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도시를 잠시 잊게 한다

집 나서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만 보는 넉넉히 걸을 수 있는 숲이 있다

by 벽우 김영래

바위처럼 단단해서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암울했던 시간이 비에 씻기 듯 가버렸다. 사람과 마주 앉아 얼굴 보며 말하기도 꺼려졌던 일들 등등. 정말 세상이 금방 무너져 버릴 것 같은 공포감으로 두려움에 떨었던 우리들의 지난 시간이 봄 햇살에 얼음 녹듯 이렇게 스르르 녹아버릴 거라고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오직 눈앞에 있는 공포만을 피하기 급급했고,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어떤 방어막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나면 모든 일이 추억이듯 내 몸을 후벼 팠던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나니 그것 또한 적응해서 다시 일상으로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새삼스럽다. 세상은 어떻게든 돌아가게 되는구나.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고 나니 길을 나서는 자체가 설렌다. 그렇다고 완전히 마스크를 벗지 않고 여전히 목에 걸고 있으면서도 뭔가 두꺼운 겨울 외투를 벗어버린 가벼운 느낌이다.

주거환경에서 중요한 역세권, 슬세권, 숲세권의 모든 조건을 갖췄다면 천정부지로 올라야 할 집값이지만 내가 사는 시골 소도시에서야 똑같은 조건을 갖고 있으니 언감생심 먼 나라 얘기다. 차이가 있다면 겨우 10-20분 정도의 '거리'와 '시간' 차이가 고작이다. 그럼에도 대도시에서 같은 조건에 포함될 그 정도의 거리와 시간이 이곳에서는 차별의 조건들로 제시된다. 내가 사는 집은 4차선 도로 신호등만 하나 건너면 약수터가 있는 숲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에 만 보를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숲이 있다. 글을 쓰려니 오늘따라 고마운 마음이 더 크게 부푼다.


하소 뒷산은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처음 가는 사람에겐 혼란스럽고 길을 잃기 십상이지만 군데군데 이정표와 안내도가 있어 조금만 신경 쓰면 오히려 쉽다.

숲엔 등너머 약수터와 하소 약수터 두 개가 있다. 등너머 약수터는 산속에 자리 잡고 있고 앞엔 작은 운동장과 간단한 운동기구도 갖춰졌다. 난 이곳을 더 좋아한다. 하소 약수터는 찻길이 연결되어 있어 대용량 물통을 싣고 오는 얌체 차들이 먼지와 매연을 뿌리고 지나는 경우가 자주 있어 있어 마음이 불편하다. 길을 비키지 말고 심통을 부려 볼까 하는 마음의 갈등 때문에 괜히 불편해진다. 막상 그러지도 못하면서.


그래서 언제나 등너머 약수터가 있는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가파른 계단을 10여분 올라 다시 10여분을 걸으면 그곳에 도착한다. 도로와 접한 산 아래쪽엔 골프장이 들어섰지만 아직까지는 소나무와 참나무, 아카시아 나무 등등이 경쟁하며 살고 있다.

호젓한 소나무 사잇길이 참 좋다. 사람들의 발걸음에 앙상하게 드러난 뿌리들이 걸음걸음에 반질반질해졌지만 상관하지 않고 언제나 푸른 잎들을 키우며 참나무와 아카시아 사이에서 꿋꿋하게 살고 있다. 한 그루가 어슷하게 가로막은 듯 비켜선 듯 길을 내 준 그곳에만 가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반듯하지 않지만 불편하지 않게 굽은 곡선이 맘을 다림질하듯 편안하게 펴준다. 세상에 이렇게 조화로운 길이 또 있을까 싶다.


저 멀리 기차가 지나는 소리, 숲 아래쪽에서 골프 치는 사람들의 소리, 가까이서 종달새와 뻐꾸기 울음소리, 울창한 나무 아래서 뱀이 지나는 듯 바스락거리는 소리, 신록의 나뭇가지를 흔들고 지나는 훈훈한 5월의 바람소리까지. 도시와 자연을 모두 머금고 있다. 숲은 방금 전에 내가 있던 도시를 잠시 잊게 해 준다. 도시 살이의 편안함에 중독돼 더 이상 그곳을 버릴 수 없게 됐지만 숲은 그런 내 마음을 언제나 위로하고 치료해 준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낙엽송 가지 사이로 보이는 시멘트 블록의 조밀한 집들이 들어찬 풍경이 새삼 정겹다. 이미 내 마음에 쌓인 먼지들이 푸른 공기에 씻겨진 탓일 테지. 아스팔트 길들에 의해 섬처럼 둘러싸인 숲이지만 그곳은 많은 사람이 잠시 동안 도시를 망각하기 위해 찾는 고향 같은 곳이다. 현관을 들어서는 내 등 뒤로 숲의 향기가 따라왔다. 오늘도 너 때문에 휴일 하루가 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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