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 보다 얇고 작지만 꿈은 커졌다
하루에 한 단어씩 한 달을 숙제처럼 내주며 글을 쓰는 미션캠프에 참가했다. 페북에서 우연히 마주친 기회에 나를 담가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한 달 동안 주사위 숫자처럼 랜덤으로 마구 던져지는 단어 앞에 처음엔 당황스러웠고, 날이 갈수록 곤혹스러웠다. 주는 사람들이야 고민했을지도 모르지만 받는 입장에서 느낌은 그랬다. 성격, 소비, 예의, 이사, 학교 등등 이런 단어를 앞에 두고 글이 될까 하는 막막함에 하루쯤 빼먹을 생각도 했었다.
내가 아침마다 한 단어씩 정해서 글을 쓰면 되는데 돈을 써가며 뭘 그렇게까지 할까 싶지만 세상에 돈 들어가지 않고 되는 건 별로 없다. 반대로 돈이 들어가야 뭐든 제대로 된다. 외국어 공부가 좋은 예다. 매일 한 단어, 한 문장씩 외워 일 년이면 초딩 원어민 수준 정도가 된다는 걸 알지만 현실은 늘 그 희망에 접근하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음을 잘 안다. 진짜로 돈을 주고 수업을 들으면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
단어에서 묻어나는 기억들을 곱씹어 찾고, 오렌지 과즙 짜듯 훑어내고, 티끌 같은 상황들을 끄러 모아 950자 글로 썼다. 되돌아보면 그런 단어들로 혼자 미션을 수행하라면 일주일도 못 했을 듯싶다. 마지막 미션까지 마치고 교정기간 동안 수 차례 읽고 다듬었는데도 어색한 부분이 자꾸 튀어나왔다. 고치고 다시 쓰기를 거듭했지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텀을 두고 다시 읽어 보면 또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웠다. 작은 분량도 이럴진대 연작으로 몇 권씩 쓰는 작가들의 노고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기 위해 마지막 날엔 새벽까지 붙잡고 있었다.
8월 말에 미션이 끝나 한 동안 잊고 있었다. 글이 인쇄되고 있다는 문자가 왔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설렘이 가득 차 올랐다. 그러다 또 잊었다. 며칠 후 인쇄가 완료돼 금요일 책이 발송됐다는 문자를 받고 다시 풍선처럼 기대감이 부풀었다. 대체공휴일이 껴서 배송이 멈췄는데도 사탕 보채는 아이처럼 어디까지 왔나 하고 자꾸 검색에 손이 갔다. 한글날인 토요일이 지나고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까지 배송은 바위처럼 한 곳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화요일 오후쯤 되니 배송 시간 문자가 오고 곧이어 집에 도착했단다. 헐 대박.
퇴근하면서 늘 내 글의 첫 애독자이고, 응원자이며 후원자인 아내에게 출판 기념회를 제안했다. 맛난 식사를 하면서 책 얘기를 했다.
[사람은 사람에 기대어] 김영래 지음. 내 이름으로 지은 책을 만들다니. 손글씨는 말할 것도 없고 화면에서 만나는 글자와 비교해 인쇄 글자는 굉장히 다른 느낌이었다. 예를 들면 엉터리 같은 비유나 내용도 신뢰가 있어 보이고, 독자들이 공감할 것 같고, 내가 쓴 게 맞는 건가 싶게 문장도 세련된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 인쇄활자는 뾰로롱 마법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마법을 풀고 현실로 돌아오니 빠진 글자에 맞춤법도 서너 군데 틀린 곳이 있었다. 게다가 누구도 관심 없는 내 삶의 작은 조각 같은 변변찮은 신변잡기가 아닌가. 세상에 내어놓기 부끄러운 것임을 나 스스로는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특별한 것이다. 그리고 용기다. 그냥 내가 더 잘하겠다는 다짐이면 좋겠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그것으로 인해 행복하고, 즐겁기 위한 것이다.
그 즐거움과 행복을 계속 느끼고 유지하기 위해 편집기술을 배워 1인 출판을 해볼 요량으로 인터넷 강의를 신청했다. 글쓰기가 새삼 위로가 되는 요즘이다.
허허, 내 이름으로 책을 만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