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점심을 먹고 산보에 나섰다. 책상에 앉아 있거나 실내 운동으로 하늘을 볼 일이 별로 없는 단조로운 일과 중에서 이 시간은 소중하고 달콤한 틈새가 되었다.
이어폰을 끼고 듣는 감미로운 음악과 비행장 용도로 사용했던 광활한 광장을 배경으로 아무것도 가리는 것 없는 청명한 하늘과 지평선이 맞닿은 시원한 풍경이 눈에 한가득 들어온다. 옆을 스치듯 지나는 사람들 중엔 바쁜 걸음이 없다.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고 엊그제 내렸던 춘설이 가득한 활주로에 발걸음이 녹여 만든 길을 따라 걷고 있으면 그 자체로 가득 찬 행복감이 밀려온다.
내가 걸어가는 방향에서 오른편으로는 카페가 나란히 두 개가 있고, 끄트머리에 행정복지센터가 있다. 맞은편엔 즐비하게 늘어선 고급 주택가와 카페 그리고 중간쯤 유치원과 초등학교가 있다.
활주로로 사용되었던 비행장의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로는 차량과 보행자가 다닐 수 있고,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해 활주로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한쪽 가드레일을 열어서 주차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오늘따라 걷는 사람에 비해 주차된 차량이 꽤 많아 보였다. 식당이나 카페에 가는 사람들이 이곳에 주차했을 리는 없을 텐데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궁금했는데, 조금 걷다 보니 눈 덮인 하얀 풍경을 배경으로 초등학교 앞쪽에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들이 마치 줄을 서 있듯이 나란히 서서 한쪽을 바라보며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문은 곧 풀렸다.
학교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바로 초등학교 신입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앞장선 선생님을 따라오는 아이들은 누가 봐도 이제 막 입학한 신입생들이었다. 알록달록 가방을 멘 채 웃음을 띠거나 굳은 얼굴로 따라 나오는 아이들을 부모들이 바라보고 있었다. 한쪽 손을 번쩍 든 병아리 행렬이 마침내 길을 건너오자 각자의 부모님을 찾아 뿔뿔리 흩어지기 시작했다. 어수선했고, 재잘재잘 시끄러운 소리가 멀리서도 들렸다.
얼마나 긴장되고, 두렵고, 설레었을까? 봇물 터지 듯 참았던 말들이 터져 나왔으리라. 참새처럼 작은 심장이 얼마나 두근두근 뛰었을까? 새로운 친구와 세상을 만나는 새로운 시간의 혼돈. 이제 시작된 규칙에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 삶이 언제쯤 끝날지도 모르는데. 이제 시작이라니. 그건 희망일까? 고난이 아닌 모두의 바람처럼 희망이면 정말 좋겠다.
느리게 걷던 걸음을 더 느리게 걸으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만, 너무 먼 시간을 달려왔는지 기억이 아득하다. 그런 게 있었나 싶기도 하다. 심지어 이기고 지는 긴박한 순간을 마주하는 탁구 시합을 할 때조차도 무덤덤하니까 말이다.
짧지만 길었을 하루의 일과를 마친 꼬맹이들에게 춘설이 뒤덮인 비행장 활주로에 펼쳐진 은세계 위를 뛰어다니는 유희는 그 자체로 커다란 선물이 된 듯했다. 아이들 웃음소리와 뒤에서 작은 가방을 둘러메고 아이들을 보며 담소를 나누는 젊은 엄마들의 풍경. 저 멀리 눈밭을 달리다가 스스로 미끄러져 넘어지고, 벌러덩 드러누웠다가 한 덩어리 눈을 뭉쳐 허공을 향해 힘껏 던지는 손주의 재롱을 보며 뒤따르는 할머니의 뒷짐 진 모습이 아련했다.
은퇴를 목전에 둔 사람과 새로운 시작을 하는 사람들. 세상은 그렇게 뒤섞여서 혼란스러운 듯 보이지만 평온하게 한 덩어리로 지금처럼 굴러가고 있다. 광장엔 봄이 오다 게릴라군에 점령당한 것처럼 겨울에 밀려 잠시 비켜섰지만 곧 계절은 제자리를 찾듯, 나도 익숙한 곳을 떠나는 마음에 아쉽고 뒤숭숭하지만 새로운 곳에 둥지를 틀지 않을까.
은퇴는 처음이라 낯설고 두렵고 어설프겠지만, 겨울 뒤에 오는 봄처럼 쉽진 않겠지만, 어쨌든 그 시간은 오고야 말겠지. 삼십여 년을 한 곳에서 같은 일을 하며 보냈던 시간에서 벗어나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나는 시간을 때운다는 말이 싫다. 아껴도 시원찮을 시간을 왜 땜질을 하며 보내냔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음 한편에 설렘이 고이는 새로운 일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새로운 출발, 스스로 응원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