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무채색의 잿빛 지붕이 고요하게 신록에 내려앉아 고즈넉한 수채화 풍경 같고, 오가는 이 없는 한적한 마당의 늦은 아침에 울리는 6월의 먼 산의 뻐꾸기 소리는 한가로움을 넘어 외롭기까지 하다. 숲에서 들리는 꿩의 울음소리는 언제쯤 달아날까 궁금했다. 모든 것이 슬로모션 같다. 그런데 행복하다.
서석지 마당엔 인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방문화재로 관리되고, 주말이고 나름 관광 진데 주차비나 입장료를 받아야 하는 관리인 하나 없었다. 보잘것없는 곳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비바람에 씻긴 흙돌담 위에 기와를 얹은 울타리 너머로 우람한 은행나무가 언제나 올까 하는 기다림에 지친 듯 가지를 늘어뜨리고 바람에 살랑이는 잎새만 유일하게 움직이는 풍경이라.
하지만 이 고요함에 특별한 반전이 있었다.
‘우연’이라는 말은 계획도 없고 기대도 없이 마주하게 되었을 때 쓰는 말이라면 아마도 서석지를 찾은 게 지금 나에게 해당되는 말인 듯하다. '우연'이라는 말 뒤에는 풍기는 뉘앙스로 봐서 '황당'이나 '당황'등의 말들이 붙어야 할 것지 않은가. 하지만 그 반대였다. 우연찮게 만나 서석지에 대한 나의 감정은 은밀하게 신비롭고 한가로운 기쁨이었다.
경북 영양에 위치한 두들마을에서 한옥체험을 하기 위해 친구와 둘이 갔다. 사전 계획을 해서 간 것은 아니었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는 것이 일인 친구가 마침 그곳에 갈 일이 생겨 내게 전화를 걸어왔고, 마침 휴무라 내가 동행하게 된 것이다. 7-80십 년대 읍내처럼 초라해 보이는 작은 상가들 뒤로 언덕을 올라서자 한옥촌이 나타났다. 한옥 민박을 운영하시는 분은 할아버지셨고, 다른 손님들은 없는 듯했다.
세시가 좀 넘은 어중간한 시간이어서 마땅히 갈 곳을 찾지 못해 할아버지에게 물었더니 능숙한 솜씨로 관광지도를 꺼내어 몇 곳을 짚어 주었다. 만덕송, 서석지, 조지훈문학관 그리고 식당들까지.
해질 무렵 만덕송을 찾아 산 중턱을 오르고 나니 다섯 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서석지와 조지훈문학관은 다음날 둘러보기로 하고 한옥마을 주변을 산책했다. 맞배지붕과 팔각지붕의 처마들이 울멍 줄 멍 느리게 올라가 하늘을 받쳤고, 뒷마당 안마당이 발끝만 들면 보이도록 담장 키가 낮았다. 비바람에 좀 씻긴 듯 색이 바랜 풍경들이 오랜만에 외갓집에 놀러 온 듯 맘이 포근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시골에선 하늘밖에 볼 일이 없었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문창호지가 가른 안과 밖의 경계가 얇아서 안에 있어도 밖인 듯 작은 벌레 소리들도 가까이 들렸다. 어렸을 적엔 다 그렇게 살았으니까.
창호지로 새벽의 희뿌연 기운이 들어와 일찍 잠을 깨웠다. 친구도 뒤척이는 본새가 이미 깬 듯했지만 일어나지 않고 등을 보이며 돌아누웠다. 네모로 만들어진 안채 마당 처마에서 울어대는 제비의 재잘거림과 문 밖 목단 나무 위로 불쑥 솟은 큰 향나무 아래서 짹짹거리는 솔새, 박새들의 울음소리에 고택은 벌써 잠에서 깨어 있었다.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합창처럼 들리는 여러 새소리를 적어 보았다. 처음엔 쉽게 적을 것 같더니 막상 글로 쓰려니 이렇게, 저렇게 들려 점점 아리송해져 갔다.
"스왈 스왈 촤르르, 짹짹 초르르, 짹짹짹, 소쩌어~억, 뻐꾸욱~, 꿔어~엉"
이부자리 정리하고 안채에 들러 할아버지께 인사하고 일찍 집을 나섰다. 관광지도에 나온 주요 지점을 돌아보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강가에 위치한 국보 봉감모전 오층 석탑은 수리 중이어서 볼 수는 없었고, 선바위관광지를 돌아 조금 들어가니 서석지가 나왔다.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휑한 마당을 보였다. 밖에서 바라볼 때는 나무와 담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우뚝한 은행나무가 담 밖으로 무심한 세월을 넘어보고 있는 정도였다. 서쪽으로 난 조그만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니 아담한 정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바로 반전이 거기에 있었다.
경정이라는 정자 앞에 마당은 없고 작은 연못이 있었다. 팔작지붕의 끝이 살짝 올라간 처마와 빛바랜 갈색 나무기둥에서 풍기는 천년의 세월이 은은하게 향기로 왔다. 마루에 올라서 옛 친구를 만난 듯 기둥을 껴안고 향기에 취했다. 침침하면서도 엷은 갈색으로 비와 먼지와 각종 세월의 때들이 뒤섞여 풍겨 나와 고풍스러움을 더했다.
마루 앞쪽에 점잖게 올라앉은 햇볕을 깔고 앉았다. 눈 앞에 펼쳐진 작은 정원이 더 멋스럽게 느껴졌다. 북쪽으로 만들어진 사우단(四友壇)엔 작은 소나무가 기품 있게 푸르름을 뽐내고, 대나무 잎새가 화선지의 그림처럼 운치 있게 빗겨 있었다. 물이 들어오는 읍청거(挹淸渠) 쪽에는 바위 위로 돌단풍이 운치 있게 달라붙어 있었다. 물이 나가는 토예거(吐穢渠) 에는 연꽃과 위로는 주먹만 한 불두화가 피여 있었다. 초록이 무성한 이 풍경이 움직임이 없어 마치 묵화처럼 느껴졌다.
경정(敬亭)에서 풍기는 고택의 향기를 숭상하듯 자신의 향기는 큰 이파리에 감춘 고고한 불두화 흰 꽃송이가 담을 타고 넘어오는 바람에 꽃잎을 눈송이처럼 떨구어 수북하게 쌓였다. 경정(敬亭)과 불두화가 만든 조화와 겸손이 기품을 더했다.
어른 팔로 서너 아름은 됨직한 은행나무가 좌 우로 가지를 뻗고 있는데 너무 무겁고 길어 쇠로 받쳐놓았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처럼 힘들게 버티고 있는 모습이지만 마디마디 새롭게 돋아난 잎새만큼은 아직 강건한 청년의 푸른 옷을 입고 있다.
햇살과 풍경이 어우러져 그윽하고 그윽했다.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니 세상만사 시름이 다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평온해졌다. 거대하고 위엄 있는 관광지의 신비 따윈 없었다. 온통 평온하고 아늑하고 한가로웠다. 평범해서 좋았고, 그것이 내 맘을 홀딱 빼앗아 갔다.
경정(敬亭)
처마 끝 비스듬히 하늘 열어
햇살 반마당쯤 들어 앉히고
네 기둥 깔고 앉은 마루 아래
낯선 객의 발소리 듣더니
맑은 바람 한 바퀴 휘돌아
먼지처럼 앉은 향기, 살포시 깨우고
어쩌다 손님맞이에 분주한 참새와 박새가
담장 너머 소나무 가지 사이를
어쩔 줄 몰라 허둥 나니
멀리서 뻐꾸기 부르고, 꿩이 따라 일어선다
천 년 살이 은행나무 아래서
하얀 불두화 수줍은 인사에도
말없는 먼 시선이
허허롭고 평온하기가
이만한 곳 더 없다
마루에 앉았다. 일어나 뒷짐 짚고 마루를 한 바퀴 돌고, 방에 들어가 누웠다. 다시 햇살 내리쬐는 마루 끝으로 나와 앉았다. 가끔 살랑이는 바람에 불두화 꽃 잎이 느리게 떨어지는 것 이외에는 모든 것들이 정지되어 있었다. 한 시간 넘게 머물렀다. 마치 내 집처럼 뒹굴뒹굴하는 동안 한 사람도 찾는 이가 없었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주인이 아니어도 좋으니 먼지 쓸고 닦으며 살아도 좋으련만. 사진도 몇 장 찍었다. 두고두고 보아도 편할 풍경을 화면에 가두었다.
어느 가을쯤 노란 은행잎이 눈부시게 떨어지면 이곳엔 서 있기도 힘들 만큼 새로운 감동이 몰려올 것 같은 상상을 하니 떠나기도 전에 벌써부터 다시 오고 싶어 졌다.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발걸음을 간신히 달래 떠나왔다.
오일도 시인 생가와 조지훈 박물관에 들렀다. 유명한 문인들이 많이 난 고장의 풍경은 자연과 사람의 조화가 남달랐다.
서석지를 다녀온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마루에 앉아서 따스한 햇살을 받았던 기억과 고요하고 평온했던 감동의 여운이 문득문득 향기를 풍겨왔다. 혼란스럽고 힘들 때면 화면에 담아 온 사진만 열어 보아도 그 속에 있는 내가 위안이 되었다. 빨리 가을이 와서 눈부시게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날리는 그 고요한 정원에 다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