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힐링 로드를 달리다

제천에서 영월을 지나 태백으로 이어지는 38번 국도

by 벽우 김영래

나의 힐링 로드는 제천에서 영월 그리고 태백으로 이어지는 38번 국도다. 차가 귀한 시절엔 2차선이었지만 내가 차를 가질 만큼 흔해지면서 4차선이 뚫렸지만 아직 그곳은 다른 길에 비해 한가하다. 얼마나 여유롭게 풍경을 구경하며 달릴 수 있는지 달려보면 안다.


나의 힐링로드는 70km 크루즈로 맞춰 놓으면 자동차 전용도로가 끝나는 신동까지는 핸들만 잡고 있으면 갈 수 있다. 차창으로 하늘에 닿을 듯 깎아 세운 듯 가파른 산들이 한 굽이를 돌 때마다 병풍처럼 펼쳐지고, 마침내 평지를 만나 모인 강물이 낮은 곳을 향하면서 그리는 구불구불한 곡선이 긴장감을 풀어 평온하고 나른하게 만든다. 스피커에서 들리는 맛 좋게 느린 발라드까지 더해지면 누구나 영화 속 주인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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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계절의 파노라마도 연출한다. 겨울산은 땅에서부터 위로 봄을 밀어 올리고, 가을산은 꼭대기에서부터 아래로 달린다. 내친김에 겨울까지 내리 덮는다. 무채색에서 노란 햇살 아래 여린 초록의 새싹을 틔우고, 녹음이 짙은 신록이 클라이맥스로 치달으며 오색단풍을 채색하고 창연하게 꺼진다. 순환의 위대함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출한다.


마차재의 오르막은 길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고개는 다시 오른 수고만큼 정직하게 내리막을 내어준다. 민둥산 마을 향해 달리다 보면 자동차보다 훨씬 높은 산 중턱을 달리는 기찻길이 보인다. 은하철도 999처럼 하늘에 닿을 듯 자꾸만 높은 곳으로 달린다. 추전역까지 계속 오를 것이다.


마침내 고한 삼거리에 이르면 나의 길은 함백산으로 향한다. 철길 아래로 오던 길을 되돌아 갈듯 1백도 이상 굽은 이차선 도로와 검은흙에 쌓인 녹슨 철구조물들과 기찻길 옆 옹기종기 붙어 있는 오두막같이 낡은 스레트 집들 사이를 달리다 보면 키 큰 전나무 몇 그루와 컴컴한 계곡 앞에 맑은 햇살을 받는 정암사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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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산 정상을 향하면 차로 오르는 가장 높은 만항재(1,330m)에 다다르게 된다. 야생화 공원과 바람개비 숲 속 산책로가 있고, 저 멀리 너울지는 파도처럼 펼쳐진 산 능선이 아스라하고 시원하게 펼쳐진다. 높이 올라보면 작은 것들이 뭉친 큰 것들만 볼 수 있다. 비로소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이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지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고 싶다면 올라야 한다. 그곳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손에 쥐고 한 참을 내려보면 혼란스러운 어지럼증이 씻은 듯 사라진다.


내려오는 길엔 정암사에 멈춰 잠시 고요한 풍경 속을 걷는다. 수마노탑까지 걷는 동안 몸도 고요해진다. 터~어~벅하고 왼발이 오랫동안 머물고 난 후 오른발이 닿을 시간도 길게 준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한 번도 숨차지 않게. 탑에 올라 풍경을 내려다보며 간신히 보일 듯 눈을 가늘게 뜨고 뒷짐을 진채 탑돌이를 한다. 호수 속처럼 고요가 고요를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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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 생각들이 부유하는 먼지처럼 무질서하게 떠오른다면 그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집중력이 흩어지는 날들이 자꾸 많아진다. 세상은 맘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맘먹은 대로 된다면 당장은 좋겠지만 종당 간엔 무척 재미없어질 것이다. 암튼 정리되지 않는 머릿속을 정리할 땐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게 상책이긴 하지만 가만히 있는다고 될 리 없다.


길을 달리는 일이 나에겐 의사의 처방만큼이나 효력 있는 약이다. 길을 나선다는 건 혼란스러운 내 일상을 몸 밖으로 꺼내 놓는 일이다. 바람 앞에 씻기고 혹은 날려 본다. 앞에서 나타나는 풍경과 뒤로 밀려가는 풍경을 쉴 새 없이 보노라면 시름은 사라지고 온 몸을 도는 피가 맑아지고 덩달아 생각도 깨끗해진다. 일상과 낯섬이 만나 시너지를 내면서 빨래처럼 처진 나를 새로운 에너지로 충전시켜준다. 나의 힐링 로드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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