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간 흙마당과 툇마루 위로 쏟아지는 햇살과 늙은 은행나무의 긴 침묵
재난이 일상이 된 지 2년 여가 넘어가고 있다. 더 이상의 평범함도 평범함일 수 없고, 비상상황이 비상처럼 느껴지지 않는 일상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조차 모르는 요즘이다. 처음 받았던 재난문자의 신기함과 긴박감이 지금은 1도 없다. 오히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메시지 알람은 진부함의 때가 껴서 그냥 평범한 하루 일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전쟁 같은 일상은 계속되어야 하고, 터질 듯한 풍선처럼 가득 찬 위기의 일상을 배출할 소통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떠나야 한다면 한적하고 고요한 곳으로 가야 안심이 된다는 사실이 슬프지만 좋다. 매일 다니던 길을 벗어나는 시도 자체가 큰 위로가 된다는 기쁨이 아이러니하다.
하룻길에 힘들지 않게 오가는 나의 최애 장소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 마나도 몇 번의 왕래로 익숙해져가는 위기를 맞고 있다. 만항재와 정암사, 소수서원과 부석사 그리고 영월과 단양길은 벌써 일상이 된 듯하다.
낯선 풍경 속에서 일상을 잊고 설렘 느끼는 고요한 여행지를 찾는 일이 여행하는 것만큼이나 신난다. 처음엔 봉정암과 봉정사가 구분되지 않았다. 두 글자가 같아서 거기가 거기겠거니 했는데 다른 곳이었다. 안동 외곽의 천등산 기슭에 자리 잡은 봉정사는 통일신라시대 때 창건된 천년 고찰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국보 제15호인 극락전과 대웅전, 화엄강당, 고금당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문화재를 많이 가지고 있다. 다수의 중요 문화재를 갖었다는 건 명소로 유명세를 얻었다는 뜻이고, 고요와 수련이라는 본질의 가치를 내어줄 수 있는 위험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봉정사를 두 번째 방문했지만 명성에 걸맞은 분주함과 소란함은 여전히 없었다. 목조 건물 그대로의 묵직한 멋과 먼지도 가라앉을 만큼의 고요함이 반질거리는 툇마루 위로 내려앉는 따사로운 햇살이 정겨운 오후를 만들고 있다. 장난기 있는 겨울바람이 가끔씩 마당을 휘돌아도 병아리 같은 햇살의 따뜻함을 걷어내진 못했다.
허공에선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용서의 기도와 차고 넘치는 감사의 기도문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한 번은 위로 뻗쳤다 돌아서 반대로 휘어진 빗살무늬 자국이 예술적인 말간 흙마당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무념무상이 이런 건가 싶었다. 내가 용서할 것이 참 많구나. 이렇게나 감사할 것들이 많은 지 놀랍기도 했다.
봄이 오면 마당 한가득 더 따스한 햇살과 천년 고찰 처마 끝 언저리로 비추는 여전히 파란 하늘과 400여 년 전 몹시도 추웠던 어느 겨울을 이겨낸 은행나무 잎새들의 무용담으로 시끄러운 뜰. 무거운 침묵이 갈 길 잃은 내 삶의 이정표를 찾아 줄지도 모르겠다. 깊은 맛을 알려면 서너 번은 더 와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