적이었지만 위에서 내려보는 공포는 낭만과는 너무나도 다른 것이었다. 50미터 높이였지만 푸른 파도 위를 걷는 무서움에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내는 두려움 없이 투명 유리판을 저벅저벅 걸어갔다. 뒤로 돌아서 오다가 차마 그냥 올 수 없어 난간을 붙잡고 저 멀리 바라보며 간신히 도착한 후 스릴을 느낄 새도 없이 보채는 아이처럼 손을 잡고 잰걸음으로 되돌아 나왔다. 공포영화도 그렇고 아슬아슬하고 짜릿하다는 액티비티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을 내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괴팍스럽다고 할까 새롭고, 남이 하지 않는 것들을 찾아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나는 언제쯤 헤아릴 수 있을까. 밑에서 다시 올려다보며 땅에 발 딛고 사는 행복을 새삼 느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동에서 서로 달리는 차 안에서 저 멀리 엷고 진하게 산 능선이 만들어내는 포근한 풍경 너머로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낯선 시간과 공간을 이해하느라 하루를 엿가락처럼 길게 늘여준 몸도 피곤해지고 있었다.
봄날. 계절과 공간을 넘나 든 하루로 행복했다. 봄을 달려 색을 찾는 여행이 춘곤증 같은 일상의 권태를 날려 버렸다. 분명 내일은 지난 시간보다 조금 더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