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히 인사하는 안녕, 책

세상 나대기 싫어하는 내게 가장 좋은 곳

by 벽우 김영래

여백이 부족할 만큼 글자 가득한 책 보다 시처럼 뜨문뜨문 쓰인 글자들이 적힌 책을 대하는 마음이 훨씬 편하고 여유롭다. 그런 책들은 한 더 읽으며 되새김질한다.

게으른 탓인가. 기억하고 생각해야 할 분량이 적다.


안녕, 책

salut_books

KakaoTalk_20220603_161556943.jpg

햇살이 흰 벽에 부딪쳐 그림자가 살짝 드리워 까만 눈동자처럼 적혀 있는 이름. 내가 사는 동네에 있는 책방 이름이다. 인스타에서도 꽤 유명하다고 한다. 서울 사대문에 있는 대형서점처럼 사면(四面) 가득 책이 빼곡하진 않다. 서너 명이 함께 둘러보기에도 비좁을 듯 작고, 책도 내 서재만큼도 없다. 그런데 괜찮다.

공간이 인식을 지배하는 것이 확실하다. 거대함에 억눌리지 않고, 소박하게 여유가 있다. 그럼에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고요함과 막대할 수 없는 질서가 있다. 내가 갖고 싶은 바로 그런 곳이다.


KakaoTalk_20220603_161556943_01.jpg

몇몇 유명 작가의 책과 이제 막 시작하는 듯한 무명작가의 책들이 사이좋게 꽂혀있다. 한쪽 통 큰 유리창은 잘 정리된 마당 풍경을 널찍하게 담고 있다. 긍정은 긍정만 찾게 되는 심리 때문인지, 되려면 이렇게 되는 거라고 보여주는 듯 작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는 좁은 길을 환영하듯 머리 위로 건너온 노송 가지가 마당의 운치를 더해준다.

주인이 있는 듯 없다. 들어서서 책을 고르고, 읽다 보면 어느샌가 주인이 손님에게 방해해 미안하다는 듯 무심히 있다.

KakaoTalk_20220603_161556943_02.jpg

네모 의자와 유리창을 따라가는 길쭉한 직사각형 책상이 나무 재질이라 딱딱하다. 오랫동안 책에 집중하기가 내겐 힘들었다. 안녕, 책 하고 짧은 인사 나누기 딱 좋다.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꿈꿨을 다락방. 엘리베이터의 원초적 고전인 나무 사다리를 올라가면 캥거루 아기 주머니같이 아늑한 곳에서 책을 읽다 설핏 낮잠이라도 잘 수 있겠다.

KakaoTalk_20220603_161556943_03.jpg

친구가 책을 한 권 선물해줬다. 드문드문 사유의 글과 드로잉이 함께 담긴 그림책 같다. 호의를 받을 땐 그냥 받아도 되는지 망설여진다. 갚아야 할 나의 빚이니까. 그래도 책을 받을 땐 앞뒤 재지 않고 냉큼 받고 본다.

안녕, 책하고 말이다.

음주 가무에 흥이 없는 난 이런 곳에서 내 존재의 이유를 느낀다. 소중한 한줄기 상념과 사유를 선물로 받는 기분은 소주 한 잔 나누는 것과 비견하다.

갖고 싶은 책방. 느린 시간을 지배하는 공간. 안녕, 책.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같은 바다, 다른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