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코로나 격리 후기
하지 말아야 할 말인데 말하고 싶은 근질거림은 참기 어렵다. 금기어가 입술을 타고 밖으로 나오는 순간 기가 막히게 현실이 된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전설의 고향의 단골 멘트는 꼭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반전을 담고 있듯이 '난 괜찮아'라든가. '우리 팀은 한 명도 예외 없이 버텨낼 거야'라는 말이 곧 그렇게 되고 말았다.
코로나로 사무실 업무가 징검다리처럼 띄엄띄엄해졌다. 아침마다 오늘은 누가 걸렸으려나 궁금해 사내 메일을 먼저 열어 보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우리 팀은 현장업무를 지원하는 팀답게 가족 확진으로 인한 격리만 한 명 있었을 뿐 꿋꿋하게 버텨냈다. 사석에서 농담 삼아 이 시기가 지나면 코로나 안 걸린 사람 특별휴가 건의를 할 거라는 얘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대세의 흐름이 순번처럼 다가오는 바이러스의 침략 앞에 누구도 당당할 수는 없었다. 처음엔 감기인 줄 알았다. 코로나를 안 걸리는 사람은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시체 말 같은 농담이 기분 나빴는데 신속항원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는 문자를 받고 나니 기분이 더 나빴다. 혼자라도 끝까지 인간관계 나쁜 사람으로 남으려 했건만.
보건소 PCR 검사 결과 통보를 월요일 아침 8시 반 넘어서 받았다. 설마 음성 나오는 건가? 그럼 출근을 해야 되는가. 밤새 목이 아파 한 잠도 못 잤는데.... 병가라도 내야 하나 망설이던 참에 확진 판정이 되었다.
토요일 친구와 여행을 떠난 와이프가 없는 틈새를 이용해 나도 친구와 산행을 하고 일요일 동해로 탈출을 하려 했던 틈새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와이프가 확진돼 시골로 피양을 왔던 친구도 나를 매개로 확진이 되었고, 더 미안하게 노부모님까지 감염되었다. 자꾸만 미안하다 했지만 그 미안함이 덜어지지는 않았다. 다행히 부모님도 친구도 나보다는 면역력이 센지 크게 아프지 않고 지나는 모양이어서 산처럼 큰 미안함을 덜어낼 수 있었다.
삼일차까지는 인후통이 심해서 침을 삼킬 수가 없었고, 잠도 오지 않았다. 침을 안 삼키려고 딴생각을 하는데 그럴수록 침이 자꾸 고였다. 침을 꿀꺽하는 순간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통증과 전율이 느껴졌다. 온통 신경이 거기로 집중됐다.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 되는 데 그럴수록 생각이 거기로 돌아오고 침은 자꾸 고였다. 십 분에 한 번씩 전기에 감전되는 통증을 견디며 긴긴밤을 보냈다.
약을 먹고 인후통이 가라앉았지만 기침과 가래는 여전히 조금씩 남아있다. 집에서 공부방을 하는 아내 때문에 안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대화도 전화로 했고, 식사는 문밖에 두면 내가 들여와 먹고, 다 먹은 건 살며시 문 밖에 다시 내놓았다. 아플 땐 넷플릭스고 뭐고 다 소용없었다. 그냥 싸고 누워 쪽잠이라도 잠깐 잘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품었다.
오일 차가 되니 여유가 생겼다. 어제는 하루 종일 넷플릭스로 영화를 봤고, 오늘은 브런치 읽다가 글도 쓴다.
코로나가 참 신기한 경험을 하게 했다. 하루 종일 오백 보도 안 걷고, 몇 마디 말도 안 하고, 삼식이처럼 때 되면 말없이 혼자 밥 먹었다. 코로나가 나를 감옥에 가둔 것처럼 고립시켰는데 이게 견딜만하다니.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니.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열려 있긴 했지만 얼마 전부터 기레기들이 사는 뉴스 세상과 단절을 했는데. 그런데 죽을 만큼 외롭지가 않았다. 체질인가. 내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건가.
오호라! 이 정도면 당장 퇴직해도 부족함이 없을 듯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코로나로 인한 나의 새로운 발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