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 주관 인문학 강의 中 -
1.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할까?
글쓰기를 해본 사람이면 제일 먼저 하는 고민이겠지. 그 고민마저도 행복하게 느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뭘 더 바랄 게 있나.
이러다가도 교보문고나 도서관 등 책이 바다처럼 가득한 곳에 가면 능력도 주제도 안 되는 깜냥으로 읽히지도 않는 책 하나 더 보텐 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쭈굴쭈굴 해진 자존감으로 스스로 백기를 들고 항복하기를 여러 번 했지.
그런데 뭘 또 해보려고.
새로운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봄이 왔지만, 지금까지 맞았던 여느 봄과는 다른 봄이다. 이제 30여 년을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를 해야 하는 시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이 시점에서 느끼는 감정은 달랐다. 일단 새로운 환경에 나설 준비를 해야 한다는 과제가 생겨났고, 한편 시간과 공간에서 쫓기듯 살던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적으로 여유도 생겼다.
그래서 또 뭔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에 지금까지 문득문득 꿔온 데자뷔 같은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설령 실패를 하더라도 더 오래 시도해 보고 실패하기 위해 첫 단추를 달리 끼우기로 했다. 책상 앞에 놓인 경향신문 후마니타스 연구소 주관 인문학 강의 광고. 강원국의 <나만의 첫 책 쓰기> 강의를 선택했다.
처음부터 난관을 예상 못한 건 아니었지. 시골에서 2시간 강의를 듣자고 수요일 저녁마다 서울 한가운데로 차를 몰고 간다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니지.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해서 시간, 거리를 측정하니 100km가 넘는다. 2시간 이상 걸리는 고행의 길이다. 빨갛게 정체되는 구간을 예측대로 통과했을 때가 2시간이지. 예측은 예측일 뿐 교통상황은 어찌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주차장이 있을까? 전화로 문의를 했을 때 "있긴 있는데 많지는 않다. 그렇지만 직원들이 퇴근한 시간이라 자리가 있지 않을까요."라는 장담하지 못하는 담당자의 답변까지. 의구심과 망설임은 신청도 하기 전에 시작되었고,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광석이가 함께하기로 해서 망설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등록하고 다시 망설이기로 했다. 못하겠으면 취소하고, 실패하면 실패의 콘텐츠로 한 꼭지 글은 쓸 수 있겠지. 그것만으로도 하나는 성공하는 거라고 봐야지.
2.
첫 강의. 수강을 위해 휴가를 내고 세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출발했지만 도착은 여섯 시 반을 넘어 가까스로 도착했다. 주차장도 마침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계속 이렇게 운수가 좋을 수는 없겠지만 시작은 좋았다.
책을 다시 써 볼 결심을 하게 된 건 강 작가님의 한마디였다. <책이 읽히지 않는 시대지만 그래도 내 삶의 경험을 남겨야 할 작은 소명을 가져야 하고, 스스로 만족하고 위안을 삼기 위해서 책 쓰기를 하라>는 말이었다. 게다가 추천글도 써 주신다고 하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강 작자님 인터넷 강의에서 자신의 상사가 자신의 글이 전혀 읽히지 않고 바로 책장에 꽂힐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에 용기를 얻었다고 했으니, 나 역시도 그런 두려움을 떨쳐내고 편하게 생각하면 되겠네 했다.
두 번째 강의. 첫 강의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갈까? 가지 말까!" 하는 망설임은 떨치지 못했지만 강의에서 한마디만 가슴에 넣을 수 있다면 성공이겠지. 그렇다면 가야지.
<내 관심분야에 미쳐야 한다. 도서관에 출근하고, 벽 한편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울 정도는 돼야 한다. 일이관지(一以貫之)하라.>
그래 맞아. 모래성처럼 자신의 의지가 자주 허물어지는 의지박약가에게 단단한 바위로 성을 다시 세우는 작업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꽤 괜찮은 거라 생각하게 됐다.
세 번째 강의. 역시 출발을 위해 시동을 걸 때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원인 모를 생때같은 망설임과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갈 건데 뭘 자꾸 망설이냐. 너 결정장애야.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가. 오늘도 가서 말씀 한 마디 건져오면 되잖아."라며 체념을 앞세웠다.
강작가님의 글쓰기 습관과 쓰기 전 루틴은 흥미로웠다. 한 꼭지 글쓰기 24가지 요령에 대해서 공부했다. 그중 내가 가장 쓸모 있게 적용해 볼 수 있는 한 가지는 <3일 쓰기>였다. 주제와 자료를 찾고, 글을 쓴 후, 낯설어진 후 교정을 본다는 내용이다. 나는 1일 차와 3일 차를 거치지 않고 대부분 즉흥적으로 쓴 후 브런치 등에 바로 올렸거나 카페 일기장에 덮어두기 일쑤였다. 그러고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비문이나 반복된 단어 등으로 어설픈 부분이 발견되지만, 귀차니즘으로 그냥 처박아(?) 두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 3일 쓰기는 꽤 괜찮은 방법이지 싶다.
네 번째 강의. 이전 수업과 비슷한 내용들이었다. 그중 글쓰기를 스스로 강제하는 요령으로 연재하는 방법이 귀에 들어왔다. 사무실에서 당직근무를 서거나 개인적으로 시간이 날 때는 절대 사무실 일을 하지 않았다.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일들을 벼락치기로 할 때 훨씬 집중이 잘 됐던 기억이 있는 만큼 한 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마감시간에 스스로를 옭아매 놓고 쓰는 것도 내겐 나쁘지 않겠구나 생각했다. 내 성향에 맞겠구나.
이렇게 한 달의 시간이 지나고 내가 가지고 있던 자료를 피드백해 주신다는 말에 용기를 내서 자료를 보냈다. 코로나가 훑고 간 때의 시간이 지난 자료도 있고, 교정을 보다 중간에 그만둔 글도 있었지만, 그냥 보냈다. 강원국 작가님께서 내 글을 읽어주고 소감을 얘기해 주신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황송한 일이지 않은가.
이제 마지막 수업을 남겨두고 있다. 실제 마지막 수업은 수강생들의 숙제를 검토해서 피드백을 주고 서로 대화하는 시간이니 정식 강의는 끝난 셈이지만, 이 시간이 제일 기다려진다. 내 글이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얘기될 테니. 방향이나 주제가 마땅한지? 글은 또 어떻게 얘기될지?
망설임과 의문을 품고 출발했던 한 달 동안의 여정이었지만, 의문의 구름을 엷어지게 만들었던 건 실패나 두려움에 대한 걱정과 실망이 아니라 뭘 새롭게 해보고 싶다는 도전의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도전을 선언할 때마다 늘 능구렁이 같은 떨쳐낼 수 없는 의구심과 두려움의 장애물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방해공작을 펼쳤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무섭고, 귀찮다는 핑계와 변명을 앞세워 편한 길만 골라 걸어왔다. 안 그랬더라면 지금쯤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제 시간도 환경도 달라질 테니 변신을 해보자. 힘들어도 부딪치고, 돌아도 가고, 때론 건너뛰기도 하면서 해보는 거지. 누가 뭐랄 사람도 없는데.
강원국의 <나만의 첫 책 쓰기> 강의는 이렇게 나에게 새로운 출발을 위한 디딤돌이 돼 줄 것 같다.